옻칠한 유리 오브제·한지 소파…K디자인, 세계 비춘다

서정민 2025. 9. 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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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초, 한국 상륙한 ‘디자인 마이애미’
물푸레 나무를 굽혀 만든 김희찬 작가의 조형물(사진 위), 아래 왼쪽부터 밀가루 풀로 한지를 수백 겹 겹쳐 만든 이정인 작가의 소파, 지승공예(한지를 꼬아 제작)가 이영순씨가 만든 바구니들, 다양한 소재의 활용과 조형 이미지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연진형 작가의 소파.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9월 1일부터 14일까지 서울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이간수문 전시장에서 ‘디자인 마이애미 in 시추 서울’ 전시가 열린다. 이는 세계적인 디자인 플랫폼 디자인 마이애미가 아시아에서 처음 갖는 행사다.

디자인 마이애미는 갤러리·디자이너·브랜드·컬렉터 등으로 구성된 글로벌 디자인 플랫폼으로 세계 최고의 갤러리들이 선보이는 20~21세기 아트 가구·조명·오브제를 전시하는 한편 루이 비통·펜디 등의 유명 브랜드들과 독특한 디자인 협업을 선보여 왔다.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은 디자인 마이애미는 다양한 콘셉트로 전시 기획을 확장중인데, 그중 ‘인 시추(in Situ)’는 지역 디자인 커뮤니티를 육성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기획됐다.

“서울은 풍부한 문화유산 가진 창의도시”
젠 로버츠
디자인 마이애미의 젠 로버츠 CEO는 “인 시추는 다양한 지역에서 보다 유연하고 실험적인 형식으로 전시를 선보일 수 있도록 기획됐다”며 “각 도시의 맥락을 진정성 있게 연구하고 지역 디자이너들과 함께 글로벌 디자인 커뮤니티를 성장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소개했다. 그는 ‘왜 아시아 첫 번째 전시 장소로 서울을 선택했는가’라는 질문에 “서울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디자인 창의도시로 풍부한 문화유산을 가졌을 뿐 아니라 디자인 혁신을 도시 정책의 우선순위로 삼고 있는 점이 높이 평가됐다”며 “서울디자인재단과의 협업을 통해 한국의 컬렉터블 디자인(소장 가치가 높은 디자인 제품)을 형성하고 있는 선구적 디자이너들을 조명하고 싶었다”고 답했다.

이는 이번 전시 제목이 ‘창작의 빛: 한국을 비추다’로 정해진 이유기도 하다. 한국어 ‘조명(照明)’에서 영감을 얻은 전시 명은 한국 공예·디자인의 풍부한 전통과 미래를 열어가는 창의성을 함께 비춘다는 의미를 담았다. 71명의 디자이너가 참여해 총 170여 점을 선보이는데, 모두 한국 디자이너들의 작품이다. 전시 기획을 맡은 조혜영 아트 디렉터는 “이미 국제 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글로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한국 디자이너들이 많은데, 국내 관람객들은 아직 그들의 작품을 잘 모르고 있는 게 답답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디자인과 디자이너들에 대해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는 한국 디자이너들이 소속된 총 12개의 유명 해외 갤러리가 참여했다. 미국 뉴욕·영국 런던·프랑스 파리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카펜터즈 워크숍 갤러리(박원민 소속), 영국 런던의 찰스 버넌드 갤러리(김계옥·김희찬·이정인·원리·정명택·정미아 소속), 프리드먼 벤다 갤러리(최병훈 소속)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도 갤러리 LVS & 크래프트(김동준·나점수·장연순 소속), 갤러리 스콜로(김기라·김준용·박성훈·이지용·이태훈 소속), 솔루나 파인 크래프트(이규홍·정다혜·천우선·최기룡·편예린 소속) 등이 참가했다.

특이점은 이간수문 전시장 두 개 층에 나눠 전시된 작품들 중 상당수가 ‘로에베 공예상’ 최종 후보 30인에 오른 작품이라는 점이다. ‘로에베 공예상’은 2016년 로에베 재단에 의해 시작된 행사로 전 세계 공예가들이 가장 주목하는 글로벌 행사다. 첫 회부터 매년 한국 디자이너들이 최종 후보 30인에 오르며 한국 디자인의 창의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 주요 창구가 돼 왔다. 또한 이를 통해 글로벌 갤러리들이 한국 디자이너들에 주목하는 계기가 됐다. 디자인 마이애미 역시 이들에게 큰 관심을 보이며 이번 전시에 대거 작품을 참여시켰다.

옻칠로 다양한 색을 입혀가며 여러 번 가마에서 굽는 방법으로 제작한 이규홍 작가의 유리 오브제.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이간수문 전시장 1층에 전시된 김준용·이규홍·최기룡·이인진·편예린 등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김준용 작가는 전통적인 유리 기법인 블로잉 기법으로 북극의 오로라처럼 신묘한 컬러 그러데이션을 선보이는 화병을 출품했다. 이규홍 작가는 옻칠로 다양한 색을 입혀 여러 번 가마에서 굽는 방법으로 보석처럼 투명하면서도 세월을 품은 낡은 골동품 같이 보이는 유리 오브제를 선보였다. 최기룡 작가가 출품한 작품은 원과 네모만으로 구성된 작품 형태가 동양의 탑인 듯, 서양의 건축물인 듯 여러 이미지를 중첩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을 떠나 20년간 이방인으로 살아온 작가의 정체성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가마에서 장작을 태울 때 날리는 재가 기물에 묻어 자연스럽게 유약 효과를 내는 무유소성 기법을 고집해온 이인진 작가의 도자들은 투박하면서도 힘 있는 한국 도자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수석 위에 흙을 입히는 캐스팅 방법으로 기본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다시 이끼·꽃 등을 입혀 여러 번 굽는 과정을 반복하며 만드는 편예린 작가의 도자는 산호처럼 보이는 독특한 형태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달 14일까지 DDP서 무료로 공개
‘돌과 나무의 작가’로 불리는 최병훈 작가의 간결하면서도 사색적인 조형물.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이간수문 전시장 지하 1층에는 부피가 큰 소파·스툴 등이 전시됐다. 아트 퍼니처 1세대 작가인 최병훈 작가는 ‘돌과 나무의 작가’라 불리는 만큼 이번 전시에서도 자연의 재료만으로 간결하면서도 사색적인 가구들을 선보였다. 오랫동안 바다에 가라앉아 철 성분이 금속처럼 부식돼 표면이 녹슨 듯 보이는 화산암과 정교하게 잘라낸 금속을 조합해 가구를 만드는 박원민 작가의 의자들은 서로 다른 물성의 극적 대비와 아름다운 조형미로 관람객의 시선을 끈다.

300장의 한지를 밀가루 풀로만 겹쳐 한 장의 커다란 레이어를 만들고, 이렇게 만든 레이어 120여 장을 또 겹쳐 만든 이정인 작가의 한지 소파 역시 전시장 한가운데서 존재감을 발휘한다. MZ세대에서 인기 있는 카페 어니언의 인테리어를 책임지고 있는 패브리커 스튜디오의 김동규·김성조 작가는 에폭시와 나무를 활용해 투명한 파스텔톤 의자와 스툴을 선보여 젊은 감각을 뽐냈다.

국가유산진흥원이 출품한 김춘식(소반장), 소병진(소목장), 정수화(칠장), 조대용(염장) 등 국가무형문화재 장인들의 작품들도 위엄을 과시했다. 특히 대나무 발을 만드는 조대용 염장은 권중모 조명 작가와 협업해 긴 전구를 가운데 두고 기하학적인 형태의 거북문양 통영발이 사방을 감싸고 있는 우아한 조명을 선보였는데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작품으로 시선을 모았다.

말총을 엮어 만든 정다혜 작가의 오브제. 고대 빗살무늬 토기에서 영감을 얻었다.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조혜영 아트 디렉터는 “세계적으로도 한국 작가들만큼 나무·금속·유리·흙·종이·가죽·말총 등 다양한 물성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작가들이 없다”며 “전통과 현대를 나누지 않고 각기 다른 물성의 소재를 이용해 자신만의 창작세계를 선보이는 작가들의 작품 위주로 전시를 구성했다”고 소개했다. 젠 로버츠 CEO 역시 “전통 공예와 최첨단 실험이 어우러지는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이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한국 디자인의 서사를 경험했으면 좋겠다”며 “특히 전시가 열리는 DDP는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한국 디자인 풍경의 상징적 장소로 관람객은 공간과 작품이 함께 만들어내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차강희
디자인 마이애미와 함께 이번 전시를 기획한 서울디자인재단의 차강희 대표는 “한국 디자이너들이 세계 디자인 시장에서 독자적 영역을 확립하고 있다는 점은 K디자인의 세계화를 입증하는 것”이라며 “이번 전시가 그러한 변화를 뒷받침하고 서울을 아시아 디자인 중심지로 부각시키는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무료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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