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인권 위에 동물권이 있나?

최근 서울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들과 강남구청은 지옥을 경험했다. 너구리들 때문이었다. 올해 5월부터 갑자기 나타난 이 동물이 주민을 다치게 하는 일이 발생하자 단지 안에 포획틀을 설치했다. 그런데 그것을 알게 된 한 동물권 단체가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포획틀 설치를 허가한 구청에 시끄러운 ‘전화 폭탄’을 돌린 것이다.
이 단체는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도 “너구리 가족과의 생태적 공존을 요구하고 강남구청의 직무 유기를 규탄하자”며 담당 공무원과 해당 아파트 관리사무소 전화번호를 올렸다. 이른바 ‘좌표’를 찍은 것이다. ‘그 아파트는 예전에 반려견 산책을 금지했다’ ‘길고양이를 학대한 이력도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도 올라왔다. 이 때문에 관리사무소와 강남구청에는 “동물권을 보장하라” “왜 너구리 가족을 떨어뜨려 놓느냐”는 전화가 하루에 수십 통씩 빗발쳤다.
동물 보호 단체가 동물권 보장을 이유로 극단적인 주장을 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작년엔 서울 동대문구가 배봉산 둘레길에 마련한 토끼장에서 토끼 두 마리가 싸우다 한 마리가 죽자 토끼 보호 단체가 구청 앞에서 “동대문구가 울타리를 제대로 닫아두지 않아 토끼들이 죽어 나간다”고 항의했다. 개 물림 사고가 잇따르는데도 체고 40cm 이상의 개에게 입마개 착용을 의무화하는 정부 방침에 반발하는 집회를 연 것도 동물권 단체였다. 이번 너구리 사태 때는 의견이 다른 상대방에게 문자 폭탄을 보내는 정치권의 악습까지 동원하며 선을 넘었다.
동물 보호 단체는 한국 사회의 동물권 신장에 일조한 부분이 있다. 너구리가 서식지를 잃고 도심으로 내려온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사람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동물권 보장을 외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너구리를 사살하는 것도 아니고 합법적으로 포획해 야생동물센터에 인계하겠다는 아파트 측에 “왜 너구리 가족을 분리시키느냐”고 전화 폭탄을 던지는 건 더 비상식적이다. 아파트 주민들과 구청 관계자들이 안온한 일상을 영위할 권리 또한 보호받아야 한다. 동물권 때문에 인간의 행복 추구권이 제약받아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극성 팬덤 때문에 그들이 응원하는 팀이나 선수, 정치인을 다른 사람들이 비호감으로 인식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극단적 페미니스트 때문에 페미니즘을 외면하게 되고, 극성스러운 캣맘으로 인해 길고양이를 더 혐오하게 되는 식이다. 이번 너구리 사태로 일과 중에 전화 폭탄을 수십 통 받아내야 했던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강남구청 직원들이 동물 보호 단체에 느꼈을 감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극성 팬덤이 응원하는 대상을 거꾸로 비호감으로 만들듯이, 극단적 동물권 주장으로 대중의 반감을 살 필요는 없다. 동물 보호 단체가 무리하게 동물권을 들먹이지 않는 편이 역설적으로 동물권 신장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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