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눈] 약에 기대는 아이들…"의료화의 그늘"
[EBS 뉴스]
교사의 시각에서 한국 사회와 교육 현장을 짚어보는 '교사의 눈' 시간입니다.
최근 학생들 사이에서 ADHD 치료제 등 일부 약물이 이른바 '공부 잘하게 만드는 약'으로 불리며 남용되고 있는데요.
어떤 문제가 있고, 대안은 무엇일지 먼저 영상으로 보겠습니다.
[VCR]
지난해 아동청소년 15만 2천여 명 ADHD 진료
우울증 진료도 8만 8천여 명
2017년 이후 7년 만에
청소년 'ADHD.우울증' 3배 급증
"콘서타 구해요"
ADHD 치료제, '공부 잘하는 약'으로 오남용
경쟁 부추기는 교육에 자퇴생도 증가
'의료화의 그늘' 대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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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아 앵커
학생들이 의료 제도와 약물 과의존 현상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이자, 현재는 경기교사노조 김희정 대변인과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대변인님 안녕하세요.
최근 ADHD약, 콘서타를 비롯해서 학생들이 불필요하게 약물을 오남용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데요.
얼마나 심각한 겁니까?
김희정 대변인 / 경기교사노조
네, 심각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연구했던 2010년대 사례만 봐도, 원래 ADHD 치료제였던 약이 2000년대 들어서는 "두뇌 기능을 활성화한다, 머리가 좋아진다"는 식으로 광고를 했고, 2010년 들어서는 사실상 '공부 잘하는 약'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고등학생, 특히 고3 학생들의 처방 건수가 급증했습니다.
실제로 한 해의 패턴을 보면, 신학기부터 점점 늘다가 수능 직전인 10월에 최고치를 찍고, 이후 급격히 줄어드는 형태였습니다.
더 최근 자료를 보면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습니다.
지난 5년간 10대 환자 수가 2.3배 늘었고, 처방이 가장 많은 지역도 서울 강남 3구, 성남 분당, 대구 수성처럼 교육열이 높은 상위 지역들로 나타났습니다.
교육 경쟁이 심한 곳일수록 약물 사용이 집중되는 현상인 겁니다.
그리고 최근에 학부모 한 분에게서 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고등학생 자녀 대신 어머님이 병원에 가서 ADHD 진단을 받고, 그 약을 아이에게 먹이는 사례가 주변에 많다는 겁니다.
이건 단순한 치료가 아니라, 경쟁을 위해 약을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현상으로 봐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의 상황을 개인이나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경각심을 갖고 바라봐야 할 교육·사회적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서현아 앵커
어렸을 때부터 약물을 잘못 쓰면, 성인이 돼서도 벗어나기 쉽지 않을텐데요.
특히 올해부터 이런 경쟁이 더 심해지는 것 같다고요?
김희정 대변인 / 경기교사노조
비단 올해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학교 안에서의 경쟁은 해마다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한 줄 세우기식 대입도 문제인데, 거기에다가 올해 고1부터는 대부분의 과목 내신이 상대평가로 바뀌었고요, 또 최근 폐지 청원까지 나왔죠. 수행평가까지 점점 늘어나면서 학생들의 삶은 사실상 매일 매일이 시험입니다.
고교학점제로 인한 의도치 않은 부작용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한 반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함께 생활했는데, 지금은 각자 다른 수업으로 흩어지다 보니 학급 공동체 자체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정서적으로 서로 기대고 의지할 곳이 줄어든 거죠.
얼마 전 토론회에서 만난 한 학생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친구가 자고 있어도 다른 수업으로 이동할 때 깨워주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 친구가 수업을 안들어야 본인한테 유리하기 때문이라는거죠.
학급 공동체가 붕괴된 씁쓸한 모습입니다.
아이들이 숨 쉴 곳이 없어요.
결국 학생들은 매일 평가에 시달리고,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아이들의 삶은 점점 더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학교를 떠나는 학생들도 늘어나고 있는데요.
예전에는 정시 준비 때문에 자퇴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지금은 성적이 낮거나 특성화고 학생들의 이탈까지 늘고 있다는 게 현장의 우려입니다.
서현아 앵커
경쟁이 과해지는 분위기가 느껴지는데요.
결과적으로 자퇴하는 학생도 늘고 있다고요?
김희정 대변인 / 경기교사노조
올해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에 따라서, 특히 특성화고 학생들의 학교 이탈에 대한 선생님들의 우려가 매우 큽니다.
올해 1학기 말 설문조사에서 한 특성화고 담임 선생님이 "벌써 여섯 번째 자퇴원을 작성 중이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또 다른 한 상업고등학교 선생님은 한 학기동안 자퇴한 학생들이 많아서 학급 하나가 줄었다고도 하셨습니다.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죠.
예전에는 친구가 자퇴한다고 하면, 남은 학생들이 붙잡았습니다.
같이 학교 다니고 싶으니까, 그런 유대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친구의 자퇴를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과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물론 일부 학생들의 얘기이긴 하지만, "나보다 공부 못하는 애가 없어지면 내 등급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자퇴를 말리기도 하고, 또 반대로 "우리 반 친구가 자퇴하면 인원이 줄어서, 선생님이 내 학생부를 더 자세히 개별적화 해줄 수 있다"는 이유로 오히려 자퇴를 반긴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또, 등급을 위해 나보다 공부 못하는 친구에게 같은 과목 듣기를 권유하기도 합니다.
이게 과연 건강한 학교의 모습일까요?
학교는 아이들이 배려, 연대 등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배워가는 공간인데, 지금처럼 경쟁을 부추기는 구조에서는 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아이들 탓으로만 돌릴 게 아니라, 이렇게 만든 사회와 교육제도를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현아 앵커
선생님께서는 이런 과도한 경쟁사회에서 심화되고 있는 의료화에 대한 문제를 짚으셨는데, 여기서 의료화란 어떤 개념일까요?
김희정 대변인 / 경기교사노조
제가 말씀드리는 의료화는 우선 사회적인 개념에서의 의료화이고, 특히 교육적 삶에서 나타나는 과잉의료화에 한정짓는다고 말씀드릴께요.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공황장애, 불안장애, 갱년기 증후군 같은 단어는 거의 생소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흔한 병명이 되었죠.
똑같이 우리 할머니나 어머니 세대 만해도 임신이나 출산, 노화 같은 걸로 병원에 가질 않았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일상들이 대부분 의학적 관리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일상의 많은 부분이 의학적 관할권 아래 확대되는 현상을 의료화라고 합니다.
교육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저 학교 다닐 때도, 수업 시간에 산만하고 충동을 자제하지 못해서 수업을 방해하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우리는 그런 행동을'부적응' 혹은 '일탈'로 보고 선생님한테 혼나야 되는 거라고 생각했죠.
즉 일탈이나 부적응을 교육으로 해결할 문제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똑같은 행동을 보이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ADHD라고 할거에요.
의학적 영역으로 넘어간 거지요.
이런 문제는 가르쳐서 교정시켜야 하는 교육적 문제가 아니라, 전두엽과 같은 뇌의 문제로 진단하고 상담이나 약물로 해결하려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육의 의료화 현상입니다.
서현아 앵커
정리하자면, 학생들이 경쟁을 위해 약물 오남용이 많아진다는 말씀이신데, 그렇다면 교육적 해법은 없을까요?
김희정 대변인 / 경기교사노조
저는 지금 학생들이 정신과 약을 복용하는 현실에 대해 우리사회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경쟁을 완화해야 합니다.
아직 10대 청소년이 무한경쟁 속에서 매일 시험을 치르며 살아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 줄 세우기식 대입, 선택과 경쟁을 동시에 강요하는 고교학점제 안에서 아이들은 쉽게 실패감과 좌절을 경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ADHD 학생들은 수렵채취 사회였다면 오히려 1등으로 오래 살아남았을 거라는 비유가 있습니다.
결국 환경이 정상성을 결정하는 거죠.
지금 아이들이 문제인 게 아니라, 아이들을 끊임없이 줄 세우는 이 환경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치료 목적으로 약이 꼭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지금처럼 치열한 경쟁사회에서는 약이 '치료'가 아니라 '경쟁의 보조 수단'으로 쓰일 위험이 큽니다. 실제로 집중력·기억력 강화를 위해 약에 기대는 학생들이 늘고 있습니다.
저도 고등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보면서 정말 마음이 아픈 순간이 많습니다.
최근 들어 ADHD뿐 아니라 우울·불안으로 약을 먹는 학생들도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즐겁게 학교 다니면서 미래를 꿈꿔야 하는 학생들이 이런 경쟁 속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마음도 약으로 관리하게 되는 거지요.
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고등학생이 2020년 22,687명에서 2024년 40,353명으로 1.8배 증가했습니다.
특히 경쟁이 심한 수도권에서 그 증가세가 두드러졌습니다.
저는 답이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실패해도 괜찮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좌절감을 느끼지 않고, 안전하게 다시 자기 길을 찾아가며 성장할 수 있도록 사회가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줘야 합니다.
그게 약보다 훨씬 근본적인 교육적 해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서현아 앵커
어린 학생들조차 점점 더 약물에 의존하게 되는 현실.
결국, 약보다 더 든든한, 그리고 마음으로 다가가는 교육 울타리가 필요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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