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문자주의의 덫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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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한 건강기능식품 광고가 동양의학의 한 고전을 인용하는 것을 보고 현대 의학의 검증 없이 그 고전의 권위에만 기대어 효능을 선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취지의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쓴 적이 있다.
반대로 특정 처방을 글자 그대로 적용해 수은이나 비소를 써야 한다고 고집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그 고전의 위대한 정신을 거스르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든 고전이 특정한 역사적·문화적 배경 속에서 탄생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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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뜻 왜곡되고 갈등 불씨돼
오늘날 던지는 질문이 뭔지
다함께 고민하고 해석할 때
더나은 공동체 만들 수 있어

몇 해 전, 한 건강기능식품 광고가 동양의학의 한 고전을 인용하는 것을 보고 현대 의학의 검증 없이 그 고전의 권위에만 기대어 효능을 선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취지의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쓴 적이 있다. 이 글에 한 팔로어가 '당신이 누구이기에 감히 이 위대한 고전을 함부로 평하느냐'는 식의 신랄한 댓글을 달았다. 두말할 나위 없이 그 책은 아시아 의학사에 우뚝 솟은 위대한 고전이다.
하지만 그 책을 글자 그대로 따른다면, 내가 앓고 있는 천식을 고치기 위해 비소(砒素) 화합물이 든 약을 먹어야 할 수도 있다. 그 고전이 품고 있는 생명 존중의 정신,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추구하는 철학,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끊임없이 발전을 모색한 연구 정신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계승해야 할 진정한 가치다. 반대로 특정 처방을 글자 그대로 적용해 수은이나 비소를 써야 한다고 고집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그 고전의 위대한 정신을 거스르는 일이다.
이는 비단 의학서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예를 들어 과학계의 고전인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나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다윈은 DNA를 몰랐고, 지동설을 주장하기 위한 갈릴레이의 논증은 부정확한 점이 여럿 있었다. 그럼에도 그 책이 고전으로 필독서인 이유는 그 책의 과학사적 가치와 이후 과학 연구의 방향을 설정한 데에 있다. 만약 누군가 대학 교재로 그 두 책을 채택해서 진화와 천문학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다윈과 갈릴레이를 존경하는 과학자도 이에 반대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분열과 갈등의 중심에 놓인 종교와 이념을 다루는 고전을 향한 우리의 태도 역시 새삼스럽게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인류의 정신사에 결정적으로 공헌해 온 종교 경전이나 이념의 원전(元典)들은 우리 시대의 자산이자 권위의 출처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든 고전이 특정한 역사적·문화적 배경 속에서 탄생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고전이 오늘 이곳에서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숙고해야 하며, 이러한 노력을 통해서만 고전의 참된 가치가 발현될 수 있다. 나는 이를 위해 고전 앞에 책임감 있는 건강한 '해석의 공동체'가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며 해석의 방향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공동체는 고전을 비롯한 과거와 현재의 권위들을 향해 '인류 보편의 사랑을 증진시키는가? 우리 공동체의 조화와 신뢰를 드높이는가? 나아가 지속가능한 미래에 기여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치열하게 던지고 답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문자주의와 근본주의의 목소리는 막강하다. 모호하고 불확실한 세상에서 삶의 닻을 내릴 근거마저 흔들린다면 그 불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바로 그 불안과 두려움의 순간에, 문자주의적 태도가 원전의 본뜻을 가장 극적으로 왜곡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문자주의는 자신의 두려움과 고정관념에 따른 해석만을 유일한 진리라 고집하는 지적 나태이자 위험한 독선이며, 극단주의의 뿌리이다. 결국 그들은 고전을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시키고 만다. 이와 같이 될 때 사회의 갈등은 되돌이킬 수 없게 된다.
고전에 대한 진정한 존중은 박제된 문자에 갇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안에 담긴 깊은 정신과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생생하게 되살려내는 끊임없는 해석의 여정에 있다. 보편적 가치를 탐구하는 열린 '해석의 공동체'를 통해, 우리는 문자의 덫에서 벗어나 더 나은 공동체의 미래를 기획할 수 있을 것이다.
[김학철 연세대 학부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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