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동맹 확인한 이재명·트럼프 첫 정상회담] 대미 외교 첫 고비 넘겼지만 ‘트럼프 입’에 불확실성 여전

이용성 국제전문기자 2025. 9. 5.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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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왼쪽)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월 25일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도중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AFP연합

“우려했던 ‘젤렌스키 모멘트’ 피했다.” 미국 백악관에서 8월 25일(이하 현지시각)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재계가 기대했던 추가 관세 인하 등의 낭보는 없었다. 하지만 주요 외신은 “우려됐던 긴장은 피했다”면서 “트럼프의 환심을 사기 위한 이 대통령의 노력이 성과를 거뒀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젤렌스키 모멘트는 2월 28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트럼프와 정상회담 당시 ‘굴욕 외교’를 당했던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당시 트럼프는 “미국이 없으면 당신에게는 아무 카드도 없다”고 젤렌스키를 몰아붙였고, 준비된 오찬도 함께하지 않았다. 회담을 3시간여 앞둔 오전 9시 20분에 트럼프가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숙청이나 혁명처럼 보인다”는 글을 올리면서 이 대통령이 회담에서 곤혹스러운 순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숙청 및 혁명’의 의미를 정확히 밝히진 않았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을 겨냥한 특검 수사를 의식한 발언이란 해석이 나왔다.

트럼프는 이날 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행정명령 서명 행사에서 게시글에 대한 취재진 질문에 “최근 며칠간 한국에서 새 정부에 의한 교회와 미군 기지 압수수색이 있었다고 들었다”며 “그렇게 해서는 안 됐을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 같은 언급에 대해 회담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전형적인 트럼프식 전략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다행히 우려했던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이날 집무실 밖으로 나와 이 대통령을 맞이했고, 두 정상은 회담 내내 서로를 치켜세우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회담 초반 트럼프는 자신이 올린 트루스소셜 글과 관련해 이 대통령의 설명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친위 쿠데타로부터 회복된 지 얼마 안 됐다. 국회가 주도하는 특검에 의해 사실관계를 확인 중” 이라며 “미군을 직접 조사한 게 아니고 그 부대 안에 있는 한국군의 통제 시스템을 확인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오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李 칭찬의 기술, 한미 동맹 첫 허들 넘겨

트럼프의 ‘거래의 기술’을 공부했다는 이 대통령의 ‘칭찬 기술’도 한미 동맹 시험대의 첫 허들을 넘는 데 기여했다. 이날 오후 12시 40분쯤 백악관 오벌 오피스(집무실)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마주 앉은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께서 오벌 오피스를 새로 꾸미고 있다는데, 밝고 황금색으로 빛나는 게 정말 보기 좋다. 미국의 새로운 번영을 상징하는 것 같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트럼프의 넥타이와 비슷한 붉은 넥타이로 색조를 맞춘 이 대통령은 이후에도 “(다우존스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던데, 미국이 다시 위대해지고 있는 것 같다”며 칭찬을 이어갔다. 또 “유럽·아시아·아프리카· 중동 등 여러 곳의 전쟁이 이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역할로 휴전하고 평화가 찾아오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한반도 피스 메이커 트럼프” 띄운 李 “난 페이스 메이커 역할 할 것”

회담 초반 다소 경직됐던 트럼프의 표정은 이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도 만나고, 북한에 트럼프 월드도 하나 지어달라”고 말하자 눈에 띄게 풀어졌다. “대통령께서 (평화를만드는) 피스 메이커를 하시면 저는 (보조를 맞춰 협력하는) 페이스 메이커로 열심히 지원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에 웃음을 머금은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그(김정은)를 만나고 싶다”고 화답했다.

무역 합의 유지 속 1500억弗 대미 투자 발표

트럼프는 정상회담을 마친 뒤 열린 포고문 서명식에서 한미 양국이 지난 7월 합의한 무역협정에 대한 기자 질문에 “한국 측에서 일부 이견이 있었지만, 우리는 우리 입장을 지켰다”며 “그들은 이미 합의한 내용을 이행하기로 동의했다”고 강조했다. 앞서 한국과 미국은 7월 30일, 약 3500억달러(약 484조9250억원) 규모의 대미 투자와 1000억달러(약 138조5500억원) 상당의 미국산 에너지 구매를 조건으로 미국이 한국에 부과한 상호 관세율을 기존 25%에서 15%로 인하하는 데 합의한 바 있다.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 기업은 1500억달러(약 207조8300억원)의 추가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삼성, HD현대, 한진, 두산을 비롯한 국내 주요 그룹은 조선, 차세대 원자력, 항공, LNG(액화천연가스), 핵심 광물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미국 측과 총 11건의 계약 및 MOU(양해 각서)를 체결했다.

트럼프는 회담에서 “우리가 한국의 배를 구매하고 미국 노동자를 활용해 함께 선박을 건조하고, 다시 조선업에 복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전략의 실효성이 입증된 순간이었다. 이에 화답하듯 한화그룹은 8월 26일 미국 필라델피아 한화필리조선소에 50억달러(약 6조9275억원)를 투자해 현재 연간 1~1.5척 수준인 선박 건조 능력을 20척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삼성중공업은 비거마린그룹과 미국 해군 지원함 공동 건조 협력에 나선다. 현대차그룹은 미국에 연산 3만 대 로봇 공장 신설을 위해 5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지난 3월 밝힌 향후 4년간 대미 투자 계획 규모를 210억달러(약 29조955억원)에서 260억달러(약 36조230억원)로 늘린 것이다. 대한항공은 미국 보잉에서 362억달러(약 50조1551억원) 상당의 항공기 103대를 2030년까지 순차적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미·중 갈등 속 실용 좇는 한국

트럼프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좋은 관계고, 비교적 최근 대화를 나눴다” 면서 “아마도 올해 안이나 조만간 중국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 APEC 정상회의를 전후해 시 주석과 정상회담 가능성도 제기된다. 트럼프는 이날 취재진이 방중 계획을 묻자 이 대통령에게 “같이 갈 수 있나. 전용기를 같이 타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오존층 파괴도 막을 수 있다” 고 농담을 건넸다. 이에 이재명 대통령은 “같이 가면 좋겠다”고 화답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초청 강연에서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심하게 말하면 봉쇄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미경중(安美經中)’의 입장을 유지했던 것이 사실” 이라며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미국 정책이 명확하게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가면서 과거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車 관세 인하 언제?⋯끝나지 않은 줄다리기

이재명 정부의 첫 한미 정상회담은 통상과 안보 분야의 세부 내용은 다뤄지지 않았다는 한계도 있다. 미국은 7월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와 부품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한국과 약속했지만, 인하 시기를 아직도 밝히지 않고 있다. 트럼프의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한국 참여 압박이 재점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는 “일본처럼 한국과도 알래스카 LNG 조인트벤처를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회담 관련 구속력 있는 문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트럼프 한마디에 따라 언제든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Plus Point
한미 동맹 걸림돌 한일 긴장 해소

이번 회담에서 트럼프는 “과거사 때문에 한국과 일본이 잘 지내기가 어려운 것인가”라고 물었고, 이 대통령은 “미리 일본과 만나서 대통령께서 걱정하는 문제를 미리 다 정리했다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8월 23일(한국시각) 일본에서 진행한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을 언급한 것이다. 트럼프는 “한국이 일본과 훌륭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호응했다.

이 대통령은 앞서 8월 23일 이시바 총리와 정상회담 뒤 한일 관계의 경전이 된 1998년의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기반해 발전적 관계를 도모하기로 하는 내용의 공동 언론 발표문을 냈다. 한일 정상회담 후 합의된 문서 형태로 결과가 발표된 것은 17년 만으로, 양 정상은 발표문에서 “미래지향적이고 상호 호혜적인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한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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