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의 팝코노믹스 <16>] ‘보디가드’ 주제곡도 리메이크? ‘다시 부르기’의 경제학
최근 가요계에서 특히 발라드를 중심으로 리메이크 바람이 강한데, 업계에서는 이런 해석도 내놓는다.플랫폼 다변화로 신곡이 주목받기 힘들뿐더러, 스테디셀러 군단이 여러 차트에서 장기 집권하면서 ‘10년 전이고,20년 전이고 이미 대중에게 한 번 제대로 검증된 선율과 분위기의 곡으로 승부하자’는 분위기가 강해졌다는 것이다.

‘앤다~~~~~이야~’
세기말을 산 여러분은 아마도 1990년대를 풍미한 이와 같은 귀 벌레(earworm) 하나를 알고 있으리라. 저것은 ‘And I…’다. 즉, ‘I Will Always Love You’의 인상적인 후렴구 일부다. 휘트니 휴스턴의 절창이 활화산처럼 분출하는 곡.
1992년 휴스턴이 가수로 나오고 케빈 코스트너가 그 보디가드로 나온 할리우드 히트 영화 ‘보디가드’의 주제곡. 그런데 이 곡이 리메이크곡이라는 걸 아는지.
원곡은 1974년 돌리 파톤이 짓고 불러 발표했다. 그의 또 다른 히트곡인 ‘Jolene’과 함께 그해 앨범 ‘Jolene’에 실었던 곡이다. 돌리 파톤의 원곡 ‘I Will Always Love You’는 놀랍게도 연인 간 사랑 노래가 아니다. TV쇼 호스트이자 가수이며 파톤을 스타덤으로 이끌어준 사업 파트너였던 포터 웨거너를 향한 고별가다. 쉽게 말하면, “계약 연장은 안 할 테니 날 좀 놔줘라. 그동안 고마웠고 늘 사랑할 것이다”라고 하는 비즈니스 고별가다. 1970·80년대에도 꽤 불렸지만, 원곡을 능가하는 명성과 인기를 누린 것은 휴스턴의 1992년 버전이다. 하긴 ‘나 이제 (비즈니스) 독립할게요’보다 ‘내 평생의 사랑, 안녕히’가 더욱 대중의 가슴을 울릴 주제 아닌가. 절절한 멜로 액션 영화까지 덧입었으니, 과연 ‘앤다~~~~~이야~’ 신드롬은 우리 시조 ‘청산리 벽계수야’의 ‘청산~~~~’만큼이나 길고도 강렬했다.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무려 14주 연속 1위. 지난해까지 이 싱글은 2400만 장이 팔려나간 것으로 추산된다. 1992년 크리스마스 주간 7일 동안에만 미국에서 63만2000장이 팔린 것도 기록적이다. 주머니 탈탈 털어 연인을 위해, 가족을 위해 ‘I Will Always Love You’를 구매하는 모습이 미국 도시의 흔한 풍경이었다는 얘기다. 돌리 파톤의 원곡이 1974년 발표 당시에 빌보드 컨트리 차트 1위로 만족했다면, 휴스턴의 리메이크는 이 곡을 R&B 팝의 고전이자 20세기 러브 송의 금자탑으로 올려놨다.

가요계 리메이크 열풍 견인하는 ‘추억의 발라드’
리메이크가 이렇다. 같은 노래를 다시 부르는 것이지만, 잘만 하면 원곡을 팝 고고학의 영역에 파묻어버릴 정도의 가공할 위력을 과시한다. 물론 훌륭한 편곡과 해석력, 타이밍은 히트에 필수다. 이런 노래는 어떠한가.
‘우~ 풍문으로 들었소/ 그대에게 애인이 생겼다는 그 말을’ 2012년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를 통해서 유행하기 시작한 이 노래, 장기하와 얼굴들(장얼)의 곡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원곡은 따로 있다. 1980년 함중아와 양키스가 발표한 ‘풍문으로 들었소’다. 쨍한 오르간 소리를 필두로 한 장얼의 복고풍 리메이크도 좋지만, 원곡이 가진 오라도 상당하다.
최근 국내 가요 차트나 신곡 리스트를 보면, 리메이크 힘이 세다는 걸 절감한다. 황가람의 ‘나는 반딧불’은 중식이 밴드의 곡, 이창섭의 ‘천상연’은 캔(CAN)의 곡을 리메이크한 트랙이다. 그룹 이달의 소녀 출신으로 각종 CF와 숏폼 콘텐츠로도 유명한 츄(CHUU)는 거의 리메이크 전문 가수로 가는 모양새다. 박혜경의 ‘고백’, 투투의 ‘일과 이분의 일’, 김건모의 ‘아름다운 이별’, 러브홀릭의 ‘Love-holic’을 줄줄이 리메이크하더니 8월에도 유미의 ‘별’을 다시 불러 내놨다.
최근 가요계에서 특히 발라드를 중심으로 리메이크 바람이 강한데, 업계에서는 이런 해석도 내놓는다. 플랫폼 다변화로 신곡이 주목받기 힘들뿐더러, 스테디셀러 군단이 여러 차트에서 장기 집권하면서 ‘10년 전이고, 20년 전이고 이미 대중에게 한 번 제대로 검증된 선율과 분위기의 곡으로 승부하자’는 분위기가 강해졌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가 세기말, 세기 초 노래를 되레 신선해하고 재발견하고 있는 흐름과도 맞아떨어지고 말이다.

팝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의 ‘Hound Dog’도 리메이크곡
그렇다면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많이 리메이크된 곡은 뭘까. 비틀스의 ‘Yesterday’라는 게 중론이다. 기네스 기록에 따르면, 3000회 이상 리메이크돼 이 분야 최고 자리를 지킨다. 그러나 재즈 스탠더드를 간과해선 안 된다. 대개 20세기 초에 뮤지컬이나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곡들인데, ‘Summertime’ ‘Over the Rainbow’ ‘My Funny Valentine’ 등등. 이들은 여전히 수많은 재즈 연주자의 연주를 통해 음반에서, 무대 위에서 끊임없이 리메이크된다. 리메이크는 때로 원곡을 덮어써 버리기도 한다. 빅 마마 손튼의 1952년 곡 ‘Hound Dog’는 4년 뒤 골반을 흔들며 등장한 잘생긴 젊은이 엘비스 프레슬리가 리메이크하면서 비로소 서양 팝의 고전이 됐다. 캐나다의 음유시인 레너드 코언의 1984년 명곡 ‘Hallelujah’는 10년 뒤 저음 대신 고음의 토로를 뿜어낸 제프 버클리(1966~97)의 빼어난 리메이크와 안타까운 요절을 통해 천상의 음악처럼 인식되게 됐다.
리메이크, 메이크(make·만들다)에 리(re-· 다시)를 붙였을 뿐이다. 다시 만든 노래는 새로 만든 노래 못지않은 정서적·서사적·산업적 파급력이 있다. 계절이 순환하듯, 노래도 순환한다. 2025년의 노래는 또 어떤 가객을 만나 다시, 만들어질까. 그때 그 노래는 어떤 스토리와 정서와 템포를 입고 그때의 대중을 흔들어놓을까. 팝은 철저히 현재의 음악이지만 과거가 있고 미래가 있기에 보고 듣는 맛이더한다. 팝은 이렇게 오늘도 맛있다.
Copyright © 이코노미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