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붐비고 여름엔 텅텅...중동 비즈니스 왜 이럴까? [파일럿 Johan의 아라비안나이트]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건강기능식품을 취급하는 모 대표가 웃으며 물었다. 평소 비즈니스 경험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는 것. 또한 8월 한 달간 매출이 6월의 20%에도 못 미쳤다고 했다.
“두바이 여름은 50도가 넘어요. 현지인들은 거의 다 유럽으로 피서 가고, 남아있는 사람들도 집 밖에 안 나옵니다. 저도 지난주 열흘 넘게 유럽 스위스로 휴가 다녀왔네요.”
현지에서 무역업을 운영하는 한 스타트업 대표의 말이다. 반대로 그는 작년 라마단 기간에만 평소 3개월치 매출을 올렸다고 자랑했다. “한국에 설날 대목이 있듯이, 여기도 라마단과 이드가 최대 대목이에요. 이 타이밍을 놓치면 1년 농사가 어려워지는거죠.”
쉽지만 중동 비즈니스에서 놓치기 쉬운 것 중 하나가 각종 공휴일과 종교 행사의 비즈니스 영향력이다. 중동 내 사업의 성패는 달력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이 달력이 우리가 아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라마단 시작 날짜를 정확히 예측하고 준비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실제로 달 관측 결과에 따라 하루 이틀 더 변동되거든요. 심지어 나라마다 각각 다 달라요.” 두바이에서 K-뷰티 제품을 유통하는 대표의 설명이다.
라마단 기간 중 낮 시간은 비즈니스가 거의 멈춘다. 일출부터 일몰까지 금식하는 무슬림들은 오전 9시에 출근해도 오후 2~3시면 퇴근한다. UAE 노동법상 라마단 기간 근로시간은 일 6시간으로 단축된다.
하지만 일몰 후에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이프타르(Iftar, 금식을 깨는 저녁 식사) 시간인 오후 6시 30분경부터 도시 전체가 활기를 띤다. 가족들과 함께 외식을 즐기고, 쇼핑몰은 새벽 2시까지 문을 연다.
실제로 두바이 데이라에서 한국식 치킨을 취급하는 한 업체는 작년 라마단 한 달 매출이 평소 3개월치와 맞먹었다. 현지 매니저는 “이프타르 시간에 맞춰 따끈한 치킨을 배달하면 프리미엄 가격을 받고도 주문이 밀렸다”고 전했다.

보통 이드 2주 전부터 매장이 미어터지는데, 특히 전자제품, 금, 의류, 화장품이 불티나게 팔린다고 알려져 있다. 이드 기간 3일 매출이 평소 한 달 매출과 맞먹기에 실제로 많은 브랜드가 총력전을 기울인다.
6월에는 또 다른 이드인 이드 알아드하(Eid Al-Adha, 희생제)가 있다. 올해는 6월 6일부터 9일까지였다. 이 기간에는 정부기관이 최대 9일간 휴무에 들어가고, 대부분의 현지인이 조지아, 튀르키예 등으로 해외여행을 떠난다.
아부다비에서 현지 여행사를 운영하는 한국인 관계자는 “이드 알아드하는 한국의 설날 같아서 가족 모임이 많고 여행 수요가 폭발적”이라며 “B2B 비즈니스는 완전히 멈추지만, 여행사나 호텔업은 대목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학교도 6월 말부터 9월 초까지 긴 여름방학에 들어간다. “현지 부유층은 거의 다 유럽으로 피서 가고, 남은 사람들도 집 밖에 안 나옵니다. 많은 한국인들도 아이와 엄마가 같이 한국에 들어가서 여름방학 기간에 안 들어와요.”
직장인들도 이 시기에 연가를 몰아서 쓴다. 정부 고위 관료나 기업 임원들이 한 달씩 자리를 비우는 것도 흔한 일이다.
하지만 역발상으로 기회를 찾는 기업들도 있다. “여름은 임대료 협상 최적기예요. 20~30% 할인받을 수 있고, 장기 계약하면 더 깎아줍니다.” 작년 8월 두바이에 사무실을 구한 IT기업 대표의 팁이다.
또 이 시기를 활용해 매장 리뉴얼이나 직원 교육, 신메뉴 개발 등 내부 정비에 집중하는 것도 방법이다. 일부 호텔과 레스토랑은 ‘서머 스테이케이션’ 패키지로 현지 거주 외국인들을 공략하기도 한다.

특히 1~3월은 주요 전시회와 컨퍼런스가 집중된다. 1월 둘째 주 ‘아랍 헬스’, 2월 ‘걸푸드(Gulfood)’, 3월 ‘아트 두바이’ 등 글로벌 행사가 줄을 잇는다. 디자인 관련 업체 관계자는 “예술 전시회는 중동 비즈니스의 중요한 네트워킹 기회”라며 “특히 아트두바이 같은 대형 미술전시회는 놓치면 안 된다”고 말했다.
9-11월은 새 학기가 시작되고 하반기 비즈니스가 재개되는 시기다. 특히 정부 예산 집행이 본격화되면서 각종 프로젝트 발주가 쏟아진다. “9월부터 11월에는 정부와 기업들의 프로젝트 발주가 집중돼요. 이 시기를 놓치면 안 되기 때문에 영업팀이 가장 바쁘게 움직입니다.” 현지 이벤트 전시업체 담당자가 한 말이다.
12월 2-3일 UAE 내셔널데이(건국기념일)도 놓칠 수 없는 기회다. 이 기간 전후로 대규모 세일 행사가 열리고, 애국심 마케팅이 활발하다. UAE 국기 색상(빨강, 초록, 흰색, 검정)을 활용한 한정판 제품이 인기를 끈다.

두바이 초보 사업가들이 흔히 하는 실수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금요일은 ‘주무아(Jummah, 합동 예배일)’로 한국의 일요일과 같다. 특히 금요일 정오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는 모스크에서 집단 기도를 드리는 신성한 시간이다.
2022년부터 UAE는 주말을 금·토에서 토·일로 변경했다. 글로벌 비즈니스와 싱크를 맞추기 위해서다. 하지만 금요일은 금요일대로 중요하다 보니 현지 관공서나 업체들은 오후 12시까지 반일만 근무하는 곳이 많다. 실질적인 4.5일 근무제다.
현지인과 효율적인 미팅 스케줄을 짜려면 일요일부터 목요일 오전이 최적이다. “라마단 기간과 여름철을 빼면 실제 영업 가능일이 연 200일 정도예요”라고 현지 기업인들은 입을 모은다.

중동 시장의 리듬을 이해하고 올라타면 남들이 놓치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라마단에 재고를 준비하고, 이드에 프로모션을 걸고, 여름엔 충전하며, 가을겨울에 힘차게 달리는 것. 이것이 중동에서 하는 장사의 기본 사이클인 것이다.
※ 도움말 및 참고자료 = UAE 정부 포털, 두바이 상공회의소, 두바이·아부다비 관광청,코트라 두바이 무역관, 현지 한국 기업 인터뷰 종합
[원요환 UAE항공사 파일럿 (前매일경제 기자)]
john.won3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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