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결자, 바우, 바보 검프...이 영화들, 이런 한글 제목으로 개봉했더라면 어땠을까 [말록 홈즈]

2025. 9. 5.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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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렉스 에티몰로지’란 ‘자랑용(flex) 어원풀이(etymology)’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쓰는 말들의 본래 뜻을 찾아, 독자를 ‘지식인싸’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작은 단서들로 큰 사건을 풀어 나가는 셜록 홈즈처럼, 말록 홈즈는 어원 하나하나의 뜻에서 생활 속 궁금증을 해결해 드립니다.다우리는 단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지만, 정작 그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쓰곤 합니다. 고학력과 스마트 기기가 일상화된 시대에, ‘문해력 감소’라는 ‘글 읽는 까막눈 현상’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습니다. 단어는 사물과 현상의 특성을 가장 핵심적으로 축약한 기초개념입니다. 우리는 단어의 뜻을 찾아가면서, 지식의 본질과 핵심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와 학교를 떠난 이들의 지식 인싸력도 레벨업됩니다.
구글 제미나이로, 영화관 앞에서 영화제목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커플과 제목 뜻을 이해하고 싱긋 웃는 커플을 그려보았다. 철자를 제멋대로 쓴다.
“형, F1이 무슨 뜻이에요? 내일 아들이랑 F1 더 무비 보러가는데 알려주려고요.”

“챗GPT나 제미나이한테 먼저 물어봐.”

“형, 모르는구나?”

“쳇, 정답!”

시리즈 드라마에 기죽어 지내던 영화가 어깨를 펴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비롯해 ‘좀비딸’, ‘F1 더 무비’, ‘귀멸의 칼날’ 같은 작품들이 흥행하며, 침체됐던 영화계에 활기가 느껴집니다.

영화(映畫: 비칠 영, 그림 화)는 영사기에서 쏜 빛이 스크린에 비쳐진 그림입니다. 우리나라에 영화가 처음 들어왔던 개화기에는, 영상이 움직여 ‘활동사진(活動寫眞: 살 활, 움직일 동, 베낄 사, 참 진)’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영화의 원조 단어 ‘무비(movie)’는 이런 특성을 두드러지게 나타낸 말입니다. 어원을 깐깐하게 적용하면, ‘케데헌’이 영화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스크린에 비친 적도 없죠. 인생 참 피곤하게 삽니다. 또 다른 영단어 ‘필름(film)’은 ‘피부/가죽’을 뜻하는 인도유럽조어(Proto-Indo-European Language) ‘pel-‘에서 왔습니다. 사진술의 발달과 함께 얇은 막에 감광유제(感光乳劑: 느낄 감, 빛 광, 젖 유, 약제 제)를 바른 ‘사진 필름’을 가리켰습니다. 이후 에디슨과 뤼미에르 형제 같은 발명가들이 움직이는 사진을 찍는 데 이를 사용하며, 필름은 영화라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영화와 극장을 가리키는 단어 ‘시네마(cinema)’는 ‘움직이다’란 뜻의 고대 그리스어 ‘kinema’에서 유래했습니다. 지금은 쓰지 않는 우리말 ‘활동사진’이 영화의 본질을 정확히 드러냈었군요.

영화를 접할 때 처음 보는 건 제목입니다. 제목은 그 자체로 스포일러이자 암호입니다. 이야기의 암시와 복선도 예상할 수 있고, 주제와 감정선도 더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결국 제목은 작품의 첫 번째 예고편인 셈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영화들의 작품제목들을 직관적으로 이해합니다. 제가 사랑하는 ‘말죽거리 잔혹사’, ‘시네마 천국’, ‘러브 액추얼리’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종종 이해하지 못하거나 별 생각 없이 봤던 영화들도 적지 않습니다.

헐리우드 영화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에서 ‘포레스트’는 숲을 가리키는 ‘forest’의 다른 철자로, 현대에는 사람의 이름에만 쓰입니다. ‘검프’는 ‘얼간이, 멍청이’를 뜻합니다. 정리하면 ‘바보 포레스트’나 ‘모질이 포레스트’가 됩니다. 숲처럼 많은 것을 품고 베푸는 주인공의 성품과 활동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바보 이반’이 떠오릅니다. 러시아 사회의 부패와 모순, 부조리도 어쩌지 못하는 이반의 착한 성공과 행복이 그려진다는 점에서 바보 포레스트와 많이 닮았습니다. ‘캐리비안의 해적(Pirates of Caribbean)’은 ‘카리브해의 해적’을 뜻합니다. 이 해적녀석들의 모험이 펼쳐진 지역이 카리브해라 붙은 제목인데, 저 같은 검프는 에버랜드의 캐리비안 베이를 떠올립니다. 주인공 ‘잭 스패로우(Jack Sparrow)’는 ‘참새 잭’이란 의미입니다. 해적들에게 붙을 법한 ‘백상어 제임스’나 ‘범고래 조지’ 같은 흉포한 이름이 아니죠. 참새처럼 유약하고 재잘대는 비실비실 수다쟁이 주인공의 성격을 알 수 있습니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각본을 쓰고 주연을 맡았던 ‘록키(Rocky)’도 바위처럼 투박하고 우직한 주인공의 성품을 그러내 줍니다. 제목을 우리말로 ‘바우’로 바꿨다면, 흥행에 큰 변화가 있었을 듯합니다. 아놀드 슈왈츠제너거의 분신 같은 작품 ‘터미네이터(Terminator)’는 ‘끝장을 내는 사람’입니다. 같은 의미의 한자어 ‘종결자(終結者: 마칠 종, 맺을 결, 사람 자)’로 썼다면 말맛이 안 날 것 같긴 합니다. 매트릭스로 발음하는 ‘메이트릭스(Matrix)’는 본래 자궁(子宮: 자식 자, 집 궁), 모체(母體: 어머니 모, 몸 체), 주형(鑄型: 부어만들 주, 모양 형), 행렬 등을 뜻합니다. ‘잠든 인류를 가상세계에서 꿈꾸며 활동하게 만드는 모체나 틀’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으로 알려진 ‘슬리플리스 인 시애틀(Sleepless in Seatle)’은 라디오에 독자 사연을 보낸 주인공 아들 ‘조나’의 필명입니다. ‘시애틀에서 잠 못 드는 이’를 나타내죠. ‘잠 못 이루는 밤’이 아니라, ‘잠 못 이루는 사람’이 본뜻입니다.

가족의 원수도 없던 X세대 청소년들을 복수에 열광하게 만들었던 홍콩영화 중에는 아리송한 작품이 더 많아 보입니다. 성냥개비, 선글라스, 쌍권총, 공중전화로 대표되는 ‘영웅본색(英雄本色: 꽃부리 영, 수컷 웅, 바탕 본, 빛 색)’은 ‘영웅의 본래 모습’을 뜻합니다. 민화투도 못 치던 순둥이들을 포커판으로 끌어모았던 ‘지존무상(至尊無上: 이를 지, 높을 존, 없을 무, 위 상)’은 ‘더 높은 이가 없는 고귀한 자’를 의미합니다. ‘최고 타짜’보다 더 높은 경지의 도박꾼을 떠올려 봅니다. 귀신이 꽃보다 아름다웠던 왕조현 누나의 ‘천녀유혼(倩女幽魂: 예쁠 천, 여인 여, 그윽할 유, 영혼 혼)’은 ‘아름다운 여인의 넋’을 가리킵니다. ‘유혼(幽魂)’은 ‘망령’이나 ‘죽은 이의 혼’을 이르는 말입니다. 주인공이 하늘나라 선녀처럼 예뻐서 천(天女)로 오해하는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1982년 개봉했던 코미디영화 ‘최가박당(最佳拍檔: 가장 최, 아름다울 가, 손뼉 칠 박, 격자로 짠 선반 장)’은 ‘최고의 파트너’란 의미로, 최가(最佳)는 ‘가장 좋은’을 박당(拍檔)은 ‘협력자’를 의미합니다. 지난 7월 OTT 로 한 서극 감독의 ‘사조영웅전(射雕英雄傳: 쏠 사, 수리 조, 꽃부리 영, 수컷 웅, 일대기 전) 협지대자(侠之大者: 의로울 협, ~의 지, 큰 대, 사람 자)’의 뜻은 ‘독수리를 쏜 영웅’에서 주인공 곽정이 명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협자대자에서 주요 인물이 ‘의협심을 가진 큰 인물’이 등장하거나 이러한 영웅으로 성장한다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제목의 뜻을 이해하면 보이지 않던 재미가 보입니다. 영화는 감각기관으로 느끼는 예술이고, 제목은 머리로 생각하는 암호입니다. 이 암호를 풀게 되면, 작품의 재미는 두 배가 됩니다.

참, 수많은 양들을 목장으로 모는 개 보더콜리처럼, 엄청난 기세로 관객을 극장으로 몰고 있는 최신작 ‘귀멸의 칼날(鬼滅の刃: 귀신 귀, 멸할 멸, 칼날 인)’은, ‘귀신을 멸망시키는 칼날’을 뜻합니다.

*감수: 안희돈 교수(건국대 영어영문학과). 건국대 다언어다문화연구소 소장. 전 한국언어학회 회장

[필자 소개]

말록 홈즈. 어원 연구가/작가/커뮤니케이터/크리에이터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23년째 활동 중. 기자들이 손꼽는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커뮤니케이터. 회사와 제품 소개에 멀티랭귀지 어원풀이를 적극적으로 활용. 어원풀이와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융합해, 기업 유튜브 영상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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