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주단옥, 야케모토 타마코, 올가송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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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특정 단어가 얄팍한 사전적 의미를 넘어 명확한 실체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작가는 단옥을 비롯한 디아스포라의 삶을 비극과 비참, 무력한 피해자의 그것으로 재현하는 대신, 굴곡진 그들의 삶이 품은 슬픔의 틈새에서 기어이 기쁨과 자부심을 길어 올린다.
단옥과 그 남편 진수가 제주에서 '평생 처음 받아본 환대'가 이 작품을 계기로 우리의 형제요 이웃인 또 다른 디아스포라들에게 흘러가기를, 그리하여 서로의 슬픔의 틈새를 비추는 작은 불빛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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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특정 단어가 얄팍한 사전적 의미를 넘어 명확한 실체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나는 디아스포라(Diaspora)를 그렇게 만났다. 대학원에서 같은 지도교수의 지도를 받던 유학생 선배가 있었다. 조선족인 그는 다른 선배들이 ‘콩사탕'(공산당)이라고 놀려도 늘 재치 있게 넘겼는데, 한번 벌컥 화를 낸 적이 있다. 중국과 한국의 축구 국가대항전이 있던 날, 술자리에서 한국인 선배들이 그에게 어느 나라를 응원하느냐 물었다. 사람들은 에두르려는 그를 집요하게 몰아갔고, 결국 그는 중국을 응원한다고 말했다. 콩사탕과 배신자라는 말을 섞은 야유가 계속되자 그가 정색했다. “너희는 내가 왜 한국을 응원해야 한다고 하니? 만날 나한테 콩사탕이라 하지 않았어? 너희 편할 때만 내가 한국인이야? 나는 공산당이고 중국인이야.”
대한민국의 디아스포라는 한국이 대한제국일 때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일제강점기 다양한 이유로 이 땅을 떠난 사람들. 가까운 만주와 상하이, 오사카와 홋카이도, 블라디보스토크와 사할린을 넘어 동아시아의 각 지역과 하와이, 멕시코까지 퍼진 조선인 디아스포라. 하지만 거대한 규모에 비해 디아스포라에 관한 우리의 앎과 인식은 여전히 부박하다. 광복 80주년인 올해 완성된 이금이의 ‘일제강점기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은 그래서 더 반갑다. 2016년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로 시작, 2020년 ‘알로하, 나의 엄마들’로 이어진 조선 여성들의 여정이 2025년 ‘슬픔의 틈새’로 완성되었다.
‘슬픔의 틈새’는 사할린 이민 1세대 주단옥의 이야기다. 해방을 2년 앞둔 1943년, 탄광으로 일하러 간 아버지와 함께 살기 위해 조선을 떠난 단옥과 가족들은 세개의 바다를 건너 일본 화태(사할린)에 도착한다. 화태에서 단옥은 타마코라는 이름으로 아버지와 한 지붕을 이고 살게 된다. 학교도 다니고 일본인 유키에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행복한 생활도 잠시, 패전한 일본이 떠나면서 화태는 러시아 땅이 되고 타마코는 올가가 된다. 본토로 가는 일본인들을 보며 금세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던 단옥은 그로부터 53년이 지난 후에야 간신히 한국 땅을 밟게 된다.
조선족이자 중국인이었던 내 선배가 최소 두개 이상의 이름을 가졌던 것처럼, 단옥도 주단옥, 야케모토 타마코, 올가 송이라는 세개의 이름으로 살고 죽었다. 작가는 단옥을 비롯한 디아스포라의 삶을 비극과 비참, 무력한 피해자의 그것으로 재현하는 대신, 굴곡진 그들의 삶이 품은 슬픔의 틈새에서 기어이 기쁨과 자부심을 길어 올린다. 무엇보다 단옥이 ‘신성한’ 또는 ‘축복받은’이라는 뜻의 ‘올가’라는 이름을 스스로 짓고, 손바닥 뒤집듯 뒤바뀌는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에서도 끝내 자신과 이웃의 삶을 축복으로 일궈내는 데 주목한다. 이는 ‘여성수난사’라는 형식과 내용으로 오랫동안 훼손된 민족을 정화하고 근대 주체를 세우는 데 활용된 피해자로서의 여성 이야기를 넘어, 언제 어디서나 자기 자신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낸 자랑스러운 여성 이야기라는 점에서 가치롭다.
‘우리’가 ‘그들’을 알지 못했을 때도, 무지하여 그들의 이름을 아무렇게나 함부로 부르고, 그들을 시혜와 처리의 대상으로 여길 때도, 그들은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일궈냈다. 단옥과 그 남편 진수가 제주에서 ‘평생 처음 받아본 환대’가 이 작품을 계기로 우리의 형제요 이웃인 또 다른 디아스포라들에게 흘러가기를, 그리하여 서로의 슬픔의 틈새를 비추는 작은 불빛이 되기를 희망한다.
송수연 청소년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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