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GM 협력, 부평·창원·당진은 어떻게 될까
경제의 속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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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와 제너럴모터스(GM)가 손잡고 북미와 중남미에 출시할 차량 5종을 공동개발하기로 했다. 감개무량하다. 현대차가 처음 미국에 진출했을 때는 ‘현대차의 속도를 내는 방법은? 언덕에서 굴린다’는 조롱을 받을 정도로 품질이 낮았다. GM은 미국을 상징하는 자동차회사다. ‘GM에 좋은 것이 미국에 좋은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사실 기술력 측면에서 현대차는 이미 GM을 넘어섰다. 이번에 개발하는 차량의 특징은 ‘하이브리드’다. 하이브리드는 저속 구간에선 배터리, 즉 전기모터로 달리다가 고속 구간이 되면 내연기관 엔진을 사용하는 동력기관이다. 배터리를 함께 사용하므로 연비가 뛰어나고, 주행하면서 배터리를 충전하므로 별도의 외부 충전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하이브리드는 모터와 엔진을 정밀하게 연결해야 하므로 굉장히 어려운 기술이다. 전세계 자동차회사 중 하이브리드 엔진을 만들 수 있는 회사는 도요타, 현대차 등을 제외하면 몇 곳 없다. 이제 와서 촘촘하게 세워진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특허 장벽을 뚫고 다른 방식으로 하이브리드 엔진을 개발하기도 쉽지 않다.
현대차와 GM이 손잡은 이유
GM은 한때 세계 최초로 양산 전기자동차 ‘EV1’을 출시했다. 내연기관 엔진을 발전기 삼아 주행거리를 늘리는 EREV(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 차량인 ‘볼트’(VOLT)를 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기차 전환을 한다며 내연기관 엔지니어를 모두 해고하고, 기류가 바뀌자 다시 수조원을 들여 엔진 공장을 짓는 등 우왕좌왕했다. 그사이 내연기관차도 전기차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어중간한 회사가 돼버렸다.
현대차와 GM이 개발하기로 한 차량 5종 가운데 전기 밴을 제외한 4개 차종은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를 함께 개발한다. GM은 하이브리드 엔진이 필요했고, 파트너로 현대차를 선택한 것이다. 현대차도 얻을 것이 있다. 우선 픽업트럭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됐다. 미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차종은 픽업트럭이다. 그런데 현대차는 유독 픽업트럭을 잘 못 만든다.
그 배경에도 통상협정이 있다.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을 때 자동차 관세는 0%였지만 미국은 유독 픽업트럭에는 25% 관세를 부과했다. 미국은 시장개방에 적극적이지만 자국 일자리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자동차산업, 그중에서도 미국 회사들의 경쟁력이 있는 픽업트럭은 보호해야만 하는 시장이다.
픽업트럭 관세는 10년간 유지하다가 단계적으로 철폐하기로 했다. 그런데 한-미 FTA가 맺어진 지 10년이 지난 2017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강한 어조로 한-미 FTA 개정을 압박했다. 시끌벅적한 논란 끝에 개정했는데, 달라진 건 별로 없고 픽업트럭 관세를 20년 연장하기로 했다.
당시 한국 사회는 미국의 요구를 다소 황당하게 받아들였다. 한국에서 수출도 하지 않는 픽업트럭 관세를 연장하겠다고 그렇게까지 압박했던 것인가. 그만큼 미국은 한국 자동차회사가 직접 픽업트럭을 개발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현대차는 관세장벽으로 막혀 있어 미국 시장에서 판매하기 어려운 픽업트럭을 개발하지 않았고, 독자적으로 만들 기술력을 갖추지 못했다. 이번에 GM과 공동으로 개발하면 현대차 브랜드로도 픽업트럭 라인업을 갖출 것이다.
현대차와 GM이 손잡은 두 번째 이유는 ‘관세’다. 트럼프 행정부의 막무가내식 관세정책은 외국 기업뿐 아니라 미국 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트럼프의 관세는 자국 기업에도 예외가 없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론자들은 공장을 미국에서 국외로 옮긴 다국적기업을 향한 적의를 숨기지 않는다. 수익만 추구하며 미국 산업 생태계를 붕괴시킨 장본인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GM은 미국을 대표하는 자동차회사지만 절반가량은 미국 밖에서 만든다. GM의 대표 차종인 이쿼녹스·실버라도·블레이저 등은 멕시코에서 만들고, 트랙스·트레일블레이저 등 소형 스포츠실용차(SUV)는 한국에서 만든다. 따라서 GM도 관세를 피하려면 국제화된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현대차는 더더욱 그렇다. 현대차그룹의 자동차 4대 중 1대는 미국에서 팔린다. 현대차그룹이 도요타, 폴크스바겐에 이어 글로벌 판매 3위를 차지하는 주요한 원동력은 미국이다. 현재 미국에 판매되는 차량의 60~70%는 한국에서 생산된다. 현대차그룹은 앨라배마주 공장과 조지아주의 메타플랜트에서 100만 대 생산 능력을 확보했고, 120만 대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미국 생산기지를 확장하려면 미국 내 공급망을 확보해야 한다. GM의 공급망을 함께 사용할 수 있다면 큰 힘이 된다.
GM 한국 철수 논란 재점화?
현대차의 공급망을 GM이 사용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현대제철은 루이지애나에 8조원을 투자해 연간 270만 톤(t)의 철강을 생산할 전기로를 만들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우선적으로 구매해줄 텐데, 추가 수요처를 확보해야 한다. GM이 현대제철의 자동차용 강판을 사용해준다면 큰 힘이 된다. 2028년 공동개발 차량이 출시되면 두 회사의 미국 내 경쟁력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관세가 현대차그룹에 큰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히려 격변의 시기에 유럽과 일본 등 자동차 강국과 경쟁하는 장을 흔들어볼 기회로 삼고 있기도 하다.
현대차보다 한국이 걱정이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수출하는 자동차는 의외로 현대차가 아니라 쉐보레의 소형 SUV 트랙스다. 아반떼, 코나가 뒤를 잇고 있고 다음은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다. 국내에서 그리 인기가 많지 않은 트랙스와 트레일블레이저가 높은 수출 순위를 차지하는 것은 GM의 경영전략과 관련 있다. GM코리아는 글로벌 GM의 중소형 SUV 생산기지다. GM이 미국에서 판매하는 소형 SUV는 대부분 한국에서 만든 제품이다.
과거 GM대우는 대우자동차 시절부터 개발한 자동차를 만들어 파는 기업이었다. 스파크, 크루즈, 말리부, 캡티바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의 차들은 대우자동차의 마티스, 라세티, 토스카, 윈스톰의 후속 제품이다. 그러나 GM은 2018년 해당 제품들을 모두 단종시키고, 한국GM의 생산·연구개발·판매를 분리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자동차를 생산하는 GM코리아는 트랙스와 트레일블레이저만 생산한다.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 팔 자동차를 만든다. 쉐보레 판매 매장에 가면 콜로라도, 트래버스 등 한국에서 생산하지 않은 쉐보레 자동차가 즐비하다. 지금의 쉐보레는 국내 생산차가 아니라 수입차 판매사가 됐다.
GM의 한국 철수 논란이 심상치 않다. GM은 2018년 구조조정을 진행할 때 산업은행으로부터 8억달러를 지원받았고, 대신 10년간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3년 남았다. 보통 자동차를 개발하는 데 5년, 생산 계획을 세우는 데 3년이 걸린다. 2028년부터 생산할 자동차는 이미 개발이 진행 중이어야 하고, 어디서 생산할지도 지금쯤이면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2028년 이후에도 GM이 한국에서 소형 SUV를 생산할지가 매우 불분명하다. 공교롭게도 현대차와 GM이 공동개발하는 소형 SUV와 세단의 출시 시기가 2028년이다. 2028년 이후 미국 시장에서 판매할 소형 SUV를 미국에서 현대차와 GM이 공동개발한다면, 이 차를 한국에서 생산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GM코리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대제철이 루이지애나에서 자동차용 강판을 만들어 미국 현대차에 납품하면, 미국 수출품을 만드는 울산 공장에 자동차용 강판을 공급하던 현대제철 당진 공장은 어떻게 될까? 현대차가 아니라 인천 부평, 경남 창원, 충남 당진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는 뉴욕타임스에 쓴 기고에서 브레턴우즈 체제, 우루과이라운드에 이어 미국의 상호 관세로 만들어질 새로운 국제 무역 질서를 ‘트럼프 라운드’라고 선언했다. 미국으로 생산시설을 옮기는 현상이 나타나고 그 여파가 부평, 창원, 당진 등 한국 생산기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생산비와 관세의 고차방정식
조금 더 나아가보자. 예를 들어 삼성전자, 엘지(LG)전자는 낮은 인건비를 좇아 베트남으로 텔레비전(TV)·가전제품 생산시설을 이전했다. 한국의 관세율은 15%인데, 베트남은 20%다. 기업들은 인건비의 장점과 관세의 단점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베트남으로 이전한 공장을 한국으로 다시 옮겨올 수도 있다. 인도는 현재 25%인데 3주 후면 25%를 추가한다고 한다. 중국은 30%인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힘들다.
생산비의 이점과 관세가 엇갈릴 때, 기업들은 그나마 말이라도 통하는 국내로 공장을 이전할 유인이 생긴다.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면서 전세계 국가들은 자국 일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현대차는 대충 방향을 잡은 것 같으니, 이제는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로 생산기지를 끌어올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권순우 삼프로TV 취재팀장 soon@3protv.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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