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에 잠긴 그 노래, AI 작품이라고? [콘텐츠의 순간들]

오래도록 사람들에게는 예술에 대한 굳은 신념이 있었다. 인공지능(AI)이 많은 분야에서 인간을 대체하는 세상이 오더라도 예술만은 그러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 AI가 인간의 의식이나 의도를 흉내 낼 수는 있을지언정 실제로 갖지는 못했으니, AI의 작품은 진정한 예술이 아니라고 말했다. 예술은 어디까지나 인간만의 감성과 서사가 만들어내는 영역으로 여긴 것이다. 그러니까 예술계는 AI의 공습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막 안전지대 같은 곳이었다. 2018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인공지능이 그린 초상화가 약 5억원에 낙찰되는 대사건이 벌어졌을 때도 업계는 환호보다 의심으로 들끓었다.
이후로도 ‘반(反)AI 정서’는 더욱 선명해졌다. 음악계의 반응은 특히 직설적이었다. 2023년 호주의 싱어송라이터 닉 케이브는 자신을 흉내 낸 AI 가사를 “인간성에 대한 기괴한 조롱”이라며 일갈했다. 예술적 창작은 인간성이 필요하고, 데이터의 혼합으로 얻은 곡에선 이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2010년대 중반 발표된 여러 연구 논문에서도 ‘기계가 창조한 멜로디는 인간의 창작물처럼 풍부한 맥락을 지니지 못한다’는 결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럼에도 현실은 ‘대체 불가능’이라는 믿음을 뒤흔드는 사례로 채워지는 중이다. 2020년대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AI는 대중예술 전반에서 단순한 보조 도구의 차원을 넘어섰다. 점점 창작의 주체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음악계는 극적인 충격을 받았다. AI를 활용한 결과물은 빠르게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유튜브를 중심으로 음악 팬들의 놀이처럼 퍼져 나갔다. 특정 아티스트의 음성과 랩, 혹은 보컬 스타일을 고스란히 구현하여 다른 아티스트의 곡에 입히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예컨대 켄드릭 라마가 부르는 드레이크(Drake)의 ‘핫라인 블링(Hotline Bling)’, 프레디 머큐리가 부르는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Thriller)’ 같은 식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AI로 완전히 새로운 곡을 만들어내는 단계까지 나아갔다. 2023년 어느 날, ‘고스트라이터977(ghostwriter977)’이라는 익명의 크리에이터가 만든, 드레이크와 더 위켄드의 듀엣곡 ‘하트 온 마이 슬리브(Heart on My Sleeve)’가 깜짝 공개됐다. 그런데 이는 두 아티스트가 실제로 참여한 것이 아닌, AI 기술로 그들의 목소리를 생성하고 재현하여 합성한 결과물이었다. 곡은 스포티파이, 유튜브, 틱톡 등의 플랫폼에서 폭발적 반응을 얻으며 수백만 회 이상 재생됐다. 많은 팬들 역시 “진짜 같다”라며 놀라움을 표했다. 사태를 알아차린 유니버설뮤직 그룹이 저작권 침해와 아티스트 권리 침해를 이유로 즉각 삭제 요청하며 이 일은 일단락되었다.
인공지능 음악에 매료되는 이들 늘어나
이 사건은 음악산업 전체를 충격에 빠트렸다. 대중이 ‘누가 만들었는가?’보다 ‘어떻게 들리는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즉, 인간성이 음악의 본바탕이라는 오래된 명제가 시험대에 오른 상황이었다. 지난 6월, 더 벨벳 선다운(The Velvet Sundown)이라는 밴드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에서 이 문제는 더욱 심화된다. 돌연 등장한 더 벨벳 선다운의 음악은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수백만 회 재생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런데 그들은 실제 뮤지션이 아닌 AI가 생성한 존재였다. 심지어 밴드 멤버의 이미지, SNS 계정, 프로필마저 가상의 데이터로 채워졌다. 더 벨벳 선다운의 우수에 잠긴 가사와 부드러우면서도 우울한 무드의 음악에 매료되었던 많은 이가 충격에 휩싸였다. 가상 아티스트라는 개념은 익숙하지만, 이처럼 AI가 ‘실제 아티스트’를 가장하여 대중과 시장을 완벽하게 교란한 예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다음이다. 음색을 비롯한 밴드의 보컬은 실제 존재하는 여러 유명 아티스트의 데이터를 무단으로 학습해 합성한 것이었다. 자연스레 저작권 침해 논란이 불거졌다. 나아가 AI가 만든 음악의 저작권에 대한 법률적 공백도 드러났다. 해외 법률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기존 저작권법은 AI 시대가 낳은 창작물을 규율하기에 한계가 있다. 현재 세계의 음악계가 가장 주목하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AI에 회의적이며 비판적인 아티스트가 많지만, 한편에선 저작권 문제만 해결된다면 오히려 AI 활용을 반기는 기색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합법적이며 맥락화된 사용이라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는 태도다. 앞서 예로 든 닉 케이브 역시 최근엔 창작 도구로서의 AI를 재평가한 바 있다.
힙합, 알앤비, 팝을 넘나들며 획기적인 음악으로 팝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프로듀서 팀발랜드(Timbaland)는 오늘날 AI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인물이다. 그는 인공지능으로 창조한 여성 보컬리스트와의 합작 프로젝트를 기획하는가 하면, AI 음악 플랫폼 수노(Suno)와 꾸준히 협업을 이어가는 중이다. 수노는 일명 ‘작곡가들을 위한 챗지피티’로 자리매김한 AI 음악 제작 프로그램이다. 글로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세대별 특징까지 구현한 노래로 변환한다. 팀발랜드의 행보를 보는 음악계의 시선은 낙관과 비관 사이에 있다. 창작자의 정체성을 중요시하는, 즉 예술은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창작자가 겪은 경험과 맥락, 사회적 관계가 담긴 이야기로 소비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들은 그의 실험을 예술적 가치에 반하는 것으로 본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이 파생된다. AI를 창작의 파트너로 인식하여 새로운 영감을 얻는 도구로 활용한다면? AI로 음악을 만든다고 해서 반드시 아티스트가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힙합 프로듀서들이 샘플러를 사용할 때처럼 아티스트 역시 AI를 이용한 창작 과정에 필연적으로 관여하게 된다. 데이터를 큐레이션하고 알고리즘을 선택하는 일련의 행위, 즉 아티스트의 개입과 의지를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 논의는 법이라는 해석 장치와 결합했을 때 힘을 얻을 수 있다.
창작자와 팬들에겐 잔인한 말일 수 있지만, 이제 예술도 AI의 침투를 막을 순 없게 되었다. 일부 아티스트는 생계와 창작 사이의 괴리를 고민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의 창작이 여전히 가치 있는가’를 증명해야 하는 과제까지 안게 될 것이다. 이미 미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의 음악계는 규제와 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발 빠르게 대응하며 미래를 대비하려 노력 중이다. 우리는 아직 체감할 수 있는 사례가 드물지만, 한국 대중음악계 역시 AI 기술과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예술 생태계를 설계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AI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AI가 만든 음악에서조차 우리가 찾는 것은 결국 인간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 흔적이 얼마나 ‘진짜’인지 끊임없이 묻게 되는 시대를 살게 되었다.
강일권 (음악평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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