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둘이 될 수 없어" '죽음의 수렁'에 빠졌던 동물농장 댕댕이들 뒷이야기

2025. 9. 5.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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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냥 뒷조사 전담팀
편집자주
시민들이 안타까워하며 무사 구조를 기원하던 TV 속 사연 깊은 멍냥이들.
구조 과정이 공개되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지금은 잘 지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가족을 만났다면 어떤 반려생활을 하고 있는지,
보호자와 어떤 만남을 갖게 됐는지, 혹시 아픈 곳은 없는지..
입양을 가지 못하고 아직 보호소에만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새 가족을 만날 기회를 마련해 줄 수는 없을지..

동물을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이라면 당연히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며 궁금해할 것 같습니다.
궁금한 마음을 품었지만 직접 알아볼 수는 없었던 그 궁금증, 동그람이가 직접 찾아가 물어봤습니다.
지난 1월 구조된 개 '뽀짝이'(왼쪽)와 '삐약이'의 모습. 삐약이는 견사를 찾아온 방문객이 궁금한 듯 다가와 냄새를 맡았지만, 뽀짝이는 벽에 기대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동그람이 정진욱

"오늘 산책은 조금 어려울지도 모르겠네요."

체감온도가 38도에 육박했던 지난 7월.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는 뜨거운 태양만이 작열하고 있었습니다. 경기 남양주시 동물자유연대 '온센터'에 도착하자,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습니다. 아무리 밖에 나가는 걸 조르는 개들이라고 하더라도, 열사병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날씨였습니다.

그러나 이민주 선임활동가는 뒷조사 전담팀이 건넨 말에 고개를 저었습니다. "날씨 때문이 아니어도 오늘은 산책을 할 수 없을 거예요." 무슨 이야기인가 싶었지만, 의문은 견사 앞에 도착하자마자 풀렸습니다. 견사 앞에서 마주한 '삐약이'(수컷·2세 추정)와 '뽀짝이'(암컷·3세 추정)는 낯선 기척을 느끼자마자 긴장하며 벽으로 슬금슬금 옮겼습니다. 특히 뽀짝이는 제대로 서서 걷지도 못하고, 앉은 채 엉금엉금 움직이며 벽 구석에 몸을 기댔습니다.

견사 문을 열고 가까이 다가가자, 뽀짝이는 짖지도 못한 채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기만 했습니다. 그에 비해 삐약이는 조금 나은 편이었습니다. 삐약이는 사람에게 다가오며 조금씩 냄새도 맡고, 간식을 꺼내들자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삐약이의 등 뒤에 바짝 붙은 뽀짝이. 그 모습을 보자, 지난 1월, 삐약이와 뽀짝이가 처했던 절체절명의 상황이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한번 빠지면 그대로 고립... 의지할 건 옆에 있는 동료뿐

지난 1월 경기 하남시의 한 수로에 갇힌 삐약이와 뽀짝이의 모습. SBS TV동물농장 캡처

경기 하남시의 한 신도시. 한파가 극심했던 지난 1월 겨울, 이곳 주민들은 홍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조성된 물길을 근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1㎞가 훌쩍 넘는 이 물길에서 1개월 넘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헤매는 개 두 마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개들 스스로 이 물길에서 벗어날 순 없었을까. 송지성 동물자유연대 위기동물대응팀장은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물길의 깊이가 최소 3m, 최대 4m까지는 되어 보였어요. 사람도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려야 할 정도였으니까요. 도저히 개들 스스로는 빠져나올 수 없는 구조였습니다.
송지성, 동물자유연대 위기동물대응팀장

개들은 어쩌다 물길에 갇힌 걸까요? 구조대가 현장을 확인해 보니 물길로 통하는 곳은 단 한 곳뿐이었습니다. 국방부 소유의 재개발 예정지로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땅에서 물길로 추락하는 구멍이 있었던 겁니다.

심지어 고립된 건 개들만이 아니었습니다. 현장에서는 이미 수로에 들어왔다가 목숨을 잃은 채 방치된 고라니 사체도 발견됐습니다. 길을 떠돌던 동물들이 물길에 추락한 뒤 굶어 죽을 가능성이 농후한, '죽음의 수렁'이었던 겁니다.

그나마 삐약이와 뽀짝이를 발견한 시민들이 추위를 피할 집과 먹이를 주기적으로 제공하며 임시 피난처를 제공했다. SBS TV동물농장 캡처

그나마 개들이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던 건, 개들을 발견한 시민들이 매일 먹을거리를 챙겨준 덕분이었습니다. 송 팀장은 "이렇게 넓은 수로에서 고립될 경우 다른 것보다 먹이 공급이 잘되지 않는 게 제일 큰 걱정거리인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주신 덕분에 그 걱정 없이 구조 작업에 임할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구조가 급하지 않은 건 아니었습니다. 물길이 깊고 긴 까닭에 전문 구조팀이 구조 계획을 세우지 않고서는 상황이 장기화될 수 있었습니다. 바닥이 얼어붙은 만큼 개들이 동상에 걸릴 가능성도 고려해야 했습니다.

구조대는 개들의 앞뒤로 펜스를 설치해 퇴로를 막은 뒤 구조하는, 단순하지만 확실한 방법을 택했습니다. 송 팀장은 "펜스 설치한 뒤부터는 마음이 좀 편해졌다"라면서 "못 잡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라고 오랜 경험에서 나온 자신감을 드러냈습니다.

구조팀은 수로 일부를 펜스로 막은 뒤 포획에 나섰고, 한번에 성공했다. SBS TV동물농장 캡처

그 자신감은 실제로 이어졌습니다. 펜스를 설치한 지 약 2시간 만에 구조팀은 포획에 성공해 개들을 동물병원으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내 친구 돌려줘" 병원·보호소서도 달라붙은 '껌딱지들'

동물병원에 도착한 직후, 두 개들에게는 곧바로 이름이 생겼습니다. 건강검진을 받던 도중, 작은 바둑이가 먼저 진료대로 올라가자 큰 개가 갑자기 불안한 듯 '삐약, 삐약' 소리를 낸 일로 모두의 웃음을 자아낸 덕분이었습니다.

구조 직후 동물병원으로 옮겨진 뽀짝이의 모습. 이 순간 두 개들의 이름이 동시에 지어졌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덩치는 산만했던 개가 자기 친구 잠깐 안 보인다고 그렇게 소리를 내는 걸 보고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어요. 자연스럽게 '삐약이'라고 이름을 지어줄 수밖에 없었죠. 진료대에서 내려오자마자 삐약이를 찾아가는 바둑이는 '뽀짝' 달라붙는다고 '뽀짝이'가 됐어요.
이민주, 동물자유연대 온센터 선임활동가

서로를 믿고 따르는 건 안전이 보장된 보호소에서도 계속됐습니다. 단 한시도 떨어질 수 없다는 듯, 삐약이는 항상 두리번거리며 뽀짝이를 살폈고, 뽀짝이는 항상 삐약이의 등 뒤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죠.

그러다보니 현재는 아직 산책조차 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합니다. 한차례 시도해 보려 했지만, 뽀짝이가 목줄을 전부 물어뜯은 까닭에 결국 산책을 이어갈 수 없었습니다. 삐약이만이라도 산책을 하려 했지만, 뽀짝이 없이 혼자 산책을 나가려 하자 불안한 듯 다시 울음소리를 냈다고 하네요.

그만큼 삐약이, 뽀짝이 모두 사람과의 접점은 부족해 보입니다. 그나마 나아 보이는 삐약이도 목욕을 할 때면 매우 겁을 내며 발버둥 친다고 하는데요. "뽀짝이가 곁에 없을 때 그런 것 아니느냐"고 물어보니 그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사람과의 접촉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는 게 이 활동가의 설명이었습니다.

목욕을 하려고 하면 거부를 보이고 있는 삐약이의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

그렇기에 입양을 보내는 일에도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사람과의 관계 형성을 잘할 수 있는 심리적 기반을 만드는 게 우선인 것 같다"라며 "그래야 갑자기 도망치는 등 돌발적인 유실 사고도 예방할 수 있을 듯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그런 관계 맺기부터 시작할 각오가 되어 있는 가족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라고 합니다.

둘이서 그렇게 착 달라붙으며 서로를 찾는 모습이 귀엽기도 했지만, 동시에 감동을 받기도 했어요. 그렇게 어려운 상황을 같이 이겨냈다는 게 대단해 보였거든요. 그렇게 내 곁의 존재를 돕고 살아가는 우정, 동료애 같은 게 인상 깊었다고 해야 할까요?
앞으로 새 가족을 만날 때 둘이 같이 갈지, 따로 갈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어떤 형식이 되었든, 보호자님들께서 이들의 유대관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분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은 드는 것 같습니다.
이민주, 동물자유연대 온센터 선임활동가
삐약이와 뽀짝이는 천천히 사람과의 적응을 배우고 있다. 동그람이 정진욱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leonard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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