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검진만 20분 걸려도 ‘괜찮아 잘했어!’…“이런 날, 이런 곳, 더 많아지길”

‘특수장비 완비’ 전국 21곳뿐…지적장애인 수검률 54.8% 등 ‘저조’
보호자들 “안심하고 검진받아 감사” 의료원 “동참 병원 늘었으면”
A씨는 병원 복도 끝과 끝을 쉼없이 오갔다. 그의 눈은 연신 복도 끝에 고정돼 있었다. 눈맞춤을 시도하던 A씨의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꼭 잡고 “금방 끝날 거야, 엄마 한번 안아줘”라고 속삭였다. 발달장애를 가진 A씨는 건강검진을 앞두고 불안해했다.
4일 아침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은 본관 2층 건강검진센터를 통째로 비우고 장애인 검진자들만 받았다. 서울 시내 장애인복지관 3곳에서 온 장애인 16명과 이들의 보호자 11명이 병원을 찾았다. 국내 병원이 일반 검진 업무를 멈추고 오롯이 장애인과 그 보호자를 위한 건강검진을 진행한 것은 처음이다. 검진을 받은 장애인들은 푸르메재단이 사전 신청을 받아 ‘무리 없이 검진을 받을 수 있다’고 선별한 대상자들이었다. 지난달 21일 각 복지관에서 낯선 검진 환경을 미리 알려주고, ‘숨 참기·숨 뱉기’ 등 필요한 절차를 연습했다.
체중, 키, 시력, 혈압 등 기본 검사도 이들에겐 몇배의 시간이 필요했다. 지적장애가 있는 B씨의 팔을 간호사 한 명이 붙잡고 있는 동안 다른 간호사가 채혈을 했다. 또 한 명의 간호사가 “너무 잘하고 있어요. 그대로 계세요”라며 B씨를 다독였다. B씨는 그제야 빙그레 웃으며 “저 용감하죠. 박수 한 번 쳐주세요”라고 말했다. 채혈실 안이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의료원 원장을 비롯해 의사 6명, 간호사 30명이 검진에 나섰다. 의료원은 장애인이 최대한 편안하게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비장애인 검진과 동선도 달리했다. 검진자들이 주사를 여러 번 맞지 않아도 되도록 채혈 후 곧바로 위내시경 검사를 했다. 심정옥 서울의료원 건강검진센터 차장은 “수면 내시경 후 잠에서 깬 수검자가 놀라서 낙상사고가 벌어지는 상황에 가장 주의하고 있다”고 했다.
의료진이 최선을 다해도 검진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불안해하던 A씨는 결국 엑스레이 검사를 받지 못했다. 함께 검진을 받은 A씨 아버지는 “애초에 모든 검사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며 “기본 검사만이라도 받게 하고 싶은 심정인데 이렇게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했다. 비장애인과 함께 검사를 받을 때는 시간이 지체되면 항의를 받기도 했는데, 이날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다.
이런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면 장애인이 의료기관에서 건강검진을 받기는 쉽지 않다. 보건복지부 규정에 따르면 장애인 검진을 위해선 휠체어를 타고 체중 측정이 가능한 휠체어 체중계, 휠체어에서 검진대로 이동하는 보조 장치인 이동식 전동리프트 등 9개 필수장비를 갖춰야 한다. 그런 시설을 모두 갖춘 곳은 전국에 21개밖에 없다. 서울은 서울의료원과 국립재활원에서만 가능하다. 충남·전북·울산·세종·대구·광주에는 한 곳도 없다.
검진 기회 부족은 장애인의 높은 사망률로 이어진다. 2023년 국민 평균 기대수명은 83.5세이지만 지적장애인은 57.8세, 자폐성장애인은 28.1세에 불과하다. 건강검진 수검률도 전 국민 평균이 75.9%인 데 비해 지적장애 54.8%, 정신장애 44.1%, 자폐성 장애 52.0%에 머물렀다.
점심 무렵 검진을 마친 이 원장은 “큰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서울의료원은 내년에도 장애인과 보호자 동시 건강검진을 지속할 생각이다. 저희 외에 많은 병원이 이 일에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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