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기병대 무찌른 원주민 전사

한겨레 2025. 9. 4.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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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백인들이 원주민의 땅을 침범했다.

백인이 원주민의 땅 블랙힐스를 침범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커스터 원정대가 황금을 발견한 뒤, 백인 광부와 백인 군대가 다시 원주민의 땅으로 몰려왔다.

하지만 원주민이 미국 정부를 상대하여 전쟁을 이길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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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다] 크레이지 호스 (1840?∼1877)

미국에서 백인들이 원주민의 땅을 침범했다. 1866년 레드클라우드 전쟁이 터졌다. 미국 정부가 군대를 보냈다. 크레이지 호스를 비롯한 원주민 전사들이 맞서 싸웠다. 백인 윌리엄 페터먼 대위와 병사 80명이 목숨을 잃었다. 1868년에 원주민과 미국 정부는 조약을 맺었다. 백인이 원주민의 땅 블랙힐스를 침범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1874년 백인 조지 커스터 장군이 이끌던 원정대가 블랙힐스에 들어와 황금을 발견했다.

커스터는 남북전쟁 때 최연소 장군으로 유명했다. 명예욕이 강하고 무모했다. 1868년에는 원주민 마을을 습격해 여성과 아이까지 목숨을 빼앗았다. 원주민은 커스터를 “무자비한 학살자”로 부르며 원망했다.

커스터 원정대가 황금을 발견한 뒤, 백인 광부와 백인 군대가 다시 원주민의 땅으로 몰려왔다. 조약은 깨졌다. 1876년에 크레이지 호스는 원주민 연합군을 이끌고 조지 크룩 장군의 부대를 물리쳤다. 일주일 뒤 크레이지 호스는 커스터 장군과 전투를 벌였다. 유명한 리틀빅혼 전투다. 커스터와 제7기병대 200여명이 죽임당했다. 백인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원주민의 큰 승리였다.

하지만 원주민이 미국 정부를 상대하여 전쟁을 이길 수는 없었다. 크레이지 호스와 원주민은 굶주림과 추위를 견디다 못해 1877년에 미군에 항복을 했다. 9월, 미군은 약속을 어기고 크레이지 호스를 감옥에 집어넣으려 했다. 크레이지 호스는 반발했고, 백인 병사가 총검으로 그를 찔렀다. 하루 동안 고통받다 크레이지 호스는 9월5일에 숨을 거두었다.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였다. 부모가 그의 주검을 거두어 갔다. 그가 어디에 묻혔는지는 오늘날 아무도 알지 못한다.

사진을 남기지 않았다. 크레이지 호스의 모습이라고 알려진 사진이 더러 있으나 다른 인물을 찍은 것이다. 얼굴 왼쪽에 총을 맞은 흉터가 있었고, 화려한 깃털 장식을 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하는 수수하고 겸손한 전사였단다. 전하는 이야기에 바탕해, 나는 크레이지 호스의 얼굴을 상상해 빚었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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