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의 붓 끝에서 되살아난 선사의 이야기

고은정 기자 2025. 9. 4.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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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각화, 울산예술로 꽃피우다]
(10) 울산 정토사 회주 산하 덕진스님

암각화 문양·상징 선화로 재해석
탁본 인쇄본, 옷칠 천에 옮겨놓고
유리·조명 활용 작업···인내의 과정
"창작, 보존을 위한 또 다른 실천"
덕진스님은 "암각화를 표현한 그림들은 모든 것이 홀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어울려 생겨나며, 시시각각 변한다는 진리를 담았다"라고 설명한다.

"암각화 작품을 통해 만인이 더 슬기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토사 회주 덕진스님은 지난 반세기 동안 수행과 포교의 길을 걸어왔지만, 동시에 붓을 들었다. 그는 민화와 한국화, 선서화를 익혀온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에는 암각화의 문양과 상징을 선화(禪畵)로 재해석하며 작품 세계를 넓혀가고 있다.

# 암각화, 수행과 창작의 길 위에 서다

덕진스님에게 선화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수행과도 같은 과정이며, 포교의 또 다른 길이다. 스님은 "암각화를 표현한 그림들은 모든 것이 홀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어울려 생겨나며, 시시각각 변한다는 진리를 담았다"라고 설명한다. 암각화 속 고래·거북·사슴·새 등 다양한 형상은 스님의 붓 끝에서 현대적 색채를 입고 되살아난다.

작품 속 해와 달, 별은 밤낮없이 이어지는 반구대 암각화 보존의 의지를, 선박과 비행기, 버스는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세계 각지에서 모여드는 관람객들을 의미한다.
덕진스님 작 '반구천의 암각화 세계로 빛나다'

# 고대와 현대를 잇는 상징의 언어

덕진스님은 암각화 속 문양을 충실히 재현하기보다 불교적 세계관과 현대적 해석을 더해 새로운 시각적 언어를 만들어낸다. 작품 배경을 밝은 색채와 단순화된 선으로 표현한 것은 암각화를 부각하고, 생동감을 부여하기 위한 의도라고 한다.

작업 방식 또한 수행적이다. 박물관에서 받은 탁본 인쇄본을 옻칠한 천에 옮겨 놓고, 유리와 조명을 활용해 선을 따라가는 방식이다. 수많은 세선(細線)으로 이루어진 암각화의 문양을 하나하나 따라가며 붓을 옮기는 과정은 그 자체로 집중과 인내를 요구하는 수행이다.

# "암각화 가치, 더 많은 이와 나누파"

덕진스님은 "암각화를 소재로 한 창작 활동을 통해 많은 이들이 그 가치를 새롭게 바라보고, 보존의 필요성에도 공감하기를 바란다"라고 말한다. 또한 "작품 속에 부처님의 법 수행과 깨달음, 그리고 교육적 메시지를 담아 시민들에게 지혜로운 판단의 길을 안내하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작품 제목 '고대와 현대의 대향연', '반구천의 암각화 세계로 빛나다'에는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반구천의 암각화를 단순히 유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울산의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문화적 자산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 예술로 이어가는 보존의 염원

사실 덕진스님은 20여 년 전 암각화 보존 대책 논의가 한창일 때 시민단체 대표 자격으로 당시 문화체육부 차관을 만나 보존 필요성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도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가 더 이상 물에 잠기지 않도록, 문화유산청과 울산시가 협력해 제대로 보존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스님에게 창작은 곧 보존을 위한 또 다른 실천이다. 붓으로 그려내는 암각화는 단순한 예술 작품이 아니라, 후세에 전해야 할 가치와 메시지를 담은 기록이다.

고은정 기자 kowriter1@ius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