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청소년에 질문, 스스로 혼란 느끼게"···정치교육 선진국 독일에 물었더니

최은서 2025. 9. 4. 13:0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소년이 자란다]④독일의 교실
정치교육 위한 공공기관까지 있는 독일
공공·민간 교육 전문가들에게 물었더니
"민주주의, 아침에 눈 뜨는 것부터 시작"
"시민교육, 민주주의 참여자 늘리는 일"
편집자주
어느 날, 극우적 생각을 내보이며 부모를 걱정시키는 아이. 더 나아가 서울서부지법 폭력 난동에 참여한 10대들.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고 있는 것인가. 한국일보는 10대들의 정치 인식을 분석하고 그 원인과 해법을 파고들었다.
독일 브란덴부르크주 마리퀴리 김나지움의 10학년 대상 토론형 정치 수업에서 학생들이 발언을 하기 위해 손을 들고 있다. 브란덴부르크=최은서 기자

청소년 시민교육이 성공적으로 정착한 독일에서도 청소년 극우화는 피할 수 없는 문제다. 최근 독일에선 극우로 분류되는 '독일을 위한 대안(AfD)' 정당에 대한 지지가 늘었다. 특히 10·20세대가 AfD 지지를 주도하고 있단 해석이 적지 않다.

지난 5월 독일 베를린에서 만난 토마스 길 베를린 주 정치교육청장은 "극우화된 시민을 대할 땐 당장 정보를 정정하기보다 터놓고 대화할 공간을 만든다"며 "극우 사상과 관련된 고정관념이 있다면 그게 어디에서 왔는지,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됐는지를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 베를린 주 정치교육청 사무실에서 토마스 길 정치교육청장이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베를린 주 정치교육청은 베를린 지역의 시민교육을 담당하는 공공기관으로,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을 대상으로 한 시민교육도 진행한다. 베를린= 최은서 기자

토론의 궁극적 목적은 극우 성향을 가진 청소년이 스스로 혼란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독일 교육단체 100여 개가 모인 독일 교육기관협의회(AdB)의 게오르크 피어커 시민교육 담당 책임자 역시 "우선은 청소년이 어떤 말을 하는지 들어주고 인정한 다음, 계속되는 질문을 통해 공고했던 자기 주관에 혼란을 겪고 스스로 되묻게 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고 설명했다.

AdB는 학교와의 상시적인 협업을 통해서 극우화에 대응한다. 피어커 책임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혐오 표현이나 가짜뉴스에 대응해야 할 때, 학교 교육과정에만 맡겨둔다면 늦어지겠지만 민간 교육단체가 협업하면 빠르게 의제로 다룰 뿐 아니라 더 많은 학생을 교육할 수 있다"고 했다. 가짜뉴스 대처 플랫폼을 알려주거나 광범위한 정보에 대처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식이다.

교육을 거치면 실제로 극우화를 바로잡는 효과가 있느냐는 질문에 길 청장은 "구체적 통계는 없지만 효과를 본 사례들이 적지 않다"고 답했다. 그는 "정치교육은 마치 눈덩이 굴리기와 같아서, 작은 교육으로 시작하지만 그 영향력은 나중이 될수록 커진다"며 "꽤 많은 이가 정치교육을 계기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거나, 민주적인 대화법을 배워 실생활 소통에 도움을 얻는다"고 했다.

베를린 주 정치교육청 건물 내에 전시된 교육자료용 도서들. 청소년 및 성인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시민교육에 활용된다. 베를린=최은서 기자

"민주주의는 아침에 눈 뜨는 순간, 동네 얘기에서 시작된다"

한국과 달리 독일은 국가가 시민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공공·민간이 적극적으로 합심함으로써 청소년 시민교육을 정착시킬 수 있었다. 지역별로 청소년 등의 시민교육을 담당하는 공공기관(정치교육청)이 있을 정도로 제도가 갖춰졌다.

독일에서 만난 공공·민간 분야의 교육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청소년으로 하여금 정치가 거창한 게 아니라 일상이라는 걸 알게 하는 게 중요하다"며 "아이들에게 정치 주관을 강요할 게 아니라, 스스로 옳은 관점을 갖도록 돕는 게 교육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독일 베를린의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사무실에서 이본느 레만 청소년 정책담당관이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은 독일 사회민주당(SPD)에 뿌리를 둔 정치재단으로, 청소년 시민·정치교육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베를린=최은서 기자

정치교육 재단인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이본느 레만 청소년 정책담당관은 "민주주의는 아주 어릴 때,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며 "유치원생이 아침에 모여 앉는 행위나 학교에서 반장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는 것도 민주주의"라고 했다.

그는 청소년에게 정치를 가르친다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의제를 알려주는 게 아니라고 했다. "리 동네 자전거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궁금해하거나 내가 버린 쓰레기나 아침에 내린 변기물의 경로를 알게 되는 것 역시 정치 활동임을 알려주는 것"이 핵심이다.

피어커 책임자 역시 "시민교육은 아이들이 사는 동네의 작은 이야기부터 시작한다"며 "이후 보다 큰 범주의 질문으로 확장하면서 관심사를 키워가는 식"이라고 했다.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독일 교육기관 협의회(AdB) 사무실에서 게오르크 피어커 시민교육 담당 책임자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AdB는 독일 내 민간 교육단체 100여 개가 모인 비영리 네트워크로, 학교와의 협업이나 기관별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청소년 대상 시민교육을 제공한다. 베를린=최은서 기자

교사의 자유로운 정치 활동 보장... "교육자 경험이 중요"

시민교육은 교육자의 자유로운 정치 활동이 보장될 때 수월해진다. 길 청장은 "교사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경험을 통한 정치 효능감을 가르치는 게 교육의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교사가 평소 관심 있는 정치·사회 이슈를 수업에서 구체적으로 다루면서도 다양한 논의의 여지를 열어둔다면 학생의 정치적 관심을 키우는 데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아예 특정 정당에 기반을 둔 정치재단이 청소년 정치교육에 힘쓰기도 한다.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역시 독일 사회민주당(SPD)에 뿌리를 뒀다. 올해로 100주년을 맞은 이 재단은 장학 사업은 물론 청소년 대상 정치교육을 활발히 진행해 왔다.

정치교육에 힘쓰는 독일의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이 설립 100주년을 맞아 재단 건물 로비에 관련 전시 공간을 마련해둔 모습. 베를린=최은서 기자

재단은 학교로 찾아가 교육하는 것은 물론, 청소년과 정치인이 대화할 자리를 만들거나 챗봇 등을 통해 편하게 정치적 질문을 할 수 있는 창구도 제공한다. 레만 정책담당관은 "교육을 통해 청소년이 직접 정치 의견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조력한다"며 "이때 정당과 재단은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서로 절대 수익이 오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공·민간의 노력이 더해진 결과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독일 연방 정치교육청(BPB) 조사에 따르면, 독일 청소년(12~25세)의 정치 관심도는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대체로 증가세를 보인다. 특히 18~21세 중 정치에 관심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2019년 45%에서 지난해 60%로 눈에 띄게 늘었다. 레만 정책담당관은 "사춘기인 데다 여러 고민이 중첩되는 시기임을 고려하면 대단한 수치"라고 했다.

베를린 주 정치교육청 건물 내에 전시된 교육자료들. 청소년 및 성인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시민교육에 활용된다. 베를린=최은서 기자

길 청장은 "독일 시민교육 정신을 관통하는 문구"라며 다음 문장을 소개하더니, 힘주어 말했다.

"'민주주의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어요. 민주주의에 직접 참여하는 시민이 많아야만 민주주의가 유지된다는 뜻이죠. 시민교육은 청소년에게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제대로 참여하는 어른이 많아지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입니다."

 

■ 목차별로 읽어보세요

  1. ① 소년을 만나다
    1. • 극우 집회서 만난 16살 도현이···"부모님이 초5부터 학교 안 보내, 교회서 역사 공부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1915230000367)
    2. • 이승만 업적쓰기 수행평가, 군사훈련···교회 대안학교 탈출하려니 숟가락 던진 부목사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3015550002059)
  2. ② 10대와 정치
    1. • 고교생 10명 중 4명 '개표 부정' 믿고 계엄엔 반대…'십대남' 현상 확인됐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2906560003629)
    2. • '노무현 조롱'이 놀이가 된 교실…교사들 "민원 무서워 아무 말 안 해요"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3010280001301)
  3. ③ 유튜브와 아이들
    1. • 페미니즘 때리면 구독자 오른다...10대 파고드는 극우 유튜버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90215480001135)
    2. • "3년 반 동안 단 5건"...유튜브 가짜뉴스에 손 놓은 정부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3010100004901)
  4. ④ 독일의 교실
    1. • "교사가 정치 얘기한다고 민원? 당연히 없다".. 독일 고등학교 교실 가보니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90115150002047)
    2. • "극우 청소년에 질문, 스스로 혼란 느끼게"···정치교육 선진국 독일에 물었더니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90115150005414)
  5. ⑤ 핀란드의 교실
    1. • 한국선 '패드립(가족욕)' 난무하는데···중2가 초4에게 '인터넷 윤리' 가르치는 국가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90409400004026)
    2. • "청소년 때부터 '이것' 배운다" 핀란드 국민이 가짜뉴스에 꿈쩍 않는 이유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90409400002081)
  6. ⑥ 대책 없는 정부
    1. • '고인 능욕' '패드립' 넘치는 교실···언제까지 "어쩔 수 없다"고만 할 건가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90514350002420)

 

※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베를린= 최은서 기자 silver@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