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왕의 그림이 K컬처로” 케이팝 무대에 등장한 일월오봉도

전남일보 2025. 9. 4.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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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1 일월오봉도, 케데헌에서 일월캐년도까지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
일월오봉도.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나온 두 개의 일월오봉도                                                                        파죽지세인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에 묘사된 한국문화 때문에 세계가 들썩인다. 

까치호랑이와 당산나무 등 차례로 소재와 내용을 분석해오고 있지만, 배경으로 나온 일월오봉도를 빼놓을 수 없다. 진우의 회상 장면에서 왕실 배경과 함께 이 그림이 등장한다. 

헌터릭스가 공연을 펼치는 무대 배경에도 일월오봉도가 흐른다. 헌터릭스와 사자보이스가 노래로 겨루는 이유가 왕좌를 두고 다투는 것이어서 그러하나? 

물론 전후 사정을 내가 알 수는 없다. 다만 말하고 싶은 것은 진우가 회상하는 조선시대 왕실 배경과 헌터릭스의 무대 배경의 일월오봉도는 동일한 맥락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림은 같을지라도 전자는 궁중회화에 속하고 후자는 민화에 속한다고 설명하면 견강부회라고 할라나? 

본 지면 6월 6일자에 청와대 일월오봉도를 다루며 가장 한국적인 그림이 일월오봉도라는 점을 톺아본 바 있다. 그 내용 일부를 가져와 다시 설명해둔다. 

일월오봉도는 다섯 개의 산봉우리와 해, 달, 소나무를 그린 산수화풍의 그림이다. 예전에 임금이 앉는 용상(龍床)은 물론 왕이 서거했을 때에 신주를 모셔두는 빈전(殯殿)과 혼전(魂殿)에 장식으로 그렸다. 왕의 초상화인 어진(御眞)을 봉안하는 선원전(璿源殿)이나 경기전(慶基殿) 같은 진전(眞殿)에도 이 그림을 걸었다. 오봉일월도, 오봉산병, 오봉병(병풍), 오봉도, 오악도, 오봉산일월도 등으로 부른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궁중회화이자 왕을 상징하는 그림이었다. 실내외를 막론하고 항상 왕이 앉는 자리 뒤편에 걸어두었다. 

어떤 작품이든 구도가 일정하고 오방색 등의 화려한 색채를 사용하며 좌우 대칭의 구도를 갖는다. 중요한 것은 중국의 자금성에도 없고 일본의 궁궐에도 없는 한국 특유의 전통 그림이라는 점이다. 본래 왕좌를 상징했으므로, 해와 달은 음양의 질서를 나타내고 다섯 봉우리는 오행 곧 우리나라 국토를 상징하며 소나무, 물결, 폭포는 생명력을 상징했다. 왕이 이 그림 앞에 앉음으로써 우주적 질서의 중심자가 되는 상징 연출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왕실의 권위가 약화되고 왕실의 그림들이 민간으로 스며들어 민화가 되면서 의미가 변화하게 된다. 왕의 권위를 나타내던 구성 요소들이 대개 길상적 의미로 변한 것인데, 해는 생명력을, 달은 여성성이나 윤회를, 산은 불변성이나 조상을, 물결은 재물 삼아 가정의 평안과 번영의 상징으로 삼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케데헌의 까치호랑이와 일월오봉도를 새로운 눈으로 읽을 필요가 생겼다.

민화 일월오봉도의 확장과 변화                                                                                                    궁중회화에서 민화로 이행한 일월오봉도가 모방의 단계를 거쳐 창작의 단계에 이르면서 다양한 변신을 꾀하고 있다. 기발하고 기상천외한 작품들이 등장한다. 민화 그리기의 흐름과도 부합하는 전개다. 야나기무네요시로부터 작명된 민화(民畵)의 전개가 대개 모작(模作, 베껴 그리기)에서 방작(倣作, 뽄 그림에 제 생각 더하기)으로, 다시 창작(創作, 새롭게 그리기)으로 전개되는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민화만 그러한 게 아니다. 사실은 판소리도 스승의 소리를 베껴 노래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전개 방식을 가지고 있다. 판소리는 차차 다루기로 한다. 

2022년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전시한 일월오봉도를 보면, 두루미, 모시나비, 사슴, 잉어 등이 삽입되고, 파도 물결이 애니메이션으로 작동한다. 

김은주 작가의 경우, 오봉을 흰 사발이나 그릇에 담기도 하고 곤륜반도도로 변형하는 등 변주를 시도한다. 장영 작가의 경우는 세모와 네모를 활용해 전혀 다른 느낌의 일월오봉도로 바꾸기도 한다. 양혜경 작가의 일월오봉도는 주전자 모양에 오봉을 구겨 넣고 일월을 표시하여 단순화하는 등 파격적인 시도를 한다. 

제46회 모나미 모나르떼 어린이 미술대회 대상을 받은 '일월오봉 앞에서의 탈춤'이라는 구미경의 작품은 탈춤꾼 두 명을 마치 음양처럼 전면에 배치하고 색감이나 무늬를 현대화하여 색다른 풍경을 자아낸다. 2024년 월간민화 11호에 소개된 노연서 작가의 신일월오봉도는 '마스크' 안에 일월오봉도를 넣고 연꽃과 나비를 추가하는 등의 변신을 꾀한다. 이같은 변주는 19세기 일월부상도(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등으로 소급해 올라간다. 이 그림을 해석한 정병모에 의하면, 부부를 상징한 일월, 일상으로 끌어내린 우주적 존재 등 이미 궁중회화에서 민화로 이행했던 이른 시기 민화 작가들의 마음자리를 해석한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생각지도 못했던 애니메이션 케데헌에서 일월오봉도가 궁중회화와 민화로 나타나듯이, 어쩌면 이 순간에도 파격적인 일월오봉도가 탄생하고 있지 않을까?
우드혜경 작가의 민화 일월캐년도. 이윤선 제공

남도인문학팁-우드혜경의 일월캐년도, 디아스포라에서 K컬처까지                                  내가 근자에 주목한 것은 이국의 문화를 배경 삼아 재구성하는 창작민화다. 한국의 DNA라고 하는 아리랑이 디아스포라적 맥락을 갖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예컨대 한때 본조아리랑이라 호명했던 경기아리랑과는 다르게 카레이스키 아리랑, 조선족 아리랑, 재일교포 아리랑, LA아리랑 등 사뭇 다른 형식과 내용을 가진 아리랑이 세계 곳곳에서 불리고 있지 않은가. 

큰 범주에서는 아리랑에 속하지만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또 다른 결을 가지고 있는 노래다. 민화도 지금 미국, 일본, 싱가폴 등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가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모작과 방작의 단계를 거쳐 창작에 이른 작품들이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다. 

마침 한국민화학교(교장 정병모) 문선영 교수의 지도를 받는 우드혜경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수많은 작품 중 내 눈길을 끈 것은 일월오봉도를 변주한 몇 작품이었다. 

첫 번째 작품은 TEXAS라는 알파벳을 횡으로 크게 배치한 일월오봉도의 변형이다. 까치호랑이와 잉어, 천도복숭아, 파도와 구름 등이 난삽하게 섞인 속에서도 카우보이와 모자 등을 적절하게 배치하였다. 삼봉인지 오봉인지 산세와 붉은 색감들을 보니 그랜드 캐년이거나 텍사스의 팔로 듀로 캐년이다. 

두 번째 그림은 다섯 개의 봉우리 대신에 캐년의 풍경을 담고 마치 자신을 투영한 듯, 여자 카우보이가 말을 타는 모습을 전면에 내세운 그림이다. 선인장과 꽃과 풀과 말들은 모두 미국의 것들이다. 왜 이런 구도를 구상하게 되었는가고 물었다. 시누이가 말목장을 하고 있다 한다. 지금은 또 다른 고향이 된 텍사스의 풍경을 그리고 싶었단 뜻이다. 

굳이 민화를 택한 이유가 무엇인가고 물었다. 민화가 가장 한국적인 그림이란다. 담묵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화를 미국 지인들은 중국 그림과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 하지만 민화를 보면 한국 그림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기 때문이란다. 

특히 민화의 강렬한 색감이 힐링을 준다고, 오방색 등 강렬한 색을 칠하다 보면 세상 근심을 다 잊게 된다나. 그래서 일 년에 몇 번씩 한국을 오가며 민화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미국인 남편을 만나 미국인이 된 지 오래되었지만, 한국인이란 정체성을 잃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우드혜경 작가의 일월오봉도 변주 그림에 '일월캐년도'라는 이름을 붙였다. 일찍이 오렌지카운티 소류아트 김승유 작품에 문민화(文民畵)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민화 작가들이 굵직한 작품들을 내는 풍경을 보노라니 K민화의 위상이 더욱 높아질 듯하다. 

케데헌의 일월오봉도에서 우드혜경 작가의 일월캐년도까지 K컬처 한국 민화의 부상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