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보다 먼저 온 ‘가을꽃’… 딱 두달동안 ‘花려한 날들’[박경일기자의 여행]
안보관광 전부였던 삼엄한 동네
국내 최대 24만㎡ ‘고석정 꽃밭’
맨드라미·코스모스 등 20종 만개
日 명소 후라노·비에이에 판정승
입소문 퍼지며 해마다 손님 급증
엄격하게 출입 통제되던 소이산
지금은 전망대 만들어 명소 각광
정상 오르면 ‘철원평야’ 펼쳐져
일산 신도시 22배 크기에 탄성
벌써 노랗게 익은 벼들이 손짓
태봉국 궁예왕 역사공원 주변
얼음창고 등 근대문화유적 보존
민통선 너머 옛 철원 정취 물씬
‘꽃강’ 따라 DMZ생태평화공원
손대지 않은 원시 자연의 풍경

철원=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한탄강 얼음 트레킹이 인기를 얻기 전, 그리고 한탄강주상절리길의 잔도(棧道)와 고석정꽃밭이 있기 전의 철원은, 안보관광이 거의 전부였다. 삼엄한 경계망을 넘어 땅굴에 들어가거나, 북녘땅이 보이는 전망대에 오르는 것 외에는 별다른 선택이 없었다. 그랬으니 철원은, 안보교육 외에는 별반 가볼 일이 없는 곳이었다. 어쩌다 철원에 가게 되면 수시로 군용트럭과 작전 중인 전차를 만났다. 어딜 가든지 철원에서는 무기의 쇳내가 풍기던 시절이었다.
그랬던 철원이 최근 몇 년 사이에 확 달라졌다. 근래에 잔도와 꽃밭 등의 관광 인프라 구축이 성공을 거두면서 관광에 몰라볼 정도로 적극적이 됐다. 성공의 기세를 몰아 고삐를 틀어쥐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시도에 힘입어서 철원은 빠른 속도로 달라지고 있다. 이제 철원은 ‘연중 한 번은 다녀와야 하는’ 매력적인 관광 명소가 됐다.
# 철원에서는 벌써 벼 베기를 한다고?
연중 딱 한 번만 철원에 갈 수 있다면, 가야 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지금 철원에 가을이 일찌감치 당도해 있으니까. 관광에서는 ‘계절이 이른 쪽’이 늘 이기는 법. 봄꽃이 가장 먼저 피는 광양의 매화마을이나 구례 산수유마을이 봄 여행 명소가 된 건 그래서다.
봄이 그런 것처럼, 가을도 이르게 당도하는 쪽이 이긴다. 가을이 빨리 오는 걸 ‘누렇게 벼가 익은 들판’으로 가늠한다면, 철원만큼 가을이 이른 곳이 또 있을까. 지금 철원의 논에는 누렇게 익은 벼가 물결치고 있다.
추위가 일찍 찾아오는 철원에서는 냉해를 입기 전에 가을걷이를 마쳐야 한다. 그러니까 빨리 자라고, 일찍 거두는 조생종 벼를 심을 수밖에…. 일찍 수확한 햅쌀이 시세가 좋은 건 당연한 일. 철원의 농부들이 벼 베기를 경쟁적으로 앞당기는 이유다.
벼 베기는 점점 일러진다. 추석이 한 달도 더 남았는데, 철원의 들에서는 진작 가을걷이가 시작됐다. 염천의 더위가 아직 한창인 8월 말에 벼 베기라니….
철원은 가을꽃도 이르다. 철원군은 2016년부터 해마다 봄가을에 고석정 주변, 탱크 기동 훈련장이었던 곳에 꽃을 심기 시작해서 2021년에 고석정꽃밭이란 이름으로 관광지를 개장했다.
전국에 꽃밭이 많지만, 이곳은 ‘비교 불가’다. 꽃밭의 면적은 24만㎡. 국내 최대다. 축구장 서른세 개를 붙여놓은 것과 같은 사이즈다. 다른 꽃밭과는 아예 ‘클래스’부터가 다르다.
고석정꽃밭은 봄보다는 가을이다. 전방지구인 철원은 봄꽃이 늦다. 흔전만전한 봄꽃을 다 본 뒤끝에 철원의 봄꽃이 피니 시들할 수밖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관광에서 늘 이기는 건 ‘계절이 이른 쪽’이다.
하지만 가을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드넓은 고석정꽃밭에는 맨드라미며 코스모스, 백일홍, 천일홍, 댑싸리, 버베나, 가우라, 핑크뮬리, 구절초, 메밀꽃 등 20종에 가까운 다양한 가을꽃이, 순서대로 피었다가 진다.
고석정꽃밭이 봄보다 가을인 이유가 또 있다. 봄꽃이 피어 있는 건 한 달 남짓이지만, 가을꽃은 8월 말부터 10월 말까지 꽉 찬 두 달 동안 피고 진다. 고석정꽃밭의 ‘본 게임’은 가을인 셈이다.
# 지금 고석정꽃밭에 가야 하는 이유
올해 고석정꽃밭의 가을꽃이 유난히 좋다. 지난봄에는 날씨 탓에 꽃이 좋지 않았는데, 그게 전화위복이 됐다는 설명. 봄 꽃밭을 망친 뒤에 어느 때보다 더 정성 들여 가을꽃을 준비했단다.
올해는 꽃도 좋지만, 개화 시기도 기막히게 맞췄다. 꽃을 앞세운 관광지의 성패를 가르는 건 모름지기 ‘타이밍’이다. 꽃을 적절한 시기에 피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석정꽃밭 가을시즌을 개막한 게 지난달 27일이었는데, 첫날 가본 꽃밭이 화려했다. 줄 맞춰 심어진 붉고 노란 원색의 촛불맨드라미가 야트막한 능선을 따라 만개했다.
관광지 꽃밭을 조성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이 개화 지속 시간이다. 꽃이 예뻐도 피었다가 금세 지는 꽃은 탈락이다. 백일 동안 붉다는 백일홍(百日紅)이나, 두 달 넘게 피어 있는 맨드라미가 고석정꽃밭의 밑그림인 이유다.
고석정꽃밭이 집중하는 건 색깔이다. 보통 꽃밭에다 이랑을 만들어서 같은 종의 꽃을 긴 이랑을 따라 심는다. 그렇게 조성한 꽃밭은 초록의 대지 위에다 넓적한 붓으로 원색의 물감을 찍어서 길게 붓질한 것처럼 보인다.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후라노·비에이 지역의 ‘팜도미타’나 ‘사계채의 언덕’과 분위기가 비슷하지만, 꽃밭의 규모나 꽃의 다양함으로 겨룬다면 고석정꽃밭의 판정승이다.
고석정꽃밭은 재방문객이 유난히 많은 관광지다. 한 번 보고 감탄해서 이듬해 다시 찾는 경우가 많다. 작년 가을 고석정꽃밭을 찾은 방문객은 60만 명. 철원군 인구(4만 명)의 14배가 넘는다. 입장료 수익도 전년보다 60% 늘어난 28억 원에 달했다.
올가을은 꽃이 좋은 데다 10월 초 황금연휴까지 있어 방문객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수록 방문객이 늘어나니 되도록 서두르자. 주말에는 차량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주차에만 1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것쯤은 예사. 주말이나 휴일은 피하는 게 좋겠고, 부득이 주말에 가야 한다면 이르거나 늦은 시간을 겨누는 게 낫다.

# 익은 벼가 물결치는 평야를 보는 자리
철원에서 가을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 또 한 군데 있다. 철원의 대표 명소로 꼽히는 노동당사 맞은편 소이산(362m) 정상 전망대다.
여기서 보는 건 꽃이 아닌 논이다. 전망대에서는 입이 딱 벌어질 만큼 어마어마한 넓이의 철원평야가 시야 가득 들어온다. 지금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논에서 노랗게 벼가 익어가고 있다.
철원평야의 넓이는 3만5000㏊. 놀라지 마시라. 평으로 환산하면 1억587만5000평이다. 일산신도시의 자그마치 22배 크기다. 그 거대한 평야가 지금 황금빛으로 변해가고 있다.
소이산 전망대까지는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간다. 노동당사 길 건너편에 ‘철원역사문화공원’을 조성하면서 소이산 전망대로 가는 모노레일을 놓았다.
역사문화공원은 관광객의 발길이 잦은 노동당사와 엮어 관광지로 조성한 야외 전시 공간 겸 상점가다. 공원의 주제는 전쟁통에 사라지다시피 한 ‘옛 철원읍 풍경’이다. 정오를 알리는 ‘오포(午砲)’를 쏘던 오포대를 비롯해 철원우체국, 일출여관, 철원극장, 철원역 등 옛 철원읍의 공간이 그곳에 재현돼 있다. 고증을 거쳐 엄격하게 재현해 놓은 건 아니고, 건축 양식을 흉내 내고 간판과 몇 가지 소품으로 ‘이런 곳이 있었다’며 보여주는 정도다.
지금은 아무 때나 오를 수 있는 관광지가 됐지만, 소이산은 과거 엄격하게 출입이 통제되던 곳이었다. 일대를 손금 보듯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이’ 때문이었다. 6·25전쟁 중에 ‘소이산의 높이’를 차지하려는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벌컨포 기지와 레이더 기지가 들어서 미군과 한국군이 번갈아 주둔했다. 민간인통제구역에서 해제되고 군부대가 물러난 뒤에는 ‘지뢰주의’의 삼각 팻말이 길을 막았다. 그러다 10여 년 전쯤에야 육군 6사단의 협조로 출입이 허용됐다.
지금도 모노레일에서 내려 전망대 쪽으로 가다 보면 빈 미군 부대 막사와 교통호, 견고하게 지은 토치카를 볼 수 있다. 교통호와 탄약고 위쪽이 바로 소이산 정상 전망대다. 정상 전망대에는 너른 나무 덱이 깔려 있는데, 그 위에 올라서자마자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큰 분지를 이룬 철원평야와 그보다 더 거대한 가을 하늘의 뭉게구름이 거기 있다.
# 접적 지역에 고대국가 수도가 있었다
사실 소이산 전망대보다 먼저 소개하고 싶었던 건 ‘태봉국 궁예왕역사공원’이었다. 민통선 너머 월정리역 부근에 조성 중인 태봉국 궁예왕역사공원이 오는 29일 개장한다.
태봉국은 1100년 전 미륵을 자처했던 궁예 왕이 세운 나라다. 후고구려를 건국하고 스스로 왕으로 칭한 궁예는 905년 수도를 철원으로 옮기고, 911년 태봉국 건국을 선포했다. 당시 태봉국은 한반도 남부지역 3분의 2를 장악했을 정도로 강성했다. 미륵 이상세계를 실현하려던 궁예가 918년 정변으로 쫓겨날 때까지,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철원은 강원도에서 유일한 왕조의 수도였다.
실제 태봉국은 하필 비무장지대(DMZ) 너머 군사분계선의 삼엄한 경계에 걸쳐 있어 출입할 수 없다. 그곳에 태봉국 도성의 자취와 남문지, 궁궐터, 미륵전,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 등의 유적이 여태 남아 있다고 전해진다.
태봉국 궁예왕역사공원 건립은 관광객 유입 목적도 있었지만, 남북관계 개선으로 남북한 공동조사 발굴작업이 이뤄지면 이를 뒷받침할 발굴 유물 일시 저장공간과 전시관을 마련하려는 취지도 있었다.
2014년 시작된 태봉국 궁예왕역사공원 조성사업은 규모와 예산이 커지면서 완공이 몇 차례 연기돼 왔다. 우여곡절 끝에 11년 만에 개장하는 것이니 기대를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 얘기를 먼저 하고 싶었던 이유다.
결론부터 말하자. 역사공원은 한마디로 실망스러웠다. 특히 국내 최대 규모라는 40m×78m의 태봉국 철원성 야외 축소 조형물(미니어처)은 장난감 같았다. 전체적인 구성이나 배치가 너무 작위적이어서, 실감은커녕 실소가 터질 정도였다.
그에 비하면 실내공간인 역사체험관은 충실했다. ‘태평성대를 꿈꾼 궁예의 태봉성대(泰封聖大)’란 주제를 내건 촘촘한 전시와 애니메이션 3D 영상은 볼 만했다. 사당(선양관)에 봉안된 궁예의 표준영정도 흥미로웠다. 표준영정은 오랜 준비를 거쳐 정부로부터 궁예의 얼굴로 공식 인증받은 영정이다.

# 길가에 남아 있는 옛 철원의 자취
태봉국 궁예왕역사공원을 찾으면서 기대했던 또 한 가지는, 가는 길에 볼 수 있는 민통선 너머의 경관이었다.
역사공원이 개장하면 관람객들은 노동당사 앞에서 SUV 차량이 끄는 무궤도 열차를 타고 민통선 검문소를 통과해 월정리역까지 이동하게 된다. 검문소 너머에서 월정리까지 이어지는 도로는 남북 간 물류유통이 모이는 곳이자 국내 최대 상권이 형성됐던 옛 철원의 중심도로였다. 길 양옆으로 번성했던 시절의 옛 철원의 자취가 남아 있다.
이 길에서는 얼음창고와 제사공장, 수도국터, 철원 공립학교 등의 잔해와 흔적을 볼 수 있는데, 허물어진 얼음창고 외벽에 당시 써넣은 구호의 문구와 함께 ‘인민’ 등의 글귀가 흐릿하게 남아 있다. 온전한 형태로 있는 유일한 건물은 농산물검사소다. 철원제일교회, 얼음창고 등과 함께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이 건물에서, 일제강점기에 공출과 관련한 수탈이 자행됐다.
옛 철원의 근대 유적이 남아 있는 이곳은 민통선 지역인 데다 따로 출입허가를 받기 어려운 곳이어서 웬만해서는 가보지 못하는 곳이다. 그런데 태봉국 궁예왕역사공원 개장으로 이 길이 열리게 됐다. 길가에 잠깐이라도 차를 세우고 관람할 수 있는 시간을 주면 좋을 텐데, 그게 가능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 긴장과 경계로 닫혀 있던 길을 걷다
철원에 가면 꼭 가봐야 할 곳이 한 곳 더 있다. ‘DMZ생태평화공원’이다. 이름만 봐서는 뭘 하는 곳인지 짐작하기 쉽지 않다. 강원과 경기 북쪽의 접적 지역에는 DMZ 이름을 앞세운 여러 시설과 공간이 있다. ‘평화’ 혹은 ‘생태’를 끼워 넣은 것도 비슷비슷해서 보통 헷갈리는 게 아니다.
철원의 DMZ생태평화공원은 휴전 후 지난 60년 넘게 민간인에게 개방되지 않았던 지역을 탐방코스로 개발한 곳이다. 환경부와 철원군, 육군 3사단이 공동협약을 맺어 2016년 조성했다.
생태평화공원 탐방은 철원의 최북단마을 생창리에서 시작한다. 생태평화공원이 운영하고 있는 탐방코스는 모두 2개 노선. 제1코스 ‘십자탑 탐방로’는 육군 제3보병사단이 성재산에 설치해 대북한 전망시설로 활용하고 있는 ‘십자탑’을 다녀오는 코스다.
2코스 ‘용양습지 탐방로’는 서울에서 원산을 가거나 금강산을 가려면 꼭 지나야 했던 경흥대로를 따라 걷다가 옛 금강산 전기철도 노선의 자취를 밟고 되돌아오는 코스다. 두 코스 모두 탐방 전에 사전예약을 해야 하고 탐방 시에는 해설사와 군인이 동행해 인솔한다.
두 개 코스 중에서 용양습지 탐방로가 압도적으로 인기 있다. 등산을 방불케 하는 1코스와 달리, 2코스는 내내 평지인 데다 습지의 풍경도 좋고 철책의 비장한 느낌에다 금강산 전기철도의 흔적까지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어서다. 마침 1코스는 작년의 수해로 탐방로 일부가 유실돼 탐방을 중단하고 있으니, 따로 선택하지 않아도 방문객들은 모두 2코스를 걷게 된다.

# 꽃강을 따라 걷는 길
철원의 생창리는 남북한의 체제경쟁이 한창이던 1970년 민통선 지역에 만들어진 ‘재건촌’이다. 철원의 전방지구에는 재건촌이 곳곳에 있다. 모델은 이스라엘의 유대인 집단농장 키부츠. 한 손에는 총, 다른 손에는 삽을 들고서 농사를 지으며 자체 방어도 하는 마을로 만들어졌다. 마을마다 벙커가 있고, 무기고도 있었다. 비상이 발령되면 주민과 현역 군인이 같이 보초근무를 섰고, 야간에는 등화관제도 했다.
탐방은 생창리 DMZ생태평화공원 방문자센터에서 출발한다. 용양보 탐방로는 남방한계선의 철책 너머 북녘땅에서 발원해 남으로 흐르는 물길 화강(花江)을 따라간다. 역설의 이름. 차가운 긴장과 경계의 DMZ를 흐르는 강의 이름이 ‘꽃강’이다.
꽃강을 끼고 이어지는 길은 경흥대로다. 경흥대로는 유서 깊은 옛길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고려를 세운 뒤에 금강산에서 불공을 드리기 위해 이 길을 걸었고, 겸재 정선은 이 길을 지나서 단발령에 당도해 ‘단발령 망 금강산도’를 그렸다. 이북의 처갓집 근처 학교에서 미술 교사를 하던 박수근 화백이 남으로 피란을 간 것도 이 길이었다.
탐방로는 민간인은 감히 접근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남방한계선 철책 코앞까지 이어진다. 철책 턱밑까지 가서 화강을 건너면 옛 금강산 전기철도의 자취를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이던 1931년에 완공된 금강산 전기철도는 철원역에서 출발해 김화역을 거쳐 내금강까지 총연장 116㎞를 운행했던 철도였다. 철도는 본래 일제가 철화합물인 리모나이트(유화철)를 반출할 목적으로 가설했는데, 훗날 금강산 관광객 수송이 주가 됐다.
당시 철원에서 내금강까지는 전기철도로 4시간 30분쯤 소요됐다. 매일 8회 운행했는데, 요금이 당시 쌀 한 가마니 가격인 7원56전이었다. 이런 비싼 가격에도 1936년 금강산 전기철도의 연간 이용객이 15만4000명에 달했다.

# 고요하고 평화로운 습지의 풍경
용양습지 탐방코스를 다 걷는 데는 1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 금강산 전기철도 노선을 딛고 생창리 마을로 되돌아오는 구간에 철로가 놓여 있다. 탐방객을 위해 근래 새로 놓은 것이다. 실제 철로보다 폭이 좀 넓다. 탐방로 끝에는 전기철도 열차 모형도 만들어 놓았다. 팽팽한 긴장과 삼엄한 경계의 공간에 순전히 볼거리와 재미를 위해 이런 걸 만들어 놓은 것이다.
탐방로가 끼고 지나가는 농업용 저수지 용양보는 금강산 전철의 무너진 철교의 교각과 교각 사이를 둑으로 막아 만든 저수지다. 전쟁 이후 60여 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저수지는 왕버들 군락으로 가득한 습지가 됐다. 그냥 그 자체로 인간의 간섭 없이 ‘살아 숨 쉬는’ 원시 생태의 자연이다.
저수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민물가마우지였다. 습지에는 종전 후 경계근무를 서던 병사들이 오가던, 발판이 떨어져 나가고 철탑 지지대와 철선만 남은 출렁다리가 있는데, 철선 위에는 늘 민물가마우지가 줄지어 앉아 있다.
가마우지는 유해 조수로 분류되지만 여기서는 도무지 퇴치할 방법이 없다. 접적 지역이라 사냥총을 쏠 수도 없고, 지뢰지대에다 알을 낳으니 서식지를 없앨 수도 없다. 게다가 DMZ 일대 습지에는 먹잇감인 물고기가 좀 풍부한가.
그곳에서는 무엇이 쓸모가 있고 어떤 게 쓸모없는지를 가리지 않는다. 손대지 않은 무위의 자연은 누구를 간섭하지 않고, 누구를 해치지도 않는다. 증오도 배척도 모두 사람의 일일 뿐. 자연은 그저 저 홀로 고요할 따름이다.

■ 입장료 절반 ‘페이백’
철원의 관광지에서는 입장료 절반쯤을 지역상품권으로 돌려준다. 고석정꽃밭 입장료는 1만 원. 티켓을 사면 5000원을 철원상품권으로 돌려준다. DMZ생태평화공원의 탐방 참가비도 1만 원이고, 이것도 똑같이 5000원을 철원상품권으로 되돌려준다. DMZ생태평화공원은 꼭 사전예약(033-458-3633)을 해야 한다. 노동당사 앞의 철원역사문화공원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공원에서 출발하는 소이산모노레일 요금은 왕복 7000원. 이것도 3000원을 철원상품권으로 돌려준다.
박경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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