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런 기분’ 넘겼다간 노쇠 더 빨라져…“주변과 교류가 최선의 예방” [건강한겨레]

한겨레 2025. 9. 4.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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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 홈닥터: 건강한겨레-서울대병원 공동기획 25
치매와 혼동하기 쉬운 노인 우울증
65살이상 최대 50% 우울 증상 경험
소화불량, 기운없음 등 호소가 잦아
몸만 아니라 기분 변화도 관심 가져야
적절한 치료와 도움 땐 호전 가능해
노인 우울증 환자와 치매 환자는 구별이 힘들 때도 있다. 생성형 AI 퍼플렉시티 이미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지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나이 탓’이라며 넘기거나 치매를 걱정하곤 한다. 그러나 노인기에 나타나는 기억력 저하는 ‘우울증’의 신호일 수 있다. 노인 우울증은 65살 이상 인구 10명 중 4~5명이 경험한다고 알려진 흔한 정신건강 문제이다. 우울증은 치매와 명확한 구분이 어려워서 ‘가성 치매’라 불리기도 한다.

노인 우울증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젊은 시절부터 우울증을 앓던 사람이 노년기에 접어든 일반적인 우울증으로, 성인기 우울증과 발병기전이 동일하다. 다른 하나는 60대 이후 처음 나타난 ‘만발성 우울증’이다. 이는 신경퇴행성 변화로 인해 발생할 수 있으며 뇌 구조와 기능의 변화, 뇌혈관 질환 여부를 함께 살펴야 한다. 그 외에도 은퇴, 사별, 질병 진단으로 인한 심리 환경적 변화도 노인기 우울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노인 우울증의 진단 기준은 일반 우울증과 같다. 우울한 기분이나 흥미 저하 중 한 가지를 반드시 포함하면서 체중(식욕) 변화, 정신운동성 초조 혹은 지체, 피로감 또는 활력 상실, 무가치감이나 부적절한 죄책감, 사고력 및 집중력 감퇴, 죽음이나 자살에 대한 생각을 포함한 증상 중 5가지 이상이 2주 이상 거의 매일 지속될 때 진단한다.

그러나 일반 우울증에 비해 노인 우울증은 인지기능 저하와 신체 증상(소화 불량, 불면, 기운 없음 등)을 자주 호소하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우울한 기분을 잘 표출하지 않아서 기분을 물어보면 ‘그냥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국내 노인 인구가 자신의 감정을 직접 표현해본 경험이 적기 때문일 수도 있다. 특히 감정 표현이 익숙하지 않은 남성 노인에게서 흔히 보이는 모습이다.

치매와 노인 우울증 모두 인지기능 저하가 대표적 증상이지만 시작하고 진행되는 양상에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알츠하이머병으로 대표되는 신경퇴행성 치매는 서서히 발생해 인지기능도 점진적으로 감퇴하는 양상을 보인다. 반면, 노인 우울증 환자는 기분 상태에 따라 기억력에 기복이 있을 수 있고 우울 증상이 치료돼 기분이 나아지면 인지기능도 함께 호전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환자가 ‘증상을 호소하는 방법’도 중요한 차이가 있다. 치매 환자는 처음에는 자신의 인지기능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남들에게 드러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 묻는 말에도 최대한 대답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인다. 그에 반해 노인 우울증 환자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와 같이 대답하면서 자신감이 떨어지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즉, 우울증으로 인해 의욕이 없고 귀찮아서 ‘안’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인지기능에 문제가 있어서 실수가 생기고 ‘못’하는 것인지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노인 우울증과 치매는 동시에 나타날 수 있어 감별이 어렵다. 상당히 많은 환자에서 치매 초기 증상이나 치매와 공존하는 증상으로 우울 증상이 나타난다. 따라서 노인 우울증을 진단할 때는 인지기능 평가와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통한 질환 감별이 필요할 수 있다. 또한 증상의 진행 양상과 약물치료 반응을 수개월간 살피는 장기적 추적 관찰도 필요하다.

문제는 노인 우울증의 진단과 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노인 본인이나 가족들이 ‘나이가 들면 우울할 수 있다’고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증상을 알아채지 못하거나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인 우울증은 삶의 질과 일상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신체질환 관리에도 지장을 주며, 치매와 자살 위험성도 높인다. 다행히 항우울제 등 적절한 약물치료로 충분히 호전될 수 있으므로 적극적으로 발견하고 치료받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항우울제는 수면제나 안정제보다 부작용이 적고 안전하기 때문에 고령 환자도 대부분 불편함 없이 복용할 수 있다.

노년기 우울증을 예방하려면 무엇보다 사람들과 꾸준히 어울리는 것이 중요하다. 노인기에는 이전과 같은 관계망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이는 우울증 예방을 위해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웃과 담소를 나누거나 복지관에서 잠시 사람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기분 전환과 걱정 해소에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자신의 기분과 에너지 상태를 체크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많은 노인이 신체 상태는 꼼꼼히 살피면서 기분 상태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울한 기분을 일찍 알아차리면 원인을 찾아보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마지막으로 기분을 좋게 만드는 나만의 비밀무기를 미리 준비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하늘 보면서 산책하기, 좋아하는 음악 듣기, 친구에게 전화하기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노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불편감과 좌절로 인해 우울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 다만 노인 우울증은 적절한 치료와 도움을 통해 호전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란다. 우울 증상이 지나면 더욱 평온하고 멋진 노년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끝>

박지은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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