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V ‘99.9% 예방·치료’ 가능해졌는데…“인식·차별은 1980년대” [건강한겨레]

최지현 기자 2025. 9. 4.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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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HIV 감염인 발생 40년 특집 대담
하루 한 알 복용으로 ‘바이러스 미검출’
타인에게 전파되지 않는 상태에 도달
사회 전반에서 받는 차별·배제는 ‘여전’
생존 늘며 ‘감염인 돌봄·요양 공백’ 부각
우울증 비율 80%지만 입원도 불가능
“감염인도 건강·행복 누릴 제도 절실해”
HIV 감염인과 에이즈 환자를 상징하는 붉은색 리본(레드리본). 레드리본은 에이즈 예방과 HIV 감염인에 대한 편견 해소 및 이들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의미하기도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대담 참가자=권태윤 함께서봄 이사, 박광서 러브포원 대표, 송문수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KNP+) 대표

1985년 국내에서 첫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이 발생한 지 40년이 지났다. 조병희 서울대 보건대학원 명예교수는 앞서 건강한겨레 칼럼에서 그간의 국내 정책에 대해 ‘의학적 성공, 사회적 실패’라고 평가한 바 있다. 1981년 전세계 첫 감염인이 나온 후 HIV 치료제는 놀라운 발전을 이어갔다. 이젠 치료는 물론 99.9% 감염 예방도 가능해졌다. 2세대 통합효소 억제제(INSTI) 치료제 개발로 하루 한 알씩 식사와 무관한 복용, 높은 내성 장벽 등 편의성도 개선됐다. 이제 치료 패러다임은 생존에서 만성질환 관리 수준의 감염 관리와 삶의 질 개선으로 전환 중이다.

이 맥락에서 ‘U=U’ 개념도 등장했다. 치료를 통해 감염인의 혈중 바이러스 수치가 억제돼 바이러스 미검출 상태라면 타인에게도 전파되지 않는다는 과학적 근거가 확립된 것이다. 덕분에 의학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HIV 감염은 더는 에이즈와 동치가 아니며 사회적 분리 대상도 아니다. 그럼에도 여러 의료기관과 사회 전반에서 감염인들이 받는 낙인과 차별은 여전하다.

이에 건강한겨레는 지난 40년간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HIV 감염인들을 지난달 6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나 HIV 감염 치료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대담했다. 권태윤 함께서봄 이사, 박광서 러브포원 대표, 송문수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KNP+) 대표는 “이제 HIV에 감염된 너와 감염되지 않은 너는 서로 다를 것 없어졌지만(U=U), 사회 전반의 인식은 여전히 1980년대 말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 40년간 국내 HIV 치료환경과 인식 상황은 어떻게 변했는가?

송문수 대표(이하 송) 1995년 처음 확진받았을 땐 HIV를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치료제 자체도 거의 없었고, 3~4가지 약물을 동시에 복용해 면역 수치(CD4+ T세포 수치)를 유지하기 위한 칵테일 요법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시기였다. HIV 치료 상황은 2000년대로 넘어오며 상당히 안정됐고 HIV 치료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제 HIV 감염은 단순히 체내에 바이러스를 보유한 상태만을 의미하고 하루 한 번 한 알의 치료제만 복용하면 HIV를 미검출 수준으로 억제해 전파도 차단된다. 다만 감염 초기에 특별한 증상이 거의 없어 감염 사실을 자각하기 어렵기도 하고 사회적 낙인을 두려워해 확진 검사나 치료를 피하는 경우가 꽤 있어 적극적인 조기 검사-치료 연계 체계와 인식 개선이 여전히 필요하다.

권태윤 이사(이하 권) 아직 HIV를 완치할 순 없지만 치료제를 꾸준히 복용하면 충분히 만성질환처럼 관리할 수 있고 기대수명도 비감염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도 가장 큰 장벽은 잘못된 인식이다. 우리 사회가 HIV에 대한 과도한 공포심을 걷어내고 ‘양지’에서 정확한 정보를 다뤄 낙인을 줄여야만 HIV 종식도 가능하다. 사회적 배제에 대한 공포와 차별 속에서 일부 감염인이 검사나 치료를 꺼리면 신규 감염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치료 환경 변화로 감염인 커뮤니티에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송 HIV 자체로 인한 합병증이 거의 발생하지 않아 감염인들의 수명이 길어진 것이다. HIV에 감염됐다고 해서 나이가 들수록 특별히 더 많은 질환을 겪는 것은 아니다. 고령 감염인도 별다른 합병증 없이 건강하게 활동하고 일상을 이어가면서 다른 고령층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만성질환과 노인성 질환을 겪을 뿐이다. 문제는 고령 감염인의 돌봄과 요양 공백이다. 요양시설에서 HIV 감염인을 받아주지 않는 경우도 많고 가족의 돌봄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면 갈 곳 없이 고립된다.

권 그렇기에 함께서봄에선 감염인들이 서로를 돌보는 활동을 시도하고 있다. 고령 감염인의 많은 요청에도 재정적 제약 때문에 모두 응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장기적으로는 감염인들이 모여 서로를 돌볼 수 있는 시설도 마련하는 게 목표다.

-여전히 의료기관 안에서 느끼는 어려움은?

박광서 대표(이하 박) 감염인들이 차별로 가장 많이 상처를 받는 곳은 의료기관이다. 감염내과를 벗어난 의료현장에서 의료진의 인식과 차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외과적 수술을 받아야 하면 진료를 거부하거나 회피하는 문제가 여전히 심각하다. 꾸준히 치료받았던 감염인이 정말로 필요한 치료를 거부당한 후 아예 치료도 포기하고 삶을 체념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송 정부도 감염내과 의료진과 함께 HIV 감염인에 대한 차별 없는 진료에 관한 표준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배포했지만, 실제 현장에선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가 많다. 감염내과 외 의료진의 HIV 교육이 부족한 것이 근본 원인 중 하나다.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에도 20차례 이상 진정을 제기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 지침을 넘어 법적 장치도 필요할 수 있다.

-HIV 치료 환경 및 인식 개선을 위해 향후 필요한 일은?

박 러브포원은 매년 국내 감염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는데, 최근 우울과 자살 문제가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난다. 많은 감염인이 사회적으로 고립돼 우울증 비율이 70~80%에 이를 정도다. 감염인의 정신과 입원도 거의 불가능하다. 대다수 감염인은 자신의 주치의를 신뢰하고 처방에 따라 꾸준히 약을 복용하며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사회의 낙인과 차별이 이들의 건강을 해치는 것이다. 정서적 지원이 필수적인 치료 영역으로 반드시 확대돼야 한다.

송 감염내과 전문의인 임승관 신임 질병관리청장이 최근 취임한 만큼 향후 감염인 친화적인 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사회적 인식 개선 활동과 함께 감염인에 대한 정서 지지 사업, U=U 개념의 쉬운 홍보 메시지(약을 복용하면 HIV는 전파되지 않는다) 등을 정부에 제언할 예정이다.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제19조(전파매개행위죄)는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이기에 이를 공식 폐지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다.

권 HIV 감염인들도 비감염인과 다름없이 일상을 씩씩하고 건강하게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리고 싶다. 감염인들도 서로를 응원하며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HIV에 감염돼 불쌍하다’와 같은 인식은 감염인에게 범죄자보다 못한 낙인을 찍는 것이다. 편견에서 벗어나 누군가 곁에서 지지해주는 일만으로도 감염인들의 삶의 질은 크게 달라진다.

최지현 기자 jhchoi@hani.co.kr

* 신변 보호를 위해 대담자들의 사진을 싣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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