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에게 박탈감 주는 금융, 어떻게 바꿀까?

8월12일 한국개발연구원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0.8%로 전망했다. 최근 10~15년간 한국 경제성장률의 하락 폭과 속도는 주요 선진국보다 가파르다. 2010년 이후에는 3%대 성장이 어렵게 느껴졌고, 2020년대 들어서는 2%대 성장조차 일상적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윤석열 정부 당시 2022년에는 2.7%, 2023년 1.4%, 2024년 2.0%를 기록했다. 올해 1분기는 0.2% 역성장했고, 2분기 성장률 역시 0.6%에 불과했다.
저성장을 드러내는 분명한 신호는 민간 설비투자의 부진이다. 설비투자는 고정자산(기계·건물·차량 등)을 도입하는 데 지출한 금액을 말한다. 설비투자가 늘면 기업의 생산과 함께 고용 및 소득도 증가한다. 지난 10여 년간 민간 설비투자(GDP 대비)는 대략 12~15% 수준인데, 이는 외환위기 이전 1980~1990년대 20% 내외였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설비투자 증가율도 낮은 수준에 머물거나, 심지어 전년 대비 ‘마이너스’로 나타나는 경우가 최근 반복되고 있다.

국내총고정자본형성(건설투자+설비투자+지식재산투자) 중에서 건설 부문(특히 주거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경제구조가 건설 중심이라는 얘기다. 반면 연구개발(R&D)·특허·소프트웨어 등 지식기반 경제로의 전환에 필요한 투자는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국 경제의 이러한 투자 행태는 기업들의 보수적 태도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자본이 흐르는 방향, 즉 금융의 작동 방식에 구조적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금융기관의 기업에 대한 설비투자 자금 대출은 줄었고, 부동산담보대출 중심 가계대출은 빠르게 증가해왔다. 한국의 금융시스템이 점점 더 실물경제에 대한 생산적 투자보다는 부동산이나 주식 등 자산시장을 통한 단기 수익 추구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금융의 두 가지 경로
금융의 본질은 무엇인가?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금융을 현재의 소득과 지출 사이 시간적 불일치를 조정하고, 생산적 활동을 위한 투자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경제 전체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핵심 인프라로 인식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금융은 점점 더 ‘자산경제(asset economy)’의 촉매로 작동하고 있다.
자본은 공장이나 기술개발에 투자되기보다, 부동산이나 금융자산의 가격 상승을 부추기며 투기적 수익을 추구하는 데 쓰이고 있다. ‘자산경제’란 경제의 성장과 축적이 생산활동이나 노동이 아니라 부동산, 주식 등 자산 보유를 통한 가치 상승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를 뜻한다. 금융이 실물 투자가 아닌 자산 투기에 집중되면, 자본은 더 이상 경제 전체에 가치를 순환시키지 못하고, 부를 특정 계층에 집중시키며 생산활동과의 연결을 끊는다. 금융은 더 이상 실물경제의 혈관이 아니라 저성장과 불평등을 촉진하는 구조가 되어버린 것이다.
금융의 작동 방식에는 두 가지 경로가 존재한다. 하나는 생산적 활동을 중심으로 한 산업적 순환(industrial circulation)이며, 다른 하나는 자산 거래를 중심으로 한 금융적 순환(financial circulation)이다. 산업적 순환은 기업→생산→고용→소득→소비→재투자와 같은 경로를 따른다. 이 순환에서 금융은 생산과 혁신을 위한 자금을 제공하고, 이 자금은 고용과 임금으로 연결되며, 다시 소비와 투자로 이어지는 구조다. 이는 실질적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사회 전체의 경제적 역량을 확대하게 된다.

금융적 순환은 다르다. 자산(특히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자산 구매→자산 가격 상승→더 큰 대출→ 추가 구매로 이어지는 순환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실질적 생산활동이나 고용 창출보다 자산의 가격 상승 자체가 순환의 동력이다. 이러한 금융적 순환은 단기적으로 소비 진작과 자산효과(wealth effect)를 통해 경제를 부양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실물 부문과의 단절을 초래하며, 금융의 자율적 팽창과 위기를 반복하게 만든다.
한국에서 금융적 순환이 산업적 순환을 압도하게 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2014년 박근혜 정부 시기의 ‘빚내서 집 사라’ 정책이었다. 당시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LTV(주택담보인정비율),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를 완화하고, 주택거래 활성화 정책을 추진했다. 이 정책은 단기적으로 부동산시장과 건설경기를 부양하는 데 성공했으나, 가계부채 급증과 금융의 부동산 쏠림 현상 심화라는 구조적 문제를 남기게 된다. 같은 시기 기업에 대한 설비투자 대출은 정체되거나 감소했으며, 특히 중소기업과 혁신기업에 대한 신용 공급이 위축되었다. 금융의 위험 회피 성향이 강화되고, 부동산이라는 ‘안전한 담보’에만 자금이 몰리는 구조로 고착화되었다.
한국의 부동산금융 팽창에 단순히 시장 논리만 작용한 것은 아니다. 정부 주도 금융시스템도 그 기반을 일정 부분 제공했다. 한국주택금융공사(HF)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서민 주거 안정을 명분으로 모기지 보증·전세금 대출·보금자리론 등을 제공해왔는데, 이는 주택 구입자금 조달의 주요 수단이 되어왔다. 이러한 공공금융이 단기적으로 주거 안정과 금융 접근성 향상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부동산시장의 가격 상승을 정당화하고, 금융기관의 위험 분산 비용을 공공부문이 떠안는 ‘어처구니없는’ 구조를 강화했다.
이처럼 금융의 자산 편향이 고착된 구조에서는, 단순한 정책 개입만으론 산업적 금융 순환을 복원하기 어렵다. 왜 그럴까? 첫째, 금융기관의 수익성 구조가 자산 중심으로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설비투자 대출보다 주택담보대출에서 훨씬 안정적이고 높은 수익률을 기대한다. 정부도 이를 묵인하거나 간접적으로 장려해왔다. 둘째, 정책금융의 범위와 역량이 제한적이다. 산업은행·중소기업은행 등의 정책금융기관이 존재하지만, 이들이 감당할 수 있는 투자금융의 범위는 한정적이며, 규제 환경도 녹록지 않다. 정부로부터 받는 출자와 재정지원 규모가 제한적이며, 일반 시중은행과 동일한 건전성 기준을 적용받는다. 이는 장기투자·위험감수형 투자(신성장산업, 창업 벤처, 구조조정 기업)에 불리하다.
셋째, 가계와 기업의 금융 수요가 구조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가계는 금융을 소비나 생산활동의 보완이 아닌 주택담보대출이나 금융투자를 통한 자산 축적의 수단으로 이용한다. 기업은 과거처럼 설비투자, 고용 확대, 연구개발 등으로 생산능력을 키우는 ‘생산 중심 자본축적 모델’에서 벗어나 자본 유보 확대, 배당 및 자사주 매입, 부동산·금융자산 취득 등 자산 중심 전략 쪽으로 기울고 있다. 한국 경제가 생산 기반에서 자산 기반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구조적 변화다. 넷째, 자산 가격이 하방 경직성을 가지면서 금융 리스크가 사회화되었다. 부동산가격이 하락하면 금융기관이 아니라 공공(정부와 한국은행)이 그 충격을 흡수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는 적극적으로 자산 가격 하락을 방지하려는 유인을 가진다. 이는 금융이 실물로 회귀하기 어렵게 만드는 정치경제적 장벽이다.
요약해보면 한국에서 금융이 실물경제보다 부동산 및 자산 중심으로 흐르면서, 금융의 산업적 순환 기능은 무력화되었다. 자산 중심적인 금융 순환이 한국 경제를 지배하고 있다. 특히 정부 정책과 민간 금융이 함께 부동산 금융을 팽창시키는 메커니즘을 갖게 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의 금융 구조는 단순한 시장 실패가 아니라 제도적·정치경제적 실패라고 할 수 있다.

경제성장이 둔화될수록 사회는 분배 문제에 민감해진다. 성장률이 높으면 ‘파이’가 크기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이 일시적으로 상쇄될 수 있다. 그러나 성장률이 낮아지고 자산 가격은 급등하는데 ‘파이’가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오히려 줄어들면 ‘누가 더 많은 것을 차지하느냐’가 사회적 갈등의 핵심이 된다. 금융은 이 같은 자산 중심 불평등의 핵심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한국의 금융시스템은 고소득·고자산 계층에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심각하게 대두되는 불평등은 소득보다 자산이다.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2024)’에 따르면, 소득 5분위 간 격차보다 자산 5분위 간 격차가 훨씬 크고, 특히 상위 10%의 자산 점유율이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 이 같은 구조는 일본이나 독일보다 훨씬 심각하다. 그중에서도 부동산 자산의 집중도가 두드러진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주거용 부동산이 가계 순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은 나라다.
문제는 자산 축적의 주요 경로가 ‘근로소득→저축→투자’가 아니라, ‘부동산가격 상승→차입 확대→자산 재축적’이라는 비생산적 순환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산 불평등은 단순한 경제적 격차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 영향력과 문화적 자본, 세대 간 이동성의 격차로 확장된다. 자산이 많은 사람은 더 빠르고 넓은 정보 접근성을 가지며, 금융상품에 투자할 기회가 많고, 자녀에게 자산을 이전할 능력도 크다. 그 결과, 자산은 단순한 물질적 여유를 넘어 사회적 영향력과 특권을 축적하는 수단이 되고, 자산이 없는 사람은 이 모든 누적된 기회를 점점 더 박탈당하는 구조에 갇히게 된다.
특히 청년 세대의 금융 소외는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정치·경제적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2030 세대는 이미 자산 축적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으며, 높은 주거비 부담과 불안정한 고용으로 인해 금융시장 참여도 쉽지 않다. 이처럼 구조적 배제와 정체감은 젊은 세대가 정치에 대해 더 회의적이거나 보수적으로 반응하는 경향, 그리고 진보 정부에 대해 상대적으로 낮은 지지를 보이는 이유 중 하나로 해석될 수 있다. OECD 분석에 따르면,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청년층의 약 45%는 정부나 금융제도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의 금융시장 접근은 낮은 소득, 높은 주거비, 비정규 단기 고용 등으로 인해 억제된다. 청년 세대의 자산 박탈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를 넘어, 향후 사회적 이동성의 정체와 사회 통합력의 약화로 연결될 수 있다.
한국 경제의 저성장, 실물 투자 부진, 자산 불평등의 심화는 단지 외생적 요인이나 시장의 실패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 이면에는 한국 금융시스템의 구조적 왜곡, 특히 금융의 산업적 기능 상실과 자산중심적 흐름의 고착화가 자리 잡고 있다.
자산 없더라도 기회 얻는 구조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금융을 재정립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답은 다음의 세 가지 과제로 정리한다. 무엇보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금융의 흐름을 비생산적 자산이 아닌 생산적 실물로 유도하는 구조 전환이다. 이를 위해 실물 투자 중심의 금융 유인을 확대해야 한다. 정부는 세제 혜택, 보증제도, 인센티브 등을 통해 민간 금융기관이 제조업, 첨단기술, 사회적 인프라 등 실물 부문에 자금을 배분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특히 설비투자, 지식재산투자(IP), 녹색 전환, 디지털 전환 관련 분야에 대한 금융지원 확대가 필요하다. 또한 부동산금융을 총량 관리해야 한다. 전체 금융권 자산 중 부동산 대출이 차지하는 비율에 상한선을 설정하거나,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총량 규제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금융감독 체계를 혁신해야 한다. 금융감독 당국은 단순히 개별 금융상품이나 대출 규제에 그칠 것이 아니라, 금융이 실물경제와 어떻게 순환하고 있는지에 대한 거시적 감시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산업별 자금 흐름 데이터를 만들어 공개하고, 대출의 목적별 통계를 구축하며 주기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두 번째 과제는 포용적 금융체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금융의 재정립은 단지 생산적 금융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금융의 ‘접근 가능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어야 한다. 자산이 없더라도 금융을 통해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무엇보다 청년과 무자산층을 대상으로 금융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현재 청년과 무주택자, 중소 창업자 등은 금융시스템의 중심에서 배제되어 있다. 이들을 위한 저금리·무담보 대출 프로그램, 사회적 보증 시스템, 기본 금융제도 등이 필요하다. 가령 청년용 월세·전세자금 대출을 초저금리·무보증으로 제공해야 한다. 또한 지역 금융과 커뮤니티 뱅크를 강화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지역 금융기관은 지역 경제를 뒷받침할 만큼의 대출이나 신용 공급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독일의 ‘스파카세(Sparkasse)’, 일본의 신용금고처럼 지역 기반 금융기관이 지역 중소기업과 개인의 금융 접근을 책임지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하여 지역산업 육성과 연계된 금융정책을 설계하고, ‘지역 금융기금’ 같은 장치를 통해 공공자금이 지역 내부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세 번째 과제는 금융의 민주화와 공공성 회복이다. 지금까지의 금융은 민간 수익성 중심이었으며, 사회적 책임이나 공정성은 고려 대상에서 밀려났다. 산업은행·기업은행·주택금융공사 등 정책금융기관들은 단순히 시장 실패를 보완하는 수준이 아니라, 금융시장 전반의 방향을 조정하는 나침반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각 기관의 미션을 재설계하고, 성과평가 시스템도 재편해야 한다.
김용기 (생산과포용금융연구회 대표·전 공적자금관리위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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