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이 꺼져도, 인재와 기술은 남는다 [아침을 열며]
구글, 아마존을 이룬 '닷컴 버블'
AI 조정기와도 '인재풀'은 생존
변곡점까지 꾸준한 혁신 이뤄야

필자가 유학생활을 시작한 1990년대 실리콘밸리는 오늘날 인공지능(AI) 열풍과도 같은 혁신의 열기로 들끓고 있었다. 인터넷과 웹 브라우저가 등장하면서 수많은 스타트업이 생겨났고, 현재의 인공지능 개발언어인 '파이선(Python)'과 비견되는, '자바(Java)'와 같은 새로운 언어는 인터넷상에서 홈페이지와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은 그야말로 황금기였다. 벤처 자본은 앞다투어 투자에 나섰고 젊은 인재들은 대기업 대신 스타트업으로 몰려들었다. 기업들은 자바 언어를 다룰 줄만 안다면 엄청난 연봉으로 신입과 경력직을 가리지 않고 채용하였다. 기술과 자본, 인재가 한꺼번에 모이는 폭발적 분위기는 지금의 AI 열풍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그러나 조지 부시 대통령 집권과 함께 터진 2001년 9·11 테러는 경제 전반에 큰 충격을 주었고 IT 산업도 예외가 아니었다. '닷컴 버블'이 붕괴하면서 수많은 기업이 사라졌다. 한때 실리콘밸리를 뜨겁게 달궜던 혁신 기업들은 흔적조차 찾기 힘들게 되었다. 업계는 깊은 암흑기에 빠졌고 많은 사람이 인터넷 혁명이 실패로 끝난 것 아니냐는 회의에 빠졌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중요한 자산이 축적되었다. 스타트업은 사라졌지만 스타트업을 통해 도전과 실패를 경험한 인재들과 기술이 남았다. 그들은 인터넷 서비스, 데이터 관리, 보안, 사용자 경험 설계 같은 새로운 영역에서 실무적 노하우를 쌓았다. 이후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과 같은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인적 토대가 되었다. 기업은 사라졌지만 인재는 남았고, 이들의 축적된 경험이 미래 성공의 자양분이 된 것이다.
기술 혁신은 직선이 아니라 축적과 변곡점의 곡선 위에서 발전한다. 초기에는 투자가 과열되기도 하고 단기 성과가 보이지 않아 산업이 침체하는 시기도 온다. 그러나 기술적 자산과 인적 경험은 축적되고 어느 순간 사회·경제적 조건과 맞물리면서 폭발적 변화를 일으킨다. 변곡점은 예기치 않게 찾아오지만 그 시기를 준비해 온 기업과 인재만이 기회를 잡는다.
오늘날의 AI 산업도 이와 유사하다. 거대한 투자와 인재 유입이 이어지고 있지만 언제든 조정기나 암흑기가 찾아올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 축적된 알고리즘, 데이터, 반도체 기술, 그리고 인재풀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언젠가 AI가 본격적으로 사회 전반을 바꾸는 변곡점이 도래할 때, 이를 준비한 기업만이 살아남고 새로운 시장을 주도할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과연 대한민국은 세계적 기술을 보유한 AI기업을 탄생시킬 충분한 인재 생태계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스타트업 문화, 그리고 그 속에서 경험을 축적한 인재들이 다시 다른 기업의 성장을 이끄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혁신의 불씨는 쉽게 꺼질 수밖에 없다.
기술은 곧바로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 때로는 지루할 만큼 느리게 발전하는 듯 보이지만 축적된 기술과 경험은 반드시 변화를 만든다. 인터넷에서 아마존과 구글이 그랬듯, AI 시대에도 결국 살아남는 것은 꾸준히 투자하고 인재를 키우며 기술을 쌓아 올린 기업과 사회다. 중요한 것은 순간의 유행이 아니라 변곡점이 올 때까지 흔들림 없이 혁신을 이어가는 의지다.

차석원 서울대학교 공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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