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묵의 90년대생 시선] 해외에서 재창작… 디아스포라가 이끄는 K컬처의 확장
재외 동포가 K컬처 재창작… 콘텐츠 생산도 한국서 美日로 방향 전환

올해 여름은 그야말로 ‘K팝 데몬 헌터스’와 함께한 여름이었다. 6월 20일에 공개되자마자 소문을 타며 인기작에 등극한 이 작품은 여름 내내 한국 대중문화 업계 전체에 엄청난 존재감을 발휘했다.
한편 그즈음 일본에서는 다른 문화적 열풍이 불고 있었다. 바로 2024년 10월부터 2025년 1월까지 진행된 오디션 프로그램 ‘노 노 걸즈’를 통해 결성된 걸그룹 ‘하나’의 폭발적 인기다. 하나는 오디션 프로그램 방영 이후 4월에 데뷔를 했으니, 아직 데뷔한 지 반년도 안 된 신인이다. 그런데 4월에 발매된 싱글 1집 ‘Rose’는 오리콘, 빌보드 재팬 등 각종 차트에서 최상위권 순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어서 7월에 발매된 하나의 싱글 2집 타이틀곡 ‘Blue Jeans’는 ‘Rose’를 뛰어넘는 성적을 보였다. 가히 2025년 한가운데를 장식한 신인의 돌풍이라고 할 만하다.
최근 아이돌 그룹 무대 뒤 기획자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하나의 프로듀서 역시 주목받고 있다. 1998년생으로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일본·미국을 오가며 살아온 일본 래퍼 ‘챤미나’가 그 주인공이다. 일본 이름 오토모나이 미나, 한국 이름 전미나를 모두 지닌 그는 한국어·일본어·영어로 힙합 활동을 하며 이름을 알렸다. 어렸을 때부터 빅뱅과 지드래곤의 팬이었고, 근래에도 한국 가수들의 일본 활동에 피처링 등으로 협업을 하며 한국과 활발한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챤미나가 프로듀싱한 하나를 ‘K팝’으로 분류할 수는 없다. 곡의 언어는 당연히 일본어고, 안무와 음악 모두 일반적인 K팝 스타일과는 다르다. 이 점에서 하나는 아예 일본 현지화 그룹으로 데뷔한 K팝 걸그룹인 JYP의 니쥬, K팝 요소를 대거 차용한 일본 기획사 에이벡스의 XG와는 명백히 구분된다. 물론 그렇다고 하나가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J팝 걸그룹 스타일을 따라가는 것도 아니다. 일찍이 ‘미인’이라는 자신의 곡을 통해 외모 지상주의를 비판한 챤미나는 ‘노 노 걸즈’ 오디션에도 외모와 연령을 일절 보지 않겠다고 선언한 덕에 독특한 개성과 실력을 지닌 그룹이 탄생할 수 있었다. 즉, 하나는 일본 힙합과 J팝을 토대로, 챤미나가 한국과 일본에서 경험한 다양한 문화적 흐름을 접목한 흥미로운 시도라 할 수 있다.
챤미나와 하나는 어떤 면에서 ‘K팝 데몬 헌터스’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챤미나는 한일 혼혈이고, ‘K팝 데몬 헌터스’의 메기 강 감독이나 OST 담당자인 EJAE는 각각 한국계 캐나다인·한국계 미국인이다. 한국과 맺은 경험과 인연은 제각각이지만, 모두 가족의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국 문화에 친숙함을 느끼고 이를 창작 활동에 반영한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하겠다.
물론 재외 동포들이 현지에서 한국계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어온 역사는 길다. 2016년의 캐나다 시트콤 ‘김씨네 편의점’, 2020년의 영화 ‘미나리’, 2021년의 소설 ‘H마트에서 울다’가 북미 교포 사회의 경험과 정서를 담아내 커다란 호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의 트렌드는 한류의 인기를 발판으로, 재외 동포 창작자들이 한국 문화와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작품 활동을 펼친다는 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있다. 챤미나와 ‘K팝 데몬 헌터스’는 각각 일본 대중음악과 정통 미국 애니메이션을 바탕에 두면서, 동시에 한국 대중문화와 실시간으로 교류하며 새로운 문화 세계를 개척하고 있다.
K팝을 비롯한 한국 대중문화의 탄생에도 미국과 일본 경험을 지닌 교포들이 큰 역할을 했던 만큼, 지금의 흐름은 문화 생산의 방향이 거꾸로 움직이고 있음을 말해준다. 미국과 일본의 영향으로 한국 문화가 일신했듯이, 이제는 반대로 미국과 일본에서 한국 문화가 자극제가 되는 셈이다. 세계 곳곳에 뿌리내린 700만 재외 동포들이 앞으로도 이 흐름에서 주역을 맡을 것은 당연하다. ‘K’나 ‘한류’라는 수사를 굳이 붙이지 않고도, 챤미나와 같은 이들이 만들어내는 문화 콘텐츠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북창동보다 더 ‘원조’ 같았던 LA순두부… ‘BCD’ 창업자 이태로씨 별세
- BTS ‘아리랑’ 빌보드 200 또 1위…역대 7번째
- 홍서범·조갑경 ‘아들 외도’ 사과에도…前며느리 “난리나니 거짓 사과” 분노
- 1년 만에 두 배로 불어난 채권 혼합형 ETF…연금 계좌 투자 바람 타고 성장
- 궁지에 몰린 이란, ‘드론 사용법’ 과외 교사된 러시아
- 서점에서 놀자...‘텍스트 힙’ 즐기는 젊은이들 [더 한장]
- 줄 서서 먹는 미쉐린 간짜장을 집에서, 30일 멤버십 할인 [조멤 Pick]
- 이란전에도 글로벌 금융사 “美, 경기 침체 피한다”…낙관론 근거는?
- 평범한 사람은 무시하지만, 부자들이 아침에 꼭 하는 1위 습관
- 묵직한 안정감, 요즘 대세 ‘제로토크 퍼터’ 20만원대 조선몰 단독 특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