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고지가 저긴데” 수많은 내툰나잉은 멈출 수 없다

한국 사회가 다른 국가와 견줘 유난히 미얀마 민주주의 운동에 대해 지속해서 연대해 온 것은 군부의 억압과 민주화 시위라는 비슷한 역사적 배경도 있지만, 고 내툰나잉으로 대표되는 한국 내 미얀마 민주화 활동가들의 역할이 크다.
1969년 미얀마에서 태어나 1986년 양곤대에 들어간 고인은 1988년 8월8일에 있었던 ‘8888 민주항쟁’에 참여했다 부상을 입고 체포당했다. 이후 3개월 동안 복역한 뒤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다가 1994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입국하였다.
한국에서도 민주화운동을 이어간 그는 아웅산 수치의 정당인 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를 만들었고, 2000년 동료 활동가들과 함께 난민 신청하였다. 그리고 2003년에 난민으로 인정받았는데, 지금도 한국에서 난민 인정받기가 매우 어려운 점을 고려하면, 드문 사례였다. 난민 인정받기 전에도 그랬지만 인정받은 후에도 고인은 대우인터내셔널의 가스개발 사업을 포함한 한국 기업의 미얀마 투자 문제를 비롯하여 한국에서 미얀마와 관련된 활동 현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나는 2007년부터 시작된 ‘프리 버마’(Free Burma) 캠페인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무려 5년 동안 매우 화요일마다 진행된 이 캠페인은 한국 시민들에게 미얀마의 상황을 알리는 큰 역할을 하였다. 고인은 미얀마 문제에만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바쁜 활동 가운데서도 성공회대가 운영하는 아시아 시민사회 석사과정에 입학하여 아시아 지역의 다른 인권 이슈에도 관심을 가지려 애썼다. 한국에서 난민이자 이주노동자이자 활동가로 살아갔던 그는 한국 시민사회 여러 분야의 활동가들과 교류하면서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성품으로 한국 시민사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내가 속한 단체에서 모임을 할 때 맥주 몇 병이라도 꼭 챙겨서 오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를 기억하는 모두가 그를 좋아했고 또 신뢰했다.

미얀마 군부가 2008년에 발생한 사이클론 ‘나르기스’로 인한 피해와 국제사회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헌법을 만들고 유화책을 쓰면서 조금씩 미얀마 민주진영에도 공간이 열리기 시작했다. 군부가 상원의석을 모두 장악하는 헌법 아래서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자신한 군부는 2015년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도 참여하는 총선을 11월에 치른다고 발표했다. 역사적인 총선을 불과 2개월 앞둔 9월4일 고인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를 아끼는 모두가 큰 충격을 받았고, 경기 부천 석왕사에서 치러진 장례에서 한국과 미얀마 공동체는 함께 비통한 심정으로 그를 떠나보냈다.
그가 떠난 후, 그가 사랑했던 조국은 부침을 겪고 있다. 민간인을 살상하는 등의 전쟁 범죄를 지속하고 있는 미얀마 군부는 올해 11월 총선을 치른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겨우 국토의 3분의 1가량만 통제하고 있는 군부가 민족민주동맹과 같은 야당의 참여를 봉쇄하고 치르는 총선이 정당성을 획득할 리 없다. 또한 여러 소수민족 무장 세력과 민주진영 간의 통합적인 지도력이 부재한 상황도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미얀마에 대한 국내외 지원과 관심도 줄고 있다. 2021년 2월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자 전국 106개 단체가 모여 ‘미얀마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한국시민사회단체모임’을 결성한 이후 지속해서 활동해 오고 있다. 이런 지속적인 활동의 배경에는 고인이 활동하던 시절부터 축적되어 온 한국 시민사회와 미얀마 공동체 간 교류와 경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고인은 “고지가 저기인데 여기서 멈출 수 없다”는 글귀를 자신의 메신저 프로필에 항상 적어두었다. 수많은 내툰나잉들이 잡힐 것 같은 민주주의를 위해 여전히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군부에 맞서 민주주의를 이뤄내고 또 지난겨울 친위 쿠데타를 막아낸 한국에 대해 미얀마 공동체는 이재명 정부가 미얀마의 민주주의에 대해 확고한 지지를 보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고인이 떠난 지 10년이지만 여전히 그의 선한 미소를 기억하는 이들은 다시 미얀마에 민주주의의 봄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나현필/국제민주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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