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연극으로 풀어낸 아픈 역사 [광복 80주년-다시 평화]
산청 극단 큰들 - 일본 노동자 음악감상 단체와 교류
거제 극단 예도 - 손영목 소설 '거제도' 연극·뮤지컬로
평화는 언제나 저 멀리 있는 듯 손에 닿지 않는 꿈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아득한 거리를 기어이 건너려 한다. 바람이 스쳐 가는 들판에서, 북소리가 울려 퍼지는 마당에서, 노래와 연극 속에서 평화를 향한 작은 발걸음들이 이어지고 있다. 바로 우리 지역의 문화예술 단체들이 그 길을 걷고 있다.

◇산청 극단 큰들 '100인의 합창' = 산청군 산청읍 내수리는 7월에 내린 집중호우로 피해를 본 지역이다. 내수리에 극단 큰들 단원들이 사는 산청 마당극 마을이 있다. 폭우 때는 산사태로 길이 막힌 탓에 10분 거리를 1시간에 걸쳐서 가야했다. 마을로 가는 길이 끊긴 상황에서도 일본 히메지 지역의 음악감상단체 로온과 교류는 끊기지 않고 있었다. 큰들은 일본 히메지 지역 로온이라는 단체와 교류를 20년째 이어오고 있다. 로온은 음악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고 믿는 노동자 음악감상 협의회다.

합창 연습 때는 최명희 큰들 관리부장이 피아노 반주를 해준다. 최 부장은 2013년 히메지 로온이 연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공연을 봤다. 큰들이 130명 풍물놀이 공연을 올리듯, 히메지 로온에서도 일반 시민을 무대에 세우는 형식의 공연을 하고 있음에 공통점을 느꼈다. 공연 후 모인 자리에서 "한국에서도 일본에 합창 공연을 하러 오자"는 제안이 있었다. 그렇게 로온에서는 130명 풍물놀이를 하러 왔고, 한국 큰들에서는 합창 공연을 하러 일본으로 갔다.
큰들에서 풍물놀이를 지도하고 공연을 연습한 덕분에 일본 내에서 풍물놀이 동아리가 생겼다. 이 동아리에서 정기공연을 하는 등 30여 명 넘게 활동하고 있다. 최 부장은 "큰들과 로온은 전쟁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염원하고 있다"며 "살아가는 방식이, 인정과 배려를 기반으로 행동하고 실천하는 모습이 닮아있다"고 말했다. 언어와 국적은 다르지만 뜻과 추구하는 지향점, 살아가는 실천 방식이 같으니 자연스럽게 마음이 통했다. 최 부장은 특히 "로온은 일본 선조들이 한국에 저지른 역사적 잘못에 대해 사죄의 마음을 갖고 있었기에 오랫동안 교류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거제 극단 예도 〈거제도〉 = 거제포로수용소는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과 중공군 포로를 수용하던 곳이다. 인민군 15만 명, 중공군 포로 2만 명, 여성 포로와 의용군 3000명 등 최대 17만 3000명을 수용했다고 한다. 2006년 거제포로수용소를 소재로 한 소설 〈거제도〉1·2권이 나왔다. 거제 출신 손영목 작가가 8년간 집필 끝에 완성한 작품이다.


이 연출은 뮤지컬을 제작하면서 이렇게 되물었다. "공정과 정의는 무엇인가? 이전에 존재하던 가치들은 이제 모호해진 세상 아닌가? 그렇지만 우리라도 공정성을 가져야 하지 않나?" 그는 "한 명 한 명의 마음을 모아 평화로 일구는 것은 연극을 제작하는 과정과 같다고 생각한다"며 "작은 극단 내에서 평화로워야 사회도 평화로울 수 있다고 믿으며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극단 큰들과 거제 극단 예도가 각자의 방식대로 평화를 실천하며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모으고 있다. 그들의 발걸음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노래 한 소절과 무대 한 장면 속에서 묵묵히 이어져 왔다. 작은 울림이 모여 파동을 이루듯, 이들의 예술적 실천은 지역을 넘어 세상을 향한 평화의 메시지로 퍼져 나간다. 평화는 멀리 있는 이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만들어가는 삶의 태도임을 두 극단은 몸소 증명하고 있다.
/주성희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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