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엄한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서 인간은 저절로 겸손해져

경북도민일보 2025. 9. 3. 18:1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기포 목사의 미국 기행문⑥
미국지역서 본 나이아가라.

<여정의 격언 속을 걷다 : 보스턴에서 캐나다 나이아가라까지>

"여행은 낯선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이다."

(Rainer Maria Rilke)
 

아침 일찍 보스턴을 떠나 캐나다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8시간 긴 여정을 고속도로를 달렸다. 사위와 딸이 번갈아 운전해 줘서 편안하게 고속도로 주변을 감상할수 있었다.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솜사탕처럼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쾌한 아침의 길 위에 오르는 순간, 차창 밖으로 흘러드는 공기는 아주 신성하고 맑았다. 사위가 핸들을 잡은 차 안에는 딸이 준비해 온 과일과 빵, 그리고 갓 내린 커피 향이 은은히 배어 있었다. 보스턴에서 출발해 북쪽으로 향하는 길, 길게 뻗은 고속도로는 마치 우리 인생의 긴 여정처럼 펼쳐져 있었다.

고속도로 주변에는 끝없는 목장이 이어졌다. 소와 말들이 고요히 풀을 뜯으며, 세상과 아무상관 없이 평화롭게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조금 더 북쪽으로 갈수록 풍경은 달라졌다. 드넓던 초원은 점점 숲으로 이어지고, 울창한 나무들이 길 양쪽을 가득 채우며 마치 우리를 환영하는 듯 손을 흔들었다.

고속도로에는 캠핑카들이 잇따라 눈에 들어왔다. 가족과 함께, 혹은 부부가 함께, 혹은 혼자서라도, 인생의 여정을 자유롭게 떠나는 이들의 모습이 그 속에 담겨 있었다. 그들은 길 위에서 집을 꾸리고, 여행을 삶으로 삼는다. 그것은 "길 위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자유"를 증명하는 듯했다.

길 위에 흐르는 음악은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풍경과 사람, 그리고 마음을 묶어주는 또 하나의 "여행 동반자"이다. 비발디 <사계:봄>의 밝고 경쾌한 선율은 차 안에서 가족이 함께 떠나는 길의 설렘을 음악으로 채워주며 특히 현악의 가벼운 리듬이 "길 위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자유"를 잘 묘사해 준다.

베토벤의 전원이 흘러나오면, 차창 밖 초원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교향곡의 악보처럼 보인다. 고속도로 양옆으로 펼쳐진 초원과 숲, 그리고 아침 공기의 신선함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곡이다. 특히 1악장은 '평화로운 전원 풍경'을 표현하는데, 창밖 풍경과 딱 맞아떨어진다.

여행에서 찬송가가 흘러나오면, 단순한 드라이브가 아니라 "은혜의 순례길"로 바뀐다.

고속도로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휴게소가 없어 톨게이트를 빠져나와야만 화장실을 쓸 수 있고, 작은 햄버거 가게에서 잠시 쉬어야 하는 불편함조차도 이상하게 낭만적으로 다가왔다. 커피 한 잔, 간단한 빵 조각, 그리고 주유소의 짧은 정차가 오히려 여정의 맛을 깊게 해주었다.

문득, 존 스타인벡이 "여행할 때 내가 본 것들"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여행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세상에서 우리가 차지한 자리가 얼마나 작은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정말 그랬다. 광대한 초원과 숲, 끝없는 하늘을 달리며 나는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그러나 동시에 얼마나 큰 은혜를 누리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또 한 편, 월트 휘트먼의 시가 떠올랐다.

"나는 길 위에서 내 영혼을 찾는다."

길 위에서 흘러가는 풍경 속에서, 사위와 딸이 번갈아 운전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내 영혼을 찾았다. 그것은 가족과 함께하는 기쁨, 자연이 주는 위로,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나이아가라의 장엄함에 대한 기대였다.

차창 너머 펼쳐지는 길은 단순히 북쪽으로 이어진 아스팔트가 아니라, 인생의 의미를 새롭게 써내려가는 한 권의 시집 같았다.

 
캐나다(오른쪽)와 미국 양쪽의 나이아가라 폭포가 한 눈에 보이는 모습.

<치폴레의 점심 한 끼 : 낯선 음식 속에 담긴 문화의 향기>

고속도로를 달리다 늦은 점심시간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멕시코 음식점에 들렀다. 치폴레, 매콤하고 스모키한 향, 그리고 상큼한 야채와 고기가 함께 어우러져 조금 짠맛을 느끼게 하는 요리였다. 우리 입맛에선 조금 낯설지만, 이국의 자극은 새로운 미각의 문을 열었다. 멕시코 음식 치폴레는 맛과 향이 매콤하면서 자극적인 맛으로 다 먹지 못했다. 사위와 딸은 이 음식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음식 하나를 두고 잠시 문화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은 언제나 '내가 누구인가'를 다른 문화 속에서 깨닫게 하는 체험이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지만 그 음식의 맛과 빛깔 속에서 나는 이국만리에서 온 동양인이라는 문화의 장벽을 느낄 수 있었다.

 
웅장한 나이아가라 폭포.의 무지개.

<나이아가라 폭포 : 장엄한 물의 심장>

사위와 딸이 번갈아 잡은 핸들은 장장 8시간의 긴 여정을 뚫고 우리를 캐나다 국경까지 이끌었다. 차량당 8불의 통행료를 내고, 다소 긴장된 마음으로 마주한 국경 심사. 그러나 심사관의 첫마디는 의외였다.

"혹시 K드라마 속았수다 보셨습니까?"

그 유쾌한 농담 한마디에 긴장이 풀리고, 웃음과 함께 국경은 열렸다. 그 순간, 단지 나라의 문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도 활짝 열리는 듯했다.

호텔 20층에서 바라본 나이아가라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또 하나의 은하수 같았다. 밤마다 폭포 위에 터지는 불꽃놀이는 물과 불, 어둠과 빛이 어우러진 장엄한 오페라 같았다. 고요한 물의 심장을 두드리는 듯한 굉음 속에서, 불꽃은 찰나의 빛으로 인간의 환희와 찬사를 하늘에 새겨 올렸다.

낮에는 또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붉은색 캐나다 유람선은 아침 햇살에 반짝이며 물안개 속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그 배에는 감탄으로 젖은 사람들의 얼굴이 가득했다. 흠뻑 젖어 돌아온 그들의 표정은 말보다 더 깊은 설득력이 있었다. 마치 자연의 설교를 들은 제자들의 얼굴 같았다.

그 순간 내 마음에 떠오른 문장은 빅토르 위고의 말이었다.

"폭포 앞에서 인간은 위대해지지 않는다. 오직 겸손해질 뿐이다."

실제로 폭포 앞에서는 말이 침묵을 배운다. 감탄은 입술이 아니라 영혼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햇살에 젖은 폭포는 빛을 반사하며 살아있는 성경의 한 구절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많은 물소리와도 같은" 하나님의 음성이 이곳에서 들리는 듯했다. 자연은 그 자체로 거룩한 경전이었고, 나이아가라는 그 경전의 장엄한 서문이었다.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간다."

그러나 나이아가라 앞에 서면 이렇게 바꿔 말하고 싶다.

"영원히 흐르는 물이 우리를 이끌어 간다."

폭포는 단지 자연의 경이로움이 아니라 인간 영혼을 새롭게 세우는 심장박동과 같다. 떨어지는 물줄기마다, 부서지는 물보라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작은지, 그러나 동시에 얼마나 존귀한지를 깨닫게 된다.

폭포 앞에서는 침묵을 배운다. 감탄은 입술이 아니라 영혼으로부터 흘러나온다.

햇살에 젖은 폭포는 빛을 반사하며 자연이 만든 경전의 한 구절이 된다.

 
캐나다와 미국을 연결하는 교량.

<만다린 뷔페 그리고 축하의 순간>

저녁 무렵, 호텔 근처의 만다린 뷔페에 들어섰을 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작은 잔치 같았다. 바다 내음을 머금은 해산물, 구워내는 소리와 향으로 유혹하는 고기들, 색색의 과일과 신선한 채소들은 마치 오랜 여정을 끝내고 풍요로운 잔치에 초대된 듯한 기분이었다. 식탁 위에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기쁨과 웃음, 그리고 서로를 축하하는 따뜻한 마음이 함께 올려져 있었다.

특히 시니어와 생일자에게 베풀어진 작은 배려의 할인은, 그저 금액의 차감이 아니라 삶을 존중하는 은근한 환대처럼 다가왔다.

넓은 홀은 웃음으로 가득했고, 축하의 노랫소리와 잔이 부딪히는 소리는 하나의 교향곡처럼 흘렀다. 우리가 나누던 대화는 음식의 향기와 어우러져 순간을 더욱 소중하게 빛나게 했다. 식사를 마친 후, 옆에 자리한 코스트코를 거닐며 평범한 일상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카트에 담긴 물건들, 아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걷는 가족들, 서로를 챙겨주는 눈길 속에서 '풍요'라는 단어가 새롭게 다가왔다.

풍요는 화려한 축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식탁을 함께하는 웃음 속에서, 일상의 느린 걸음 속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처럼, "풍요는 많음에서 오지 않는다. 느림과 감사에서 시작된다."는 진리가, 바로 오늘의 저녁처럼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 퍼졌다.

우리 삶 속에 평범한 일상의'풍요'가 얼마나 큰 은총인지 이곳에서 다시 느낀다.

포항명성교회 담임목사

Copyright © 경북도민일보 | www.hidomin.com | 바른신문, 용기있는 지방언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