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초월하는 조화 [김민형의 여담]

한겨레 2025. 9. 3.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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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와 르네상스 음악에서 중심적인 ‘루트’는 아랍 문명의 악기 ‘우드’를 통해서 유럽에 전해졌다고 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김민형 | 영국 에든버러 국제수리과학연구소장

올해도 평창 대관령음악회에서 대중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흥미롭게도 음악제의 포괄적인 주제는 ‘인터하모니’, 의역하자면 ‘모든 경계를 초월하는 조화’여서, 내가 최근 들어 수학의 역사와 관련해서 탐구해온 주제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술감독 양성원 교수의 글에 따르면 ‘평창음악제는 분열과 대립을 넘어 음악이라는 보편적인 언어를 통해서 인류가 나누는 고귀한 대화를 선사하는 장이 되고자’ 한다. 그 때문에 나도 두 강연 중 하나를 ‘수학에서의 인터하모니’라는 제목으로 준비했다.

수학의 역사를 지역으로 분리해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요즘 역사 전문가들은 잘 안다. 물론 수학의 시공간 분포에는 굉장한 다양성이 있다. 세계가 아니라 한 대학 수학과에서 일하는 교수들도 여러 관심사를 가져서 때로는 서로 의사소통이 어렵기도 하다. 지난 몇 년간 연구소장을 하면서 여러 연구 제안서의 심사를 통해서 배운 중요한 사실이 있다면, 가치 있는 수학의 종류가 정말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점은 여러 지역의 수학사가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어서 영국 수학, 인도 수학, 중국 수학, 혹은 유럽 수학, 아프리카 수학, 이런 식의 경계를 긋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몇 년 전에 칼럼을 쓴 일이 있는 중세의 가장 중요한 수학자 중 하나인 알 비루니(973~1048)가 좋은 예이다. 그가 태어난 지역은 호라즘, 현재의 우즈베키스탄(우즈베크)이어서 그의 이야기를 우즈베크 수학사에 포함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그 당시 문화권을 고려해서 그를 페르시아 수학자로 간주하기도 하고 그가 쓴 학술서의 언어를 생각하면 그를 아랍 수학자라고 할 수도 있다. 또, 우즈베크가 옛 소련의 일부였을 당시에는 그의 탄생 1000주년 기념우표가 소련에서 발행되기도 했다.

이른바 ‘서방 수학’(western mathematics)이 중국에 전해진 역사에서 보통 마테오 리치와 쉬광치가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을 17세기 초에 한문으로 번역한 일을 중요시한다. 그러나 일생을 이집트에서 살았다고 전해지는 에우클레이데스의 수학이 어떤 의미에서 ‘서방’의 것인가? 그렇게 정하게 된 배경, 또, 고대 그리스가 서방으로 간주되기까지의 정치역사 역시 재미있는 주제이지만 여기서 다루지는 않겠다. ‘서방 세계(the West)’라는 개념이 도대체 어떻게 설정되었을까 라는 흥미로운 질문과 관계 깊다.

즉, 방대한 세계사를 편의상 나누어 공부하지만 함께 엮여서 진화하는 실제 세상 지역들이 정치적인 분류를 근사적으로라도 따라 줄 것이란 기대는 일종의 환상이다. 진지한 학자라면 과거 인물이나 수학을 현존하는 ‘국가’들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곧 도달하고, 그런 관점에서 수학의 세계사를 포괄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음악의 역사도 이와 유사한 세계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현재 부흥하는 연구의 대상이다. 예를 들자면 몇십 년 전만 해도 음악사 책 다수가 마치 ‘유럽 고전 음악’이라는 것이 8세기 그레고리 성가 같은 원천에서 독자적으로 유래한 것처럼 설명한다. 그렇지만 그레고리 성가는 어디서 왔는가 당연히 물을 수 있다. 그러면 유대 종교 음악의 영향이 곧 발견되는데, 유대 음악은 중동과 지중해 지역의 풍성한 음악 전통의 일부이기도 하다. 또 하나의 예로 중세 유럽의 가장 중요한 작곡가 중 하나였던 귀욤 드 마쇼 같은 인물의 작품에는 트루바두르 시와 음악의 영향이 녹여져 있다. 그런데 트루바두르 문화의 기원을 이슬람권 알-안달루스에서 찾는 것이 중세 역사학자들의 유력한 가설 중 하나이다. (중세 음악에서 필수적인 류트 같은 악기가 아랍권에서 유럽으로 왔다는 것은 이미 정설이다.) 이와 같은 사례들은 음악학자들이 유럽 음악을 따로 놓고 생각하는 오류를 포기하고 지중해 음악사, 혹은 세계음악사를 전체적으로 조명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학계의 최근 동향에도 불구하고 정작 수학자나 음악가는 상당히 보수적인 관점을 고수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특정한 문화의 ‘고급성’에 대한 클래식 음악가의 강한 집착이 19세기 유럽 학계의 문화사에 관한 오류와 엮여 있다는 인상이다. 이 관점에서 이번에 평창에서 시도한 세계적인 조화의 표현은 참으로 반갑고 시의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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