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삼성전자는 왜 위기 때 기업부설연구소에 돈을 퍼부었을까?

장기민 2025. 9. 3.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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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15일,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했다는 뉴스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그날 밤, 삼성전자 회장실에는 긴급 경영진 회의가 소집됐다. 대부분의 임원들은 "지금은 연구개발비를 줄여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결정은 달랐다. "지금이야말로 더 투자해야 할 때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무려 16조 원을 연구개발에 쏟아부었다. 반면, 같은 시기 핀란드의 노키아는 연구개발비를 30% 삭감했다. 4년 후, 삼성전자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1위에 올랐고, 노키아는 사업을 매각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기업의 몸을 해부하면 보이는 놀라운 진실이 있다.

기업해부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우연이 아니다. 지난 30년간 수백 개 기업을 분석하며 발견한 놀라운 사실 하나는 기업도 인체와 똑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체해부학이 인간의 몸을 순환계, 신경계, 근육계, 골격계, 면역계 등으로 분류하듯, 기업도 자금흐름(순환계), 정보시스템(신경계), 인적자원(근육계), 조직구조(골격계), 그리고 연구개발(면역계)등으로 구성해낸다. 기업해부학의 핵심적인 발견은 인체에서 면역계가 약해지면 감염으로 죽듯, 기업에서 연구개발이 약해지면 시장 변화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실제로 면역학의 원리가 기업경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인체의 면역계가 '적응면역'과 '선천면역'으로 나뉘듯, 기업의 연구개발도 '방어적 R&D'와 '공격적 R&D'로 구분된다. 인체의 선천면역이 외부 침입자를 1차로 차단하듯, 방어적 R&D는 기존 제품과 서비스의 경쟁력을 강화해 시장에서의 생존력을 높인다.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가 대표적 사례다. 1996년 설립 이후 엔진 효율성 개선, 안전성 강화, 품질 향상에 집중하며 현대차를 글로벌 톱5 브랜드로 끌어올렸다. 이는 인체에서 백혈구가 상처 부위를 보호하며 치유를 돕는 것과 같은 원리다.

더 흥미로운 것은 적응면역의 기업 적용이다. 인체의 적응면역이 한 번 침입한 병원체를 기억해 더 강력하게 대응하듯, 공격적 R&D는 완전히 새로운 위협과 기회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 구글 X연구소의 사례를 해부해보자. 성층권 인터넷 풍선(Project Loon), 자율주행차(Waymo), 생명연장 프로젝트(Calico) 등은 얼핏 황당해 보인다. 하지만 이는 인체의 기억세포가 미래의 감염에 대비하는 것과 같은 메커니즘이다. 현재의 검색·광고 사업이 한계에 부딪힐 미래를 대비해 새로운 '항체'를 미리 개발하는 것이다.

또한 기업해부학적 관점에서 면역 부전증에 걸린 가장 극명한 사례는 코닥과 후지필름의 대조다. 코닥은 1975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발명했지만, 기업 면역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새로운 기술을 '위협'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적'으로 여겼다. 인체로 치면 자가면역질환에 걸린 셈이다. 자신의 면역계가 자신의 세포를 공격해 결국 2012년 파산에 이르렀다. 반면 후지필름은 1980년대부터 "필름은 언젠가 사라질 기술"이라고 정확히 진단했다. 마치 숙련된 의사가 초기 증상으로 질병을 예측하듯, 시장 변화의 신호를 조기에 포착한 것이다. 그래서 화장품, 의료기기, 디스플레이 소재 등으로 면역계를 다각화했다. 결과적으로 필름회사에서 종합 화학·바이오 기업으로 성공적인 '신진대사'를 완료했다.

이처럼 중소기업에도 면역력 강화 처방전이 필요하다. "대기업이나 할 수 있는 얘기 아닌가요?"라는 반응이 많다. 하지만 기업해부학적 관점에서 보면, 면역력은 크기가 아니라 효율성의 문제다. 인체에서 면역력이 강한 사람이 반드시 덩치가 큰 것은 아니듯, 기업도 마찬가지다. 핵심은 면역 네트워크의 구축이다.

경기도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직원 50명)는 지역 대학과 산학협력을 통해 전기차 부품 기술을 개발했다. 이는 인체의 림프절이 각 지역에 분산되어 면역 정보를 공유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자체 연구진은 3명에 불과하지만, 대학의 박사급 연구진 10명과 네트워크를 구축해 대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면역력을 확보했다. 부산의 한 수산가공업체는 더욱 창의적인 면역 전략을 구사했다. 전통 젓갈 제조업체였지만, 식품영양학과와 협력해 기능성 발효식품을 개발했다. 기존 사업(젓갈)을 기반으로 새로운 면역력(기능성 식품 기술)을 키운 것이다. 이제 일본 프리미엄 시장에서 연매출 50억을 올리고 있다.

기업해부학 연구 결과, 건강한 기업 면역계는 세 가지 원칙을 따른다.

첫째, 순환계와의 연계성이다. 인체에서 면역세포가 혈액을 통해 전신에 퍼지듯, 연구개발 성과는 반드시 사업부와 연결되어야 한다. 3M이 연구진의 근무시간 15%를 자유연구에 할애하면서도 상용화 성공률이 높은 이유다.

둘째, 신경계와의 소통이다. 뇌가 면역반응을 조절하듯, 경영진이 R&D의 방향을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아마존이 매출의 12%를 R&D에 투자하면서도 '고객 중심'이라는 일관된 방향성을 유지하는 것이 그 예다.

셋째, 외부 환경과의 개방성이다. 면역계가 외부 정보를 지속적으로 학습하듯, 연구개발도 외부와의 협업을 통해 진화해야 한다. LG화학이 전 세계 5개국에 연구소를 설치하고 현지 대학·기업과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이 대표적이다.

기업해부학이 밝혀낸 진실은 명확하다. 연구개발은 비용이 아니라 생존 본능이다. 인체가 면역력 없이는 살 수 없듯, 기업도 연구개발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다만 그 방식은 기업의 체질과 환경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미래는 더욱 불확실해질 것이다. 그럴수록 기업의 면역계인 연구개발의 중요성은 커진다. 당신의 기업 면역계는 건강한 상태인지 지금이 바로 점검해 볼 때다.

장기민 한국외대 지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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