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AI가 쓴 것 같은 '폭군의 셰프'의 글로벌 빅히트 레시피

박진규 칼럼니스트 2025. 9. 3.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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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불시착’과 같은 듯 다른 ‘폭군의 셰프’, 어떻게 시청자 사로잡았나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2019년 tvN 글로벌 히트작 <사랑의 불시착>은 재벌가의 딸 윤세리(손예진)가 북한이라는 미지의 땅에 불시착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2025년 tvN의 글로벌 히트작이 된 <폭군의 쉐프>의 여주인공 미슐랭 셰프 연지영(임윤아)은 조선시대의 고서 망운록을 개기일식에 펼쳤다가 조선시대에 불시착한다. 이후의 이야기는 <사랑의 불시착>과 비슷한 듯 다르게 흘러간다.

<사랑의 불시착>은 윤세리가 북한의 엘리트 리정혁(현빈)을 만나 서로 아웅다웅하며 사랑의 감정이 쌓여가는 전개로 흘러간다. 그 사이 간간이 북한과 남한의 차이를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는 코믹한 장면들이 양념장처럼 덧발라진다.

<폭군의 셰프> 또한 조선의 귀녀(귀여운 여인이 아니라 귀신이다)가 된 연지영과 조선의 폭군 연희군 이헌(이채민)이 서로 아웅다웅하면서 코믹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당연히 여기에는 <사랑의 불시착>처럼 대한민국과 조선의 차이에서 오는 재미도 있다. 셰프가 조선 사람들에게 세포로 들리거나 하는 말장난 장면들 말이다. 하지만 <사랑의 불시착>과 달리 <폭군의 셰프>에는 많은 곁가지들이 덧붙는다.

일단 연지영과 이헌의 로맨스보다 오히려 연지영의 요리 실력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현란하게 펼쳐진다. 적절하다기보다 말 그대로 과할 정도로 현란하다. 특히 연지영이 수비드 고기 요리를 만드는 장면이나 그 요리를 먹고 감탄하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장면은 드라마보다 <요리왕비룡>이나 <신의 물방울> 같은 만화책이 떠오를 정도다.

또한 연지영은 나름 역사에도 지식이 있는 인물이라 폭군 연희군에 대해서도 지식이 꽤 방대하다. 그렇기에 연지영은 나름 조선시대에 뚝 떨어졌지만, 그 시대를 읽는 통찰력 있는 주인공으로 금방 빠릿빠릿하게 살아간다. 그 때문에 드라마는 어느 순간 <사랑의 불시착>에서 <대장금>으로 예능 <흑백요리사>에서, <요리왕비룡> 같은 요리 만화책에서 <신의 물방울>류의 미식 만화책으로 넘어갔다가 <재벌집 막내아들>의 코스를 돌아 다시 로맨스의 결로 돌아가는 식이다.

AI가 발달하면서 드라마 대본 역시 AI가 쓸지 모르겠다는 푸념이 나온 지 꽤 한참이다. 그리고 <폭군의 셰프>는 모든 과거 히트작의 성공 요소를 AI로 돌린 것 같은 전개를 보여준다. 그런데 의외로 이 이야기의 흐름이 허술하지는 않다. 마지 잘 배합된 레시피처럼 각기 다른 요소들을 섞어내서, 혹은 과거 성공한 드라마의 영혼을 갈아서 만든 조미료를 뿌려 알고 보면 흔한 서사의 패턴에 감칠맛을 주는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다만 <폭군의 셰프>는 시청자들이 드라마에서 원래 기대하던 작가의 필력으로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그런 류의 드라마는 아니다. <폭군의 셰프>는 잽처럼 툭툭 치는 유머 장면의 깨알 재미는 있지만, 뭔가 가슴을 턱 후려치는 대사는 없다. 다만 그런 단점을 <폭군의 셰프>는 영리하게도 화려한 눈요기로 대체한다. 연지영이 주변의 재료를 이용한 멋진 요리 한 그릇을 뚝딱 만들어내는 장면은 말로만 풀어내면 그냥 레시피 읽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폭군의 셰프>는 마치 화려한 요리 다큐의 한 장면처럼 눈앞에 펼쳐보여 준다. 과할 정도로 요리 관련 장면들이 현란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즉 마음은 움직이지 않지만 위장은 움직이고, 눈물은 고이지 않아도 침이 고이는 전개인 것이다.

또한 <폭군의 셰프>는 배우의 심금을 울리는 깊이 있는 명연기를 기대하는 드라마가 아니다. 오히려 배우가 진지하면, 이 드라마의 가벼운 그릇에 금이 가기 십상이다. 대신 성격이 다른 장면마다 그에 어울리는 그림이 되어 활력을 주는 배우의 센스가 더 중요한 드라마다. 그런 면에서 이 드라마의 주인공 임윤아나 이채민은 꽤 탁월한 캐스팅으로 보인다.

물론 <폭군의 셰프>가 향후 어느 정도로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가늠할 수 없다. 드라마는 초반의 임팩트도 중요하지만, 그 임팩트를 끌고 가는 지구력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있다. <폭군의 셰프>는 2020년대 후반의 한국 드라마는 더는 작가의 놀음이 아닌 스토리 컬처 브레인들의 기획과 조합 놀음이라는 걸 눈에 띄게 보여주는 시작점이 될 확률이 높아 보인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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