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전체가 기술에 집착한다 싶을 정도" 공대에 미친 중국을 취재하다
[인터뷰] KBS '인재전쟁' 정용재 PD "중국은 창업 실패 이력이 공무원 시험 가산점"
'2% 시청률'로 위로받다 유튜브에서 흥행하고 휴가 중 '뉴스9' 출연까지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전국민이 다 봐야 함” “국무회의 때 틀어놓고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들 독후감 10장씩 쓰게 했으면 좋겠다” “수신료가 아깝지 않은 명품 다큐! KBS 최고다”
지난 7월 방영된 KBS '다큐인사이트-인재전쟁'이 달이 두 번 바뀐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공대에 미친 중국', '의대에 미친 한국' 두 회차로 구성된 다큐는 각국의 공대·의대 쏠림 현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과학기술 인재들이 떠나며 경쟁에서 밀려나는 한국 현실을 조명했다. 유튜브 등 각종 SNS는 물론 다수 언론에서 호평이 쏟아졌고, KBS는 TV·라디오 특집토론을 편성했다. 지난달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선 이재명 대통령이 “이공계 우수 인재들에게 한국이 매력적이지 않다는 뼈아픈 지적을 받고 있다”라며 “연구생태계 혁신과 과학기술 인재 양성 방안을 위한 지혜를 모아달라”고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중국편을 제작한 정용재 PD는 첫 방송 직후까지만 해도 '2% 시청률'로 위로 받는 처지였다. 그러다 폭발적으로 늘어가는 유튜브 영상 조회 수를 보면서, 휴가 중 '9시뉴스 출연하라'는 회사 연락을 받으면서, '큰 일' 냈다는 걸 깨달았다. 이번 다큐에 대한 관심은 정 PD에게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그도 한때 유명해지는 것이 지상 목표인 '시청률에 미친 PD'였던 때가 있었는데 말이다. 3인의 제작진(정용재·이이백·신은주) 중 정용재 PD를 지난 8월27일 서울 여의도 KBS 인근에서 만났다. 인터뷰 내용은 아래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여기저기서 연락 받았을 텐데, 특히 '대중에게 관심 받고 있다'라고 체감한 때가 있나.
“'다큐인사이트' 시청률이 3~4% 정도인데, '인재전쟁' 시청률은 2% 초반이었다. 다음날 선배들에게 위로 받고 '중요한 메시지 던졌으니 보람 있는 일 했다' 생각했는데, 유튜브 조회수가 잘 나왔고 댓글이 엄청 달렸다. 주말에 한 시간에 한 번씩 새로고침하며 댓글도 '최신순'으로 읽다가 유튜브에 검색해보니 맨 위에 '슈카월드' 라이브 방송이 떴다. 우리 방송을 소개하고 있어서, 윗선에서 홍보해달라고 했나 싶어 부장, 국장, '이슈 Pick, 쌤과 함께'(슈카 출연)팀 선배한테도 물어봤는데 아니었다.
그 뒤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짤'이 돌아다니고, 평소에 다큐를 안 보는 친구들에게서도 연락을 많이 받았다. '(회사 임원이) 1300명 카톡방에 다큐 영상 공유하면서 꼭 보라고 했다', '교육청에서 교사분들 다 보라고 했다', '점심시간에 요즘 그 얘기 밖에 안 한다' 이런 얘기를 들었다. 그 다음에 제가 해외로 휴가를 갔는데 회사에서 '9시 뉴스 출연해라' 연락이 와서 '이거 큰일 났구나' 실감했다.”

-합법적으로 허가 받아 중국을 취재한 게 2015년 KBS '슈퍼차이나' 이후 10년 만이라고. 처음 현지 취재한다 했을 때 내부 반응이 어땠나.
“모두 시의적절한 기회라 했고 다만 '그게 되겠어?'란 얘기를 많이 들었다. 회사에 중국 특파원을 했던 선배들도 많은데 취재가 잘 안 됐다. (중국은) 워낙 방어적이고 폐쇄적이고, 미·중 갈등 속에서 첨단 기술이 국가 안보와도 직결될 수 있다며 잘 안 보여주려고 했다. 실제로 '항저우 육룡'이라는 량원펑(딥시크 창업자)도 실존 인물 맞나 싶을 정도로 자취를 보이지 않고 중국 국영 CCTV와도 인터뷰를 안 한다. 그나마 협조적이었던 유니트리에서도 대표는 절대 못 만난다고 했다. 그래서 약간의 기자 정신으로 '뻗치기'(무작정 기다리기)를 했다.”
-현장에서 추가로 섭외한 이들이 많았나.
“이영백 교수(전 한국물리학회장·현 중국 푸단대 물리학과 석좌교수)나 유니트리 대표도 있고. 촬영 전날 섭외된 고등학교 측에서 못하겠다고 해서 주중 한국대사관에 연락을 했더니 부랴부랴 어떻게든 찾아주셨다. 닝보시에 있는 인저우고등학교 섭외가 다행히 됐고 학교 측에서 협조적이어서 학생 인터뷰도 했다.”

-취재하는 동안 KBS 소속이라 도움된 일도 있나.
“중국과 교류하며 소위 '��시'를 잘 유지해온 선배들 통해 대사관과 연결됐고, 기획안도 설명할 수 있었다. 2015년 '슈퍼차이나'를 당시 중국 내에서도 인상 깊게 봤다는 평이 있어서 'KBS 다큐인사이트'가 'KBS 스페셜' 후속작이니 우리가 그 제작진이고 걱정 말라, 서로 배울 건 배워야 동아시아가 발전하는 것 아니냐면서 섭외해 그나마 좀 (성사)된 것이었다.
제가 이번에 느낀 것은, 중국특파원(PD특파원)이 없는 건 말이 안 된다. 누군가 '��시'를 유지하면서 한국에서 촬영하려면 연결도 시켜주고, 고량주도 한 병하고 이런 게 필요하다. 기자 특파원이 있지만 PD와 일하는 방식도, 사용하는 장비도 다르다. 중국에서 우리 공영방송이 다큐 촬영을 10년 만에 한 번 정도로 했다는 건 반성해야 한다.”
-중국에서 가정집, 학교, 기업 등 다양한 집단을 접했다. 예상과 가장 달랐던 점은.
“중국은 처음 가봤는데 한국 미디어에서 본 이미지와 너무 달랐다. 제가 그런 도시만 가서 그렇겠지만 이름을 들어본 주요 도시들은 굉장히 깔끔하다. 거의 모든 지역에 전기차가 돌아다니고 오토바이도 소리가 하나도 안 난다. 다 전기 오토바이였다. 결제는 다 QR코드로 하더라. 나라 전체가 기술에 집착한다 싶을 정도였다.”

-다큐에서 한국의 의대, 중국의 공대 지향이 대비되는 부분을 통해 과학기술 인재가 성장하기 어려운 우리 현실을 조명했다. 한편으로 좋은 일자리를 향한 교육전쟁 측면에선 맞닿아 있는 것 같았다.
“달라 보이지만 같다. 여기는 의대, 저기는 공대인데 결국 어떤 생존을 위한 기술 획득의 장이 된 것 같았다.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면서 기술력에서 뒤처지면 국가 자체가 소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 속에 대학 자체의 역할이 없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점은, 우리나라는 안정을 추구하려는 게 강한 것 같다. 2부 예고편에서 한 중학생이 의대 가려는 이유로 '롯데월드 보이는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고 했는데, '얘야 롯데타워 보이는 곳에 살고 싶으면 공대를 가야지'라는 댓글이 인상적이었다. 그 정도의 부를 얻으려면, 대물림 없이 자수성가하려면 창업 롤모델이 훨씬 많은데, 일확천금 벌고 이름 날리는 게 목표가 아닌 거다. 중국 아이들을 봤을 땐 눈빛이 좀 다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대치동 학원가만 봐도 아이들 눈이 풀려 있다. 힘드니까. 그런데 중국 명문대 같은 데 가면 아이들이 지쳐 있다는 느낌이 안 들고, '내가 제2의 량원펑이 될 거야. 제2의 마윈이 될 거야' 야망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게 진정성이 있다.”
-한국에서도 한때 '스타트업 붐'이 있었는데 왜 다른 결과로 이어졌을까.
“우리나라에선 실패했을 경우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내 돈을 투자해 다 잃어서 평생 갚는 정도가 아니더라도 인생을 거는 거다. 제 친구들도 창업해서 90%는 안 됐다. 그럼 이런 걱정을 한다. 회사 매각도 쉽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니 쟤는 어디 대기업에서 팀장 직급을 달았네, 쟤는 의사가 돼서 전문의가 됐네, 쟤는 변호사 돼서 결혼해서 잘 살고 있네. 이 격차를 따라잡을 수가 없는 상황이 된다. 청춘의 시간을 어떤 방식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다. 그런데 중국은 창업을 워낙 장려하기 때문에, 심지어 창업했다 실패한 이력이 있으면 공무원 시험 볼 때 가산점이 된다고 한다. 투자에서 실패한 경험을 본다고 한다.”

-'어떻게' 실패했는지 인정 받는 건가.
“왜 실패한 것 같아? 거기서 얻은 성과가 뭐야? 그러면 그걸 어떻게 지금 아이템에 녹여낼 수 있어? 워낙 벤처 자본이 크니까 괜찮은 것 같다 싶으면 (투자금) 주고. 다큐 초반에 나온 저장대학교 친구도 학교에서 이미 투자를 받고 다른 곳에서 1억 받고 학교 선배에게 2억 받으러 갔다. 공공기관에 무언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고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일이라면 2~3억 정도 투자받는 건 일도 아닌 것이다.”
-단순히 어느 분야에 투자를 확대하는 걸 넘어 다각도의 후속 대응이 필요해보인다. 정부나 관계 기관으로부터 관련 논의를 함께 하자고 연락 받기도 하나.
“토론자로 초청한 경우는 있고, 특히 중국에 제가 갔다 왔으니까 첨단 산업 분야 같은 것들을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 알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웬만하면 다 하려고 하고 있다.”

-최근 다큐에서 AI로 만든 화면이 꽤 보인다. AI로 제작비 절감하자는 식의 이야기가 많은데.
“근 한 달 AI 관련 일을 많이 하는데, 드라마나 예능 쪽에서는 요긴하게 쓰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특히 드라마 같은 경우 돈을 많이 들여서 찍는데 한 컷 정도 들어가는 샷이 있다. 가성비가 나오는 AI 작업들이 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는 'document', 기록물이지 않나. 실제 그림과 컴퓨터가 만들어낸 그림은 비슷해 보이지만 아예 다른 종류다. 이번 인재전쟁도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이렇게 화제가 된 것에는 그림이 주는 울림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표정과, 어머니의 미소와, 왕멍추 제로제로로보틱스 창업자가 '(메이드 인 차이나가 아닌) 인벤티드 인 차이나(Invented in China)'를 말할 때의 자신감 같은 것들이 비주얼적으로 충격을 줬다. 영상 매체는 어떤 감성적인 울림을 주는 것이 본령이라 생각하는데, AI 그림은 어떻게 해도 그 울림을 줄 수 없다.”
-기자간담회 때 '유명한 작품 만들려고 열심히 한다는 마음이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입사 초기 '다큐인사이트-시청률에 미친 PD들'(2020년)에서 유튜버에 도전했던 때도 있는데.
“그때는 신입사원이었고, 방송 나가면 화제가 되고 점심시간에 제 프로그램 얘기하는 작품을 하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제가 4~5년차에 '추적60분'으로 입봉했다. 열심히 만들었지만 '차마고도'(2007년) 같은 영향력과 파급력은 아무리 잘 만들어도 없겠다고 생각했다. 계속 해도 안 되니 안 되나보다 하고 욕심을 버렸다. 인정하자, 이미 지상파는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들었고, 신혼부부가 TV 안 사기도 하는 시대에서 파급력을 기대하는 게 욕심이고, 그래도 공영방송이니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소수자 다큐 만들고, '다큐 3일'처럼 보통 사람들 이야기 만들면 누군가 위로 받으면 됐지 하고. 게다가 특히 (수신료) 분리징수니 뭐니 해서….”

-TV라는 플랫폼 자체에 대한 고민도 있을 것 같다.
“레거시 미디어는 소위 온라인 매체를 주적으로 여기고, '시청률에 미친 PD'도 그런 대결 구도였다. 그 자체가 이제 통용되지 않는다. '인재전쟁'은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X가 없었다면 본방송하고 휘발됐을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플랫폼이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보고, 피드백이 오니 긴급토론도 편성하고 제작 PD가 뉴스·라디오 출연하고 바이럴이 가능했다. 이런 변화한 미디어 환경이 지상파 PD로서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거의 죽어가던, 시청률 안 나와서 위로 받던 프로그램을 살려주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달하게 해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이걸 최대한 잘 이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다큐멘터리를 제대로 하는 방송사가 몇 개 안 남았는데, 저희는 수신료를 받기 때문에 상업성에 구애받지 않고 국가적 어젠다 세팅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느꼈다. (KBS 등 지상파 방송사의) 플랫폼 사업자로서의 시장은 위축됐다. 반대로 콘텐츠 제작자의 역할은 온라인 미디어 환경에서 승수 효과가 있다. 무력감에서 벗어나서, 하면 된다라는 걸 느낀 지난 한두 달이었다.”
-기존 제작진이 각각 다른 부서로 흩어졌다. 후속작이 나올 수 있나.
“저는 계속 기획을 하고 있다. '역사스페셜' 11월 방송 마치고 중국 관련 아이템을 하려 한다. 저만의 생각이다. 이렇게 큰 관심을 받고 KBS가 어젠다 세팅을 하고 있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됐는데 후속편 없이 끊는 건 일종의 직무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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