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위협, 흔들리는 한국 첨단산업 [로버트 앳킨슨]
![이진수가 표시된 컴퓨터 화면 위에 놓인 돋보기를 통해 중국 지도가 보이고 있다. [로이터]](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03/ned/20250903153050361uvnp.jpg)

한국은 조선, 가전, 반도체, 자동차, 화학, 철강, 배터리 등 주요 첨단산업에서 중국과 주도권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는 동안 한국 기업들은 그 자리를 내주고 있다. 한국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강력한 국내 정책이 필요하다. 과거 시행했던 투자세액공제를 부활시키고, 미흡한 연구개발(R&D) 세액공제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 정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동맹국들과 협력하지 않는다면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어렵다. 특히 불공정하고 중상주의적 방식으로 생산된 중국의 첨단 제품 수입을 제한하고 있는 미국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첨단산업은 다른 산업과 작동 방식이 다르다. 규모가 곧 경쟁력이다. 세계 시장 점유율이 클수록 비용 구조는 낮아지고, 미래 투자를 위한 자본도 늘어난다. 반대로 점유율을 잃으면 고정비 부담은 그대로 남아 비용이 증가하고, 투자 여력은 줄며 경쟁력은 약화된다.
혁신적인 돌파구가 없으면 급격한 축소나 몰락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한국의 디스플레이 산업은 그 단적인 사례다. 디스플레이는 오늘날 글로벌 디지털 경제의 핵심 인터페이스다. TV, 컴퓨터, 스마트폰을 비롯해 자동차, 의료기기, 냉장고 등 다양한 제품에 쓰인다. 국방에서도 전투기 조종석의 헤드업 디스플레이와 해군 함정의 전투 정보 시스템 같은 장비에 필수적이다. 글로벌 디스플레이 시장은 2024년 1820억 달러 규모에서 2034년에는 3,720억 달러로 두 배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2004년 세계 LCD 생산에서 중국의 점유율은 0%였지만 현재는 72%에 이르렀다. OLED 역시 2014년 1%에서 2024년 초 50% 이상으로 급등해 한국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중국은 이 산업을 국가 전략의 핵심으로 보고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했다. 그 결과 중국 기업들은 인위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시장을 잠식했다. 반면 삼성과 LG처럼 시장 원리에 따라 수익을 내야 하는 기업들은 불리한 위치에 놓였다. LCD 분야에서 일본 기업들은 2010년 전후로 투자를 중단했고, 많은 외국 기업들은 철수하거나 아예 진입하지 못했다. BOE, TCL, 티안마, 비저녹스 같은 중국 업체들은 후발주자였지만 빠르게 선두 그룹을 따라잡았다.
오늘날 중국 기업들은 단순히 가격 경쟁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TCL의 디스플레이 자회사는 2023년 CES에서 ‘올해의 미니LED 디스플레이’ 혁신상을 수상했다. BOE는 세계에서 가장 정교하고 자동화된 공장을 세우며 최근 6년간 세계 특허 출원 상위 10위권에 올랐다. 그러나 이들의 성장은 불공정한 지원에 크게 의존한다. BOE는 2010년부터 2021년까지 약 40억 달러의 보조금을 받았고, 2023년에는 5억 3200만 달러를 지원받아 그 해 순이익 3억5000만 달러를 웃돌았다. 세금 감면, 저금리 자본, 무상 또는 저가 토지와 공공요금, 외국 인재 영입 지원 등 각종 혜택도 뒤따랐다. 일부 지방정부는 신규 공장 건설비용의 85%를 부담하기도 했다.
중국은 지식재산권 탈취로도 이익을 누렸다. 2023년 한국 대법원은 디스플레이 부품업체 톱텍의 임직원들이 BOE에 핵심 기술을 유출한 사건을 유죄로 확정했다. 2024년에는 전직 삼성 엔지니어가 2450만 달러 상당의 기술을 넘긴 혐의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도 중국산 일부 디스플레이가 삼성디스플레이의 AMOLED 특허를 침해했다고 판정했다. 최근에는 BOE가 삼성의 영업비밀을 도용해 OLED 제품을 만들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렇다면 삼성 같은 기업들은 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지 않을까. WTO는 보조금과 지식재산권 침해 사건에서 실적이 부진하다. 판정에 수년이 걸리고, 승소하더라도 집행력이 약해 중국이 계속 규칙을 위반할 수 있다. 현재의 글로벌 무역 질서에서는 중국의 ‘혁신 중상주의’에 제재를 가할 수단이 사실상 없다.
이런 현실에서 한국의 이재명 정부가 취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우선 국내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과거 효과적이었던 투자세액공제를 부활시키고, OECD 평균에 크게 못 미치는 R&D 세액공제를 대폭 늘려야 한다. 그러나 국내 조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중국의 압도적인 산업력에 대응하려면 동맹국과의 협력이 불가피하다. 미국은 이미 관세법 337조를 통해 ITC에 지식재산 침해 제품의 수입을 막을 수 있는 제도를 갖추고 있으며, 삼성은 이를 활용해 BOE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한국도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해 유사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결국 지속적인 효과는 국제 공조에서 나온다. 미국, 한국, 유럽연합, 일본 등 주요 민주 국가들이 함께 행동해 충분한 시장 규모를 형성해야만 규칙을 지키는 기업들이 생존할 수 있다. 2026년 프랑스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는 이러한 연대를 구축할 결정적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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