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산책] 강현국 시인, 시집 ‘경과보고’ 출간…“시가 나를 써왔다”

김창원 기자 2025. 9. 3.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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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등단 후 반세기…시 전문지 ‘시와반시’ 창간해 지역 문학 기반 다져
“시란 결국 나를 살아내는 길”…‘맨발’과 ‘그림자’로 성찰 담은 여정 기록
▲ 강현국 시인.

"내가 시를 쓴 것이 아니라, 시가 나를 써왔다." 등단 50주년을 맞은 강현국 시인이 최근 시집 '경과보고'를 출간했다.

1976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반세기 동안 시를 쓰고, 시를 만들고, 시를 지켜왔다. 시 전문 계간지 '시와반시'를 1992년 창간해 지금껏 33년 넘게 발간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의 문학에 대한 신념과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강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자신의 문학 인생을 정리하고 성찰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감개무량하고, 착잡하고, 아득한 마음입니다." 등단 50주년을 맞은 소회를 묻자 그는 짧은 말 속에 긴 시간의 결을 담았다.

"반세기라는 시간 동안 시를 써왔다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여전히 제대로 쓰지 못했다는 자책도 큽니다. 사실 등단 50주년을 맞이하는 작가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지만 숫자의 의미보다는 이 길을 묵묵히 걸어올 수 있었던 몰입의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번 시집의 제목인 '경과보고'는 다소 이례적으로 들린다. 시집이라기보다 행정문서의 제목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그는 "오히려 꾸밈없는 어감이 주는 담백함, 직접성과 정직함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번 시집은 저의 문학 인생에 대한 간략한 '보고서'의 성격이기 때문이지요. 독자에게, 혹은 저 자신에게,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보고하는 형식이기를 바랐습니다"고 설명했다.

반세기를 시와 함께 걸어온 강현국 시인을 만나 그의 시와 삶, 그리고 문학관을 들어봤다.
 
▲ 왼쪽부터 시집 '경과보고'와 시 전문지 '시와반시'.

-등단 50주년을 맞은 소감이 궁금합니다.

△감개무량하고, 착잡하고, 한편으로는 없는 것으로 가득한 느낌입니다. 오십 년이란 시간은 짧지 않습니다. 그 시간 동안 시를 써왔다는 것이 자랑스러우면서도, 무능과 게으름이 마음에 걸립니다. 등단 50주년이라는 숫자보다 중요한 건, 시라는 한 길을 묵묵히 걸어온 몰입의 과정이 소중하다 스스로 위로하고 있습니다.

-이를 기념해 시집 '경과보고'를 출간했습니다. 제목이 다소 이례적으로 느껴집니다.

△많은 분들이 그런 말을 하더군요. '시집 제목치고는 너무 관료적이다'라든가…. 저는 오히려 시집 이름 같지 않은 낯익지 않은 제목의 파격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시집은 제 문학 여정의 끝자락에 해당할 것이어서 독자에게, 그리고 제 자신에게 문학적 발자취를 보고하는 형식을 취하고 싶었습니다. '경과보고'라는 제목이 걸맞는다는 판단입니다.

-시집을 보면 '맨발'과 '그림자'라는 이미지가 자주 등장합니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맨발'은 융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self)', 불가에서 말하는 '참된 나'의 표상이고, '그림자'는 개성화 혹은 자기실현을 방해하는 내적 트라우마입니다. 그림자의 출처가 이디일까 곰곰 생각해 보니, 아버지로부터 온 불안과 공포, 어머니로 말미암은 연민과 결핍으로부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가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면 그림자를 벗어난 맨발이어야 마땅하겠지요.

-강 시인께서는 1992년 시 전문지 '시와반시'를 창간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서울 중심의 문단 구조가 뚜렷했는데요.

△그렇습니다. 당시는 지역에서 글을 써도 서울과 손닿지 않으면 발표 자체가 어려운 구조였지요. 저 역시 그런 문단 환꼉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발 디딘 땅은 삶의 중심이어야 하고 자신의 문학적 상상력은 세계의 한가운데여야 합니다. 문화의 종속은 존재의 종속입니다. '왜 서울은 중심이고 대구는 변두리이어야 하는가? 수치이고 자존심 문제이다.' 등과 같은 젊은 날의 오기와 갈증이 『시와반시』 창간의 원동력이었습니다. 근대문학잡지 100년 역사상 지역을 거점으로 한 본격 시 전문지는 처음이었지요.

-'시와반시'는 지금도 까다로운 등단 절차로 유명합니다. 시를 고르는 기준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저급한 언어의 유입을 철저히 경계해왔습니다. 감(感)이 중요한 것이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절실하되 낯설고, 낯설되 뜨겁고, 뜨겁되 신선한 시 너머의 시'가 평가의 기준이라 에둘러 말할 수는 있겠습니다. 독창성과 진정성이 있는 올곧은 신인을 찾기 위해 늘 시의 바깥에서 시를 바라보려 노력해왔습니다. 더러 시행착오도 없지 않았지만요"

-지역문학의 현실에 대해서도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오랜 시간 대구에서 활동해오셨는데요.

△지역문학, 혹은 지역문단 환경은 열악하지요. 돈도, 사람도, 관심도 서울 중심이니까요. 무엇보다 문학인들 스스로, 자신도 모르게 몸에 익은 '서울 콤플렉스'는 역겨울 지경입니다. 그러나 좋은 문학, 좋은 시인은 고독을 먹고 사니까 큰 문제없습니다.
 
▲ 강현국 시인.

-'시와반시'가 추구하는 시학의 방향이 궁금합니다.

△'해체 시학'으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합니다. 해체의 대상이 언어와 전통일 땐 모더니즘 시학으로, 지역과 진영일 땐 변방시학으로, 문학적 근본주의일 땐 실용시학으로 문학의 지평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강 시인에게 시란 무엇입니까? 지금 이 시점에서 시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닙니까?

△'경과보고'의 마지막 구절, '여기까지 온 나는 마침내 깨닫게 되었다. / 내가 태어나는 게 아니라 태어나서 내가 되는 것이라는 사실과 함께 / 내가 시를 쓴 것이 아니라 시가 나를 썼다는 사실을'에서 보는 바처럼 시를 통해 저 자신이 되었습니다. 시 속에 제가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내 속에서 스스로 솟아나려는 것 바로 그것을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헤르만 헷세의 고백입니다. 시를 통해 그토록 어려운 '나를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요?

인터뷰를 마치며 강현국 시인의 시적 여정이 단지 개인의 고백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고, 언어의 힘을 믿으며, 지역 문학의 활성화를 위해 묵묵히 일해 왔다. 등단 50년을 돌아본 '경과보고'는 시적 반성이자 삶의 성찰이며, 앞으로의 여정에 대한 새로운 출발점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가 그를 써왔듯, 그는 앞으로도 시와 함께 먼 곳을 향해 걸어갈 것이다. 고독한 맨발의 여정이 빛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