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성으로 방송 제재하던 시대는 끝? 방심위 개편 방향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개편 본격화…공정성 심의 논쟁 잇따라
공정성 조항 폐지·의결 정족수 강화·위원 추천 구조 개편 논의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개편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핵심 쟁점 중 하나는 '공정성 심의'다. 지난달 28일 열린 언론개혁 토론회에선 “공정성 심의를 폐지해야 한다”(노종면 의원)는 주장과 공정성 심의를 폐지하면 “심의가 더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김준희 언론노조 방심위지부장)는 주장이 동시에 나왔다. 오는 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미디어 거버넌스 개편에 대한 공청회를 연다.
윤석열 정부에서 공정성 심의는 비판 언론의 입을 틀어막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방송 내용이 정부에 불리하다는 주장에 따라 무수히 많은 중징계가 나왔다. 공정성 심의는 방송심의 규정 9조(공정성)에 근거한다. '방송은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을 다룰 때에는 공정성과 균형성을 유지하여야 하고 관련 당사자의 의견을 균형있게 반영하여야 한다' 등의 내용이다. 방송심의 규정의 근거 법령은 방송법이다. 방송법 33조는 '방심위는 방송의 공정성 및 공공성을 심의하기 위해 방송심의 규정을 제정하여야 한다'고 명시한다. 방송법 32조도 방송 내용이 '공정성과 공공성을 유지하고 있는지', '공적 책임을 준수하고 있는지' 여부를 방심위가 심의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규정과 법령에 공정성에 대한 명확한 정의, 기준은 없다. 방송의 내용, 진행자의 의견 표명, 패널의 구성 등 이론상 방송 모든 대목에 공정성 심의를 할 수 있다. 2023년 9월 류희림 방심위원장 취임 이후 △뉴스타파 김만배-신학림 대화 인용보도 △바이든-날리면 논란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등 정부에게 불편한 비판 보도들이 공정성 위반으로 제재를 받았다.
지난해 8월 미디어오늘이 방심위 의결 내역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류희림 위원장 체제 방심위는 9개월 동안 24개에 달하는 공정성 위반 법정제재를 의결했다. 직전 위원장이었던 정연주 체제에선 같은 기간 공정성 위반 법정제재가 1건에 불과했다. 류희림 방심위가 구성한 22대 총선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위)가 의결한 법정제재 다수도 공정성 심의였다. 일기예보에 '파란색 1'을 썼다가 공정성 위반으로 최고 수위 제재인 '관계자 징계'를 받은 MBC가 대표적이다.

류희림 방심위에서 의결된 법정제재는 1심 선고가 나올 때마다 법원에서 취소되고 있다. 2일 기준 '23전23패'(선방위 포함)다. 법원은 방심위가 내세운 징계 사유를 반박하며 방송이 공정성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논평이 가능한 시사프로그램에 엄격한 심사기준을 적용할 것은 아니고(서울행정법원 8부), 공정성 기준만으로 방송사에 중징계를 의결하는 것은 재량권을 일탈·남용(서울행정법원 12부)이라는 판단이다.
'공정성 심의 폐지' 법안 잇따라 발의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 등 12인은 지난해 10월, 방송법 33조에서 '공정성'을 삭제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공정성 및 공공성 심의'에서 공공성만을 남겨두는 안이다. 정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0인도 지난해 12월 방송법에서 공정성을 빼는 안을 냈다. 정 의원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설치법에서도 공정성을 삭제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방통위 설치법 18조는 방심위를 “방송 내용의 공공성 및 공정성을 보장”하는 기구로 둔다.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0인이 지난 1월 낸 방송법 개정안은 방송법 33조의 '공정성'과 '공공성'을 모두 삭제하는 내용이다. 보도·논평의 경우 △인권존중 △아동·청소년 보호 △국제적 우의 증진 등 다른 방송법 조항에 근거한 심의만 가능하게 제한한다.

모두 공정성 심의를 폐지하는 시도들이다. 다만 이렇게 하더라도 '정치심의'가 계속될 수 있다는 우려는 나온다. 명예훼손, 권리침해, 객관성, 윤리 의무 등 기준이 모호한 조항이 심의 규정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우회로를 찾아 '정치심의'에 나설 수 있고, 방송심의가 유지되는 한 이를 100% 방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김준희 언론노조 방심위지부장은 지난달 28일 열린 언론개혁 과제 토론회에서 “공정성 심의 규정을 없애면 공정성 심의를 안 하는 게 아니라 엉뚱한 규정을 무리하게 적용해서 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객관성 규정을 적용해 과반 찬성으로 할 가능성도 크다. 심의가 오히려 더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노종면 의원은 “공정성 심의를 폐지하면 다른 게 더 심해질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아 있는 규정을 악용할 가능성은 공정성 심의를 없애서 생기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며 “공정성 조항은 주관적이라서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공정성' 유지한 대신 구조 개편·의결조건 강화 등 방안도
공정성 조항이 '정치심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건 방심위 구조가 정치권에 종속돼 있기 때문이다. 방심위원은 대통령, 국회의장, 국회가 각각 3인씩을 추천할 수 있으며 최종 위촉·해촉권이 대통령에게 있다. 관행상 여야 6대3으로 구성돼 정부·여당의 입김이 세다. 공정성 민원도 대부분 정당에서 제기된다. 정치권이 특정 방송사를 겨냥해 제재를 집중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훈기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5일 방심위원 추천 구조를 개선하는 미디어기구 개편안을 발의했다. 정치권 추천 몫으로만 이뤄지는 현 방심위 구성을 정치권 추천 7명(대통령 2명· 정당 4명·국회의장 1명), 대법원장 추천 2명으로 바꿨다. 방심위원의 자격 요건도 강화했다.

공정성 심의 의결 조건을 강화하는 안도 있다. 이훈기 의원이 지난 3월 발의한 방통위 설치법 개정안에 따르면 '보도·논평의 공정성 및 공공성'(방송법 33조)을 심의할 때는 위원 7인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해야 한다. 정부여당 추천 위원 전원(6인)이 참여해도 의결을 강행할 수 없고 야당 추천 위원 1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지난달 28일 열린 방통위·방심위 개편방안 토론회에서 이남표 경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객원교수는 '만장일치' 의결 제도 도입을 주장했다. 이남표 교수는 “미국에서도 (과거에 폐지됐던) '페어니스 독트린'(공정보도원칙)을 다시 만들자는 얘기가 나온다”며 “공정성, 객관성, 토론프로그램 등의 조항에서 '행정처분을 내리는 의결을 하려면 의견이 전원일치돼야 한다'는 규정을 넣으면 된다”고 말했다. 지난달 19일 국회 토론회에선 공정성 심의에 한해 법정제재를 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 등도 거론됐다.
민주당 언론개혁특위 부위원장인 김현 의원이 지난 7월 대표발의한 '시청각미디어통신위원회 설치법'은 방심위를 '시청각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로 개편하는 안이다. 방심위원장을 정무직 공무원으로 규정해 인사청문회를 거치게 하고 국회 탄핵소추 대상으로 상정했다. 다만 위원 추천 구조와 공정성 조항은 그대로다. 김 의원은 오는 25일을 본회의 처리 시점으로 잡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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