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교육 올해는 17개까지?…비용만 '줄줄' ['절제'의 미학, '착한' 규제 리포트]

이광호 기자 2025. 9. 3.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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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에서 규제는 참 말이 많은 화두입니다. 공정, 안전 등을 위한 장치지만,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습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 무엇을 더 우선해야 할지에 대한 저마다의 의견도 다양합니다. 규제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며 만들어지지만 시행한 뒤에는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낳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정작 규제를 만드는 주체인 정부 내에 '규제개혁위원회'를 두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저희는 규제를 통해 발생한 '결과적인 상황'을 거꾸로 되짚어 보며, 의도했던 목적과 '기대했던 가치'를 가늠해보고자 합니다. 규제가 의도했던 결과로 이어지는 '좋은' 규제도 있습니다. 이 또한 어떤 것인지? 찾아보고자 합니다. 이번 기획의 시작과 접근은 이미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다양한 고민을 진행해 온 전문가들의 모임 (사)좋은규제시민포럼’과 함께 합니다. 공동기획 : (사)좋은규제시민포럼

직장인들에게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게 있습니다. 올해도 연말을 향해 가면서 마감 기한도 다가오고 있는 그것, '법정의무교육'입니다. 

사내 의무교육 수강 사이트에 들어가 봅니다. 줄줄이 '의무' '필수' 스티커가 붙어 있는 강좌가 가슴을 답답하게 합니다. 동영상의 속도를 가장 빠르게 설정하고 소리와 화면을 차단한 뒤, 다시 쌓여있는 업무로 돌아갑니다. 마지막에 꼭 거쳐야 하는 퀴즈는 상식에 기대거나 검색창을 열어 해결합니다. 

오늘(3일) 각 부처에 따르면 국내 법정의무교육은 총 6가지입니다. 산업안전보건교육이 1982년부터 의무적으로 시행돼 가장 오래됐습니다. 직장내성희롱 예방교육은 1999년 구 남녀고용평등법에서 처음 의무화됐습니다. 퇴직연금을 설정한 사업장에서 의무로 수행해야 하는 퇴직연금 교육은 관련법이 제정된 2005년부터 시작됐습니다. 
나머지 3개 교육은 비교적 최근에 의무화됐습니다. 처벌조항까지 추가된 실질적인 의무화 시기를 기준으로,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은 2018년 민간에 의무화됐습니다. 개인정보보호교육은 2011년 의무화됐지만 처벌 조항이 없다가 2020년 새 조항이 생겼습니다. 실제 개인정보 유출 등의 법 위반이 발생했을 때, 과태료 감경 사유로 교육 여부를 살피기 시작한 겁니다(정확한 조항은 '자율적 보호활동 등의 노력'입니다). 여기에 올해부터는 자살예방교육도 의무화 대상에 올라(다만 공공 중심으로, 처벌조항은 없습니다), 최근 10년 내에만 3개 의무 교육이 추가됐습니다. 참고로, 흔히 의무로 알려진 직장내괴롭힘 관련 교육은 '권고' 대상입니다. 

문제는 온라인 강의 중심으로 이뤄지는 교육의 집중도도 낮고, 실질적인 효과도 체감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산업안전보건교육은 가장 오래됐지만, 현재까지도 새정부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는 산업재해입니다. 퇴직연금교육은 20년째를 맞았지만 여전히 쥐꼬리 수익률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도입 이래 장기 연평균 수익률은 2.07%에 불과합니다. 26년째 이뤄지고 있는 성희롱 예방교육도 비슷합니다. 여성가족부의 성폭력안전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평생 성희롱 피해율은 2010년 15.7%에서 2016년 7.2%로 낮아졌다가 2019년 9.8%로 다시 높아졌습니다(최신 조사인 2022년은 조사기법 변경). 

공무원은 필수 교육만 '17개'
공무원들의 의무교육 부담은 더 큽니다. 8년차 구급 관련 공무원 A씨는 공직자 안보·적극행정·정보보안·인권·감염병·통일·환경 등 총 17개의 교육을 들어야 합니다. 강의 시간을 모두 합치면 28시간에 달합니다. 특히, 탄소 중립을 주요 주제로 하는 환경 관련 강의만 4시간을 들어야 합니다. 직무 특성과 큰 연관이 없는 교육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는 게 A씨의 불만입니다. 

안전사고 위험이 있는 기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B씨는 현장 업무를 전혀 수행하지 않는 사무직인데도 불구하고 연간 24시간의 산업안전보건교육을 이수해야 했습니다. 기관의 특성에 따라 '현업' 직원은 교육의 대상이 되는데, 기관 내에서도 자신이 현업인지 아닌지 판단할 기준이 없어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나마 현장직이 받는 교육은 이해조차 할 수 없어 재난 관련 교육으로 시간만 채웠습니다. 
 

공무원에게 유독 필수 교육이 많은 건 'BSC 성과관리' 체계의 영향이 있습니다. 이 체계는 민간처럼 매출이나 이익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공무원의 실적을 평가하기 적합하다는 이유로 정부와 지자체 곳곳에서 채택한 지표인데, 시민·재정·내부과정·학습과 성장 등이 주요 지표입니다. 문제는 이들 중 '학습과 성장' 지표를 달성하는 주요 정량적 평가 중 하나가 '교육의 양'이고, 그러다 보니 법정 의무가 아니더라도 온갖 교육을 추가해 양적 팽창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BSC 지표 전문가인 박병식 한국공공정책평가협회장은 "평가 점수를 객관화시키는 과정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라든지 청렴 교육 등을 지표화한 것이고, 막상 해당 교육들이 사라진다고 하면 (공무원의 역량에) 아쉬운 부분이 생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평가 체계를 만들다 보니 불필요하거나 중요도가 떨어지는 교육까지 포함됐는지는 점검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정부 교육훈련비만 연간 1600억
과도한 교육량이 낳는 또 다른 부작용은 비용입니다. 담당 부처에서 만든 자료를 활용해 교육할 경우 별도의 비용이 들진 않겠지만, 일부는 외부 강사 초빙 혹은 인터넷 강의 수강료 등에 비용이 투입됩니다. 

정부 예산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는 이런 종류의 의무교육 예산을 따로 심사하진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일반관리비 내에서 처리되는데 별도의 교육비 예산을 보고받진 않는다는 겁니다. 다만 결산은 보고를 받습니다. '교육훈련비'라는 명목으로 집계되는데, 여기엔 각종 의무교육에 더해 정부 내에서 벌어진 세미나 등 다른 교육의 비용도 포함돼 있습니다. 의무교육에 쓰인 비용을 별도로 집계하진 않습니다. 
 

정부의 연간 결산 보고서를 집계한 결과, 정부 전체 교육훈련비는 매년 1600억원가량이 쓰입니다. 특히 2020년 이후 비용이 점차 늘어, 2023년에는 코로나19 이전이었던 2019년 이상으로 뛰어오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코로나로 대면 교육이 극도로 위축됐던 2020년에도 1000억원 이상의 비용이 지출된 것을 감안하면, 적잖은 예산이 온라인 강의에 투입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런 교육을 전반적으로 축소할 필요가 있다는 게 학계의 지적입니다. 이혁우 배재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유사 교육은 통폐합하면서 교육 주기 자체를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면서 "입직이나 승진 등 업무 환경이 바뀔 때에만 교육을 하되, 축소된 교육은 유명무실한 온라인 교육 대신 심층적인 집합 교육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짚었습니다. 여기에 "일탈 행위를 벌인 직원에 대해선 더욱 강화된 교정적 교육을 진행하는 등 교육 대상도 차등해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일부의 의지만으로 제도의 개선이 쉽진 않습니다. 우선 의무 교육마다 담당하는 부처가 다릅니다. 성희롱 예방 교육이나 안전보건교육은 고용노동부,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은 보건복지부가 담당하는 식입니다. 여기에 법정의무교육은 모두 법령 자체에서 교육을 의무화하고 있어, 국회에서 법 개정이 이뤄져야 제도를 바꿀 수 있습니다. 

결국 법정의무교육 규제는 한두 부처가 아닌 당정 차원에서 개선을 모색해야 하는 제도입니다. 새정부 초기, 여당과 정부 사이 협업이 잘 이뤄지고 있는 시점에서 법정의무교육 규제 해소를 논의 테이블에 올리는 것도 필요해 보입니다. 국내 상용근로 직장인은 6월 기준 1700만명, 공무원 정원은 지난해 말 기준 117만명입니다. 대한민국 총인구의 약 36%가 이 규제의 영향을 받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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