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과 혼문, 그리고 제주 제2공항
제주 제2공항 문제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습니다. 공항 건설은 국가 예산으로 추진되는 국책사업으로, 대통령과 국토부 장관이 어떤 입장을 갖느냐가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2공항 강행 태세로 일관했던 전임 윤석열 정부와는 다르게 이재명 '국민주권' 정부에서는 새로운 갈등 해법이 제시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큽니다. 육지에서 고향 제주가 제주다움을 지키면서 지속가능한 공동체가 되길 염원하며 보내온 글들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글]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가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극장상영에 이어서 실사판으로까지 제작한다고 하니 그 끝을 아직은 가늠할 수 없을 듯하다. 외국자본이 제작한 탓에 수익으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볼멘 목소리도 있지만,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케데헌 관련 문화상품을 사기 위한 줄이 수백 미터 이어지고 매진과 예약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니, 심층까지 이어지는 한국문화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한시적인 현상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
외국방문객들이 한 번씩은 찾아오는 북촌한옥마을 인근에서 고미술갤러리를 운영하다 보니 그 열기를 더욱 실감하는 중이다. 골든(Golden), 소다 팝(Soda Pop) 등 대표곡들도 듣고, 쇼츠로만 간간이 보다가 모처럼 작정하고 넷플릭스로 들어가 체험하게 되었다.
주인공 아이돌들이 착용한 노리개, 칼은 물론 갓과 검은 도포를 입은 저승자사 사자보이즈, 호작도虎雀圖에서 튀어나온 어리바리한 호랑이와 갓을 쓰고 세 개의 눈을 방울방울 굴리는 귀여운 까치 등 고미술을 다루는 직업이다 보니 볼거리가 더 풍성했다. 모두 놀랄 만큼 사랑스럽고 매력적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돌담이 빙 둘러진 묘지들과 본향당의 신목을 연상케 하는, 어쩐지 제주스러운 풍경들이 나와서 나도 모르게 두근거렸다. 설마 제주일까?
검색해 보니 역시, 스토리의 출발이 제주도였다. 신화에 따르면 태초에 제주섬을 만든 설문대 할망과 하늘에서 오곡씨를 가져오고 농사법을 가르쳐 섬사람들을 풍요롭게 연명시킨 자청비와 금백조는 모두 여신들이다. 또 하늘, 땅, 바다에 상주하는 1만 8천 신들을 섬기며,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고, 춤과 소리로 아픔을 위로하며 어루만져온 심방(무당)들이 오랫동안 번성했던 곳이기도 하다.

케데헌에서는 두 가지 강력한 힘이 존재한다. 여자 아이돌로 대변되는 밝고 긍정적이며, 부드러움과 평화가 있는 혼문의 에너지와 저승사자로 표현되는 어둡고 부정적인 에너지로, 사람들의 영혼을 빼앗고 두려움으로 지배하는 욕망 가득한 귀마가 절정의 힘이다.
그런데 혼문의 전사인 루미는 귀마의 속성을 함께 지닌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고, 귀마의 수하인 진우 역시 선량한 내면을 숨기고 있었다. 불안전함을 감추고 더 강해지라는 스승의 가르침에도 루미는 고뇌 끝에 있는 그대로 자신의 결함을 드러내며 당당하게 귀마와 맞서 싸우고, 진우는 그런 루미를 귀마로부터 지켜내며 소멸의 길을 선택한다. 결국 불완전한 두 힘이 연대해서 혼문을 완성했다.
메기 강 감독은 어떻게 이토록 깊숙한 원형까지 닿을 수 있었을까? 토종 한국인들조차 감탄할 만큼 우리 문화를 세심하게 관찰해서, 정리하고 표현한 솜씨와 통찰력이 놀라웠다. 감독은 케데헌을 함께 작업한 외국 국적의 한국인들이 모국 대한민국에 바치는 헌사라고 했다.
나의 고향 제주에는 아직도 쟁쟁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아주시는 95세 넘은 노모가 계시고, 나 외에 가족들이 살고 있다. 그리운 모든 것이 있는 집이고 안식처다. 신들의 땅에 걸맞게 선계(仙界)만큼이나 빼어난 제주의 자연은 축복이지만, 그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고통과 눈물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아려 온다.
4.3으로 인해 거의 모든 가족을 잃고, 극단적인 조냥 정신과 단 하루도 온전히 쉬어본 적 없는 어머니의 삶을 지켜봤다. 나이를 더할수록 어머니가 살아낸 삶이 기적처럼 여겨진다. 나의 어머니 세대들은 4.3의 상처를 견뎌내면서 자식들을 낳고 키우고 물질적인 풍요와 성장까지 일궈냈다. 그 과정에서 제주 사람, 제주공동체만의 특성과 정신들이 만들어진 것 같다.

한라산과 오름 자락의 넓은 품 안에서 마치 조각보처럼 까만 돌담들이 출렁거리며 내달음치는 광활한 들판과 그 속에 듬성듬성 자리한 선대의 안식처들, 마치 태 안으로 들어온 것 같은 안도감과 멀리서 달려와서 반갑다고 어루만지고 쓰다듬어 주는 바람을 느낄 때면 마치 바람이 되어 이 풍광들을 어루만지며 내달리는 기분이 든다.
제주를 찾는 많은 방문객들도 그렇게 위로받고 치유받고 새로 에너지를 받아 간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모든 요소들이 제주만의 에너지고 자산이다. 케데헌에서 제주를 혼문의 시원으로 삼은 것은, 그렇게 멀리 있는 그이들조차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믿고 싶다.
그런데 막상 현실을 생각하면, 말할 수 없이 복잡한 마음이 교차한다. 계속되는 과도한 개발로 제주다운 것들이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고, 공동체는 와해되고 있으며, 구성원의 삶은 불안 속으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귀포가 본가인 우리 집은 이미 두어 차례 홍역을 치뤘다. 집을 수용당했고, 선대에서 물려받은 옥토를 매각할 위기도 있었다. 전에 없던 가족간의 불화와 갈등을 겪으면서 우여곡절 끝에 겨우 위기를 넘겼다. 그때를 생각하면 모두 가슴을 쓸어내린다. 조카들도 그 일을 함께 겪는 동안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새겼고, 다행히 지금은 야무지게 잘 살아내고 있다.
그런 경우는 우리집 뿐만이 아닌 것 같다. 성산지역에 공항 하나를 더 만든다고 할 때, 뭔가 경제적으로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심리에 찬성했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반대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언니가 귀뜸했다. 관광객도 들끓어보고, 비싼 값에 땅도 팔아봤지만, 살기가 더 어수선하고 신산해지더라는 걸 알아 가고 있어서인 것 같다.
최근에 외국에 살다 한국을 방문한 지인 부부가 있어 회포를 풀기 위해 몇 명이 자리를 가진 일이 있었다. 국내외 이슈들과 케데헌, 부부가 막 다녀 온 제주까지 화제를 올리던 중에, 잠시 소강상태였던 제2공항 건설을 다시 밀어붙이는 분위기라고 전하게 되었다. 다들 어리석은 일이라 한탄했고, 외국에서 온 지인은 정말 큰 재앙이 될 거라며 센 표현까지 했다.

등골이 서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