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락한 읍내 옛길 ‘홍고통’이 시끌벅적하다고?

“저 건물이 옛 홍성고, 지금 홍성여고 건물입니다. 홍고통은 옛 홍성고에서 명동거리까지 이어진 골목길을 부르는 이름으로 홍성의 문화·상업 중심지였습니다.”
지난 27일 낮, 충남 홍성군 홍성읍 홍고통 거리에 한여름 햇살이 쏟아졌다. 그늘 없는 작은 골목길은 문 닫은 가게들에 붙은 색바랜 간판이 과거의 영화를 짐작하게 할 뿐 그림자도 멈춘 듯 움직임이 없었다. 그러나 엄진주 홍성군 청년산업육성팀장은 “예전에는 이곳에 터미널, 홍성고, 농협마트, 롤러장과 오락실 등 홍성의 주요 시설들이 몰려 있었으나 2000년 홍성버스터미널, 2016년 홍성고가 각각 이전한 뒤 상권이 크게 침체했다. 그런데 최근 청년들이 잇따라 창업하면서 홍고통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소개했다.

홍고통 부활 신호탄 청년 창업
홍고통에서 문을 연 청년 창업가게는 젤라부(아이스크림), 나빌레라(소극장), 튜베어(수제 소시지), 43169(책방), 레이럴(사색공방), 온포인트릿(금속공방), 물풀들(식료품), 잭지방(문화살롱), 테스트키친(식당) 등이다.
이 가게들은 홍성 관련 아이템으로 창업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젤라부는 홍성의 유기농 식재료로 이탈리아식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튜베어는 홍성 축산물로 수제 소시지를 만든다. 소극장 나빌레라는 현재 먹방 연극 ‘나의 첫사랑 레시피’를 공연하는데 조리하는 식재료를 모두 홍고통에서 조달한다.
레이럴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등 나를 찾는 생각 공간이라는데 홍성을 어떻게 상품화했을까. 홍성의 세 가지 향과 세 가지 이미지를 생각하는 공간을 꾸미는 재료로 삼았다고 한다. 김태우 레이럴 대표는 “죽도의 대나무, 홍성의 논밭, 궁리항의 갯벌을 상징하는 향을 제작하고 용봉산의 소나무와 바위, 오서산의 갈대와 벚꽃, 백월산의 밤하늘과 신앙심을 형상화했다”고 밝혔다.

책방 43169(사대삼십육대구)는 서점이지만 책이 많지 않다. 홍성과 관련된 책도 눈에 띄지 않는다. 책방 주인 박재범씨는 책이 많지 않은 이유를 묻자 “내용을 알아야 책을 팔 수 있을 텐데…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어서…”라며 웃음 짓는다. 그는 영화 연출을 전공했다. 그래서 책방 이름이 화면 비율(4대3, 16대9)이다. 책방에는 스크린이 걸려 있다. 그는 “동네 만드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고 비전이 보였다. 이 거리에 책방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책방을 한다”며 “독립영화 같은 영상을 소개하는 책방을 하고 싶어서 홍고통 골목 영화제도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고통이 처음부터 청년들이 창업하기 좋은 조건을 갖췄던 것은 아니다. 영화 연출자가 ‘흔쾌히’ 책방 주인이 되고, 디자이너가 홍성을 상징하는 향과 이미지로 공방을 차린 것은 모두 홍성에서 청년창업을 돕는 씨앗 기업 ‘집단지성’ 덕분이다. 집단지성은 홍성에서 창업한 3~7년차 다섯팀이 ‘홍성에서 내 것을 하며 성장하고 창업하려는 청년들에게 길잡이가 되자’며 2023년 출범한 공동체다. 자신들이 창업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을 후배들은 반복하지 않도록 돕고 성공적으로 정착하도록 지원하는 활동을 한다.

김만이 집단지성 대표는 “홍성은 국내에서 유일한 유기농업 특구이고 축산업, 김과 젓갈, 역사자원 등이 풍부한 점을 고려해 친환경 농산물 밀키트를 판매하는 초록코끼리를 창업했다. 하지만 창업 관련 인허가 과정은 물론 판매를 위한 인프라 등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아 고초를 겪었다”고 밝혔다.
그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서 홍성에서 창업한 이들과 연대했다. 슬기로운 캠핑생활을 내걸고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행복한 여행 나눔’에 유기농 밀키트를 공급하고, 우유 대리점에 의뢰해 새벽 배송 문제를 풀었다. 재료는 채소생활, 조리는 와우네와 협업했다. 이런 협업은 인구 3만5천명인 홍성읍에서 월매출 5천만원을 달성하는 성과를 냈고, 농촌형 창업가 마을을 돕는 집단지성 출범의 계기가 됐다.
도시 창업은 경쟁, 농촌 창업은 연대
집단지성은 진로를 고민하는 20대 중반~30대 초반 청년층에게 홍성에서 살아보기를 권한다. 살아보기는 3~4일에서 한달까지 ‘홍성에서 무엇을 할까’를 생각하는 시간이다. 다음 단계는 아이템을 찾아서 판매하며 창업 가능성을 엿보는 기회를 갖는다. 아이템은 홍성의 것이어야 하는데 홍성 것이지만 시장성이 낮다면 도시에서 창업하며 홍성과 관계를 이어가는 ‘관계창업’을 권한다.
홍성군 자료를 보면, 집단지성은 2023년부터 올 6월 말까지 14차례에 걸쳐 농업·식품·콘텐츠 부문을 특화한 지역살이 행사를 열었다. 모두 300명이 홍성살이를 경험했고 9명이 홍성에 정착해 홍고통에서 사색공방 레이럴, 소시지펍 튜베어, 책방 사대삼십육대구 등을 창업했다. 홍성산 콩으로 낫토를 만드는 제준혁씨는 제품 시장성을 고려해 서울에서 낫토바 ‘낫투두낫토’를 관계창업 했다. 유기농 식재료를 사용하는 서울의 고유한집, 코워키, 청양 특화 빵집인 청양의 ‘찰리와 고추빵공장’ 등도 관계창업 한 업소다. 집단지성은 연계사업으로 자금을 마련해 창업 청년에게 인테리어 비용(1천만원)을 지원한다.

집단지성의 활동은 홍성군과 신뢰를 쌓으며 인허가 등 행정 장벽을 낮추고 지역 토박이들이 응원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한 건물주는 빈 학원 건물을 사용해도 좋다고 허락했고 김내과 원장님은 숙소로 사용하라며 집을 내줬다. 이런 성원에 힘입어 집단지성의 숙소는 홍동면의 셰프 레지던시(최대 6명 수용)와 달마당 게스트하우스(최대 11명), 읍내의 창업가숙소(최대 10명)와 보조숙소(최대 6명) 등 4곳으로 늘었다. 이정빈 소극장 나빌레라 대표는 “홍성살이를 하는 이들은 물론 서울에서 활동하는 배우들도 공연하려고 홍성에 오면 숙소가 필요했는데 숙소가 늘어 큰 힘이 된다. 주민 관심이 커지면서 5주차 전석 매진 기록을 세웠다”고 고마워했다.

집단지성의 꿈
홍고통 한 블록 뒤에 하얀색 이층집 젤리스라운지가 있다. 1층은 교육하고, 전시하고, 회의하는 공유공간이고 2층은 홍성군 창업가 마을 ‘집단지성’의 아지트다. 이곳에서 작지만 단단하게 연대해 홍고통을 과거의 추억에서 홍성의 미래 중심으로 변화시킬 설계도 그리기가 한창이다.
집단지성의 꿈은 출범 10년 뒤인 2032년까지 100개의 창업 가게가 3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것이다. 이 목표를 위해 집단지성은 청년 마을 만들기(~2025년), 문화도시 홍성 만들기(~2027년), 균형발전 도달하기(~2029년), 지속가능한 사업 단계 도달하기(~2032년)에 도전하고 있다.
김정아 팀장은 “도시의 창업은 높은 빌딩에서 많은 팀이 경쟁하고 결국 각 팀의 핵심들이 한 팀을 꾸려 생존하는 구조다. 홍성에서 홍성의 것으로 창업하는 것은 홍성을 매개로 넓은 땅에서 단단하게 연대해 생존한다는 점이 도시 창업과 차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귀농·귀촌을 쉼, 치유, 실패로 풀이하는 고정 개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농촌은 청년들이 꿈을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현실화하고 창업해 성장하는 거점”이라고 덧붙였다.
홍고통의 고유한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는 것도 이들 몫이다. 올해부터 연세대, 제주대, 상명대, 청운대 등 4개 대학이 홍고통을 기록하고 있다.
“왜 서울 토박이가 홍성에서 창업했냐고요? 제가 하려는 것들이 여기에 다 있으니까요.” 김만이 대표가 말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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