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태풍 매미 때 해수면 4m 넘게 올랐다 [영상]
2025 우리의 바다 현장르포
② 해수면 상승, 남의 일이 아니다

빠르다. 동해안의 해안침식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강릉시 주문진읍부터 연곡면, 사천면, 안현동, 경포동 일대는 무섭게 깎여 나가고 있다. 이 해안선은 2020년 전후부터 동해안에서 가장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곳이다. 강릉케이티엑스(KTX)역으로 유입되는 20~30대 관광객이 꼭 찾는 해변이다. 그런데 해안침식이 관광객 유입 속도 만큼이나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 잘 알려진 교항리 해변과 영진 해변 일대는 해안침식이 워낙 거세, 해안선인 백사장과 카페거리 도로 사이에 콘크리트 구조물인 호안 블록을 설치했다.
2019년부터 2020년 사이, 동해안 전체에 걸쳐 연안 침식이 급격하게 가속화됐다. 해안선이 평균 20~30m씩 뒤로 물러나며 해수욕장들이 모래를 잃어갔다. 주문진, 경포대, 망상해수욕장까지 예외가 없었다. 해안침식 가속화의 숨은 원인은 다름 아닌 해수면 상승이다. 바다 수위가 높아지면 파랑 에너지가 강해진다. 가끔 찾아오는 태풍의 파괴력도 증가한다. 국립해양조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해수면은 지난 30년간 연평균 3.03㎜씩 상승했다. 이는 전 지구 평균의 두 배 가까운 수치다. 3㎜‘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바다 전체의 수위는 1㎜만 높아져도 위협적인 힘을 갖는다. 높아진 바닷물이 더 강한 힘으로 해안을 때리는 것이다.
해수면 상승이 높고 강한 파도까지 키워
동해안의 해수면 상승은 또 다른 위험을 키운다. 바로 너울성 고파랑이다. 바람 한 점 없는 맑은 날에도 갑작스레 높은 파도가 밀려와 순식간에 해안가를 덮치는 강한 파도다. 특히 수심이 깊고 섬 같은 장애물이 없는 동해안에 자주 발생한다. 실제로 2000년 이후 동해안에서는 너울성 파도로 인한 인명 피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2005년 10월에는 강릉 주문진항 방파제에서 산책하던 일가족 3명이 너울성 파도로 숨졌다. 2020년 9월 고성군 해변에서 가족 3명이 너울성 파도에 휩쓸려 사망했다. 2022년 울산 주전 해안에서 산책 중이던 일가족 2명이 숨졌다. 2023년 강릉에서는 갯바위 낚시객이 실종되는 등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너울성 고파랑은 방파제나 해안 구조물에 부딪히면 그 위력이 수십 배로 커진다. 해수면이 높아질수록 너울성 파도가 육지 안쪽으로 들어오게 되고, 이 과정에서 파도 에너지가 소멸하지 않아 파고가 급격히 높아지는 ‘증폭 현상’도 발생한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하루 최대 파고가 풍랑특보 기준인 3m를 넘는 사례가 전년 대비 4배 이상 늘었다. 동해안에서 발생한 연안사고 29건 중 상당수가 너울성 파도와 관련 있었다. 김인호 강원대 교수(지구환경시스템공학)는 “수심이 깊어지면 너울 전파에 유리해 파도가 커진다.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강한 에너지의 고파랑이 점점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수면 상승은 이미 전세계를 뒤흔드는 재난이 됐다. 적도의 투발루는 국토가 잠기는 문제로 현재 전국민 집단 이주를 논의 중이며, 인도네시아는 수도 자카르타 이전을 확정한 상태다. 우리나라도 해수면 상승에 대응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그 시작은 2003년 9월12일 전국을 강타한 태풍 ‘매미’다. 당시 태풍이 몰고 온 폭풍과 해일은 마산 중심부 거리를 순식간에 휩쓸었다. 매미가 마산에 상륙한 시각은 만조와 겹쳤다. 이로 인해 예측 해수면 높이인 180㎝를 훨씬 뛰어넘는 439㎝의 해수면 상승을 기록했다. 파도는 순식간에 시내 중심가를 덮쳤다. 해안가에 인접한 아파트와 상가는 2층 높이까지 물에 잠겼고, 강풍에 노출된 아파트 전면부 통유리는 불과 두 시간 만에 파손됐다. 바다에 있던 원목 700톤이 해일과 함께 휩쓸려 마산 도심의 도로와 상가 내부로 유입되면서 피해는 더욱 커졌다. 이로 인해 18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월영동 중심부의 상가와 주택 등 3795곳이 침수됐다. 태풍 폭풍 해일로 인한 피해로는 역대급이었다.
태풍까지 가세하는 ‘복합 재난’도 빈번
태풍 매미는 단순히 강력한 바람과 비를 넘어, 해수면 상승이 인위적으로 조성된 취약한 지대와 만났을 때 어떤 복합 재난이 발생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지금도 마산 거리에 만나는 시민들은 대부분은 당시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특히 택시 기사들은 피해 상황과 현장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억한다. 도시 전체가 폭풍 해일로 물에 잠기는 재난은 처음 겪었기 때문이다.


이에 경남 창원시는 2018년 마산합포구 마산항에 500억원의 예산을 들여 차수벽을 세웠다. 마산 장어구이 거리부터 마산 수산시장을 거쳐 수협 창고까지 항만 해안선에 독특한 담벼락이 있다. 하단부는 콘크리트 벽이지만 상단부는 철골과 투명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는, 물을 막기 위한 벽(아래 사진)이다. 길이 950m, 높이 2~2.5m의 고정형 차수벽을 기립식 차수벽과 적절히 섞어 설치했다. 태풍이 발생 시 마산항 전체가 물에 잠길 것을 대비한 것이다.
특히 마산 수산시장 앞 바닷가에 있는 합포수변공원의 기립식 차수벽은 국내에선 최초로 지어진 차수벽이다. 평소에는 도로 높이로 낮춰 공원 산책로로 쓰이다가, 태풍이나 해일이 발생하면 벽을 세워 바닷물을 막을 수 있다. 이 시설은 태풍 ‘찬투’(2021), ‘힌남노’(2022), ‘카눈’(2023) 때 가동돼 침수 피해를 현저히 줄이며 효과를 입증했다. 해양수산부(해수부)는 이를 모델로 삼아 2023년부터 전국 16개 항만 22곳에 총 1조7천억원을 투입하여 차수벽을 세우는 등 ‘항만 기후위기 대응 강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해수면 상승은 태풍 때마다 재난의 실체로 다가왔다. 2016년 10월, 태풍 ‘차바’가 부산 해운대 최고의 부촌인 ‘마린시티’를 덮쳤다. 만조로 수위가 평소보다 1m 높아진 상태에서 태풍이 몰아치자, 높이 5.1m의 방파제와 1.2m의 방수벽은 무용지물이 됐다. 파도는 순식간에 방파제를 넘었다. 해안가에 빼곡히 들어선 주상복합 건물과 50m 떨어진 상가 일대까지 덮쳤다. 10m가 넘는 파도가 도로와 1층 상가를 덮쳤고, 바닷물은 주차된 차량과 지하 주차장을 순식간에 물바다로 만들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쓰러진 가로수와 가로등, 그리고 흩어진 보도블록 수백장이 남아 있었다. 해안도로에 설치된 관광용 망원경도 부서져 나뒹굴었고, 도로 한복판에는 지름 1m가량 움푹 팬 구멍이 있었다. 가로 2m의 담장이 부서지기도 했다.

무분별한 개발이 완충지대 없애 더 위험
파랑 에너지를 분산시킬 완충지대 없이 해안 경계까지 무분별하게 개발한 것이 피해를 키웠다. 마린시티는 바다로 돌출된 매립지형이다. 태풍 발생 시 월파와 해일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이곳은 당초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게임 요트경기장을 조성할 목적으로 매립되었다. 하지만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과 두산건설은 계획과 달리 7000세대에 가까운 주거시설을 건설했다. 그 과정에서 해안 경계지역까지 주거지로 포함하면서 완충지대가 사라졌다. 특히 마린시티는 해안가에 인접한 고급 주거 단지라는 점에서 더 큰 충격을 줬다. 해수면 상승으로 해안 건축물의 안전이 더는 보장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2023년 8월10일 태풍 ‘카눈’은 해수면 상승이 도시를 어떻게 침수시키는지 생생히 보여주었다. 동해안을 따라 북상하며 속초에 316㎜의 집중호우가 쏟아졌고, 시간당 50㎜가 넘는 폭우로 하천 수위가 급상승했다. 상수도와 하수도가 역류해 시내 곳곳에서 도로 파손과 토사 유출이 발생했다. 폭우와 강풍으로 전신주가 쓰러지고 변압기가 고장 나 수천 가구가 정전됐고, 일부 지역은 통신마저 끊겼다. 항만과 해안도로는 풍랑주의보와 높은 파고로 전면 통제됐고, 어선 수백 척이 긴급 대피했다.

이날 침수 피해는 단순한 폭우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동해안의 만조 시간과 태풍의 상륙 시간이 겹쳐 바닷물 수위가 평소보다 훨씬 높았다. 여기에 태풍이 몰고 온 강풍까지 더해져 너울성 고파랑이 발생했다. 그 결과, 육지에서 흘러나온 빗물이 바다로 빠지지 못하고 하수도와 배수로를 통해 도시로 역류하는 ‘복합침수’ 현상이 벌어졌다. 내륙의 배수 기능이 약해지면서, 같은 양의 비가 와도 침수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실제로 속초 시내에서는 빗물이 도로와 주택으로 역류하는 장면이 확인됐다. 이는 해수면 상승이 태풍 피해를 가중하는 구조적 원인임을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됐다. 윤성순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박사는 “해수면 상승으로 빗물이 하수도와 배수관을 통해 역류하는 복합침수는 치명적”이라고 경고한다. 이 같은 복합 재난은 해수부 한 부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방어 위한 구조물이 또 다른 문제 낳을 수도
앞으로 이런 일이 더 자주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해수면 자체가 계속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투발루, 키리바시, 몰디브 같은 태평양 섬나라들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다. 국토 전체가 바다에 잠길 위기에 처해 국민의 집단 이주까지 논의 중이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의 위기감은 낮다. 높은 산과 넓은 땅이 있어 당장 가라앉을 걱정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안전하지 않다. 전체 인구의 28%인 1460만명이 해안에서 10㎞ 이내에 거주하고 있다. 전 국토의 17%에 달하는 연안 저지대는 태풍이 만조와 함께 밀려들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이 저지대는 해수면이 1m만 상승해도 바로 침수 위험에 노출된다. 특히 서해안 간척지와 동남 해안의 매립지들은 더욱 취약하다. 지속해서 제기되어온 슈퍼 태풍은 간척지와 매립지를 집어삼키는 재난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정부는 지금까지 해수면 상승과 연안 침식에 대해 ‘방어’ 중심의 대책에 머물러 있었다. 해수면 상승과 잦은 너울성 파도의 대책은 방파제와 같은 거대한 인공 구조물 설치로 대응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물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부산 마린시티처럼 고층 빌딩이 들어선 인구밀집 해안 도시는 구조물 대책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공 구조물은 파도의 흐름을 바꿔 2차 침식을 일으키기 쉽다. 아울러 수많은 연안 도시의 해안선에 구조물의 설치는 상상을 초월하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되어야 한다. 윤성순 박사는 “구조물 자체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면, 해안선을 후퇴시키는 것을 포함 다양한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해수부는 해안침식과 해수면 상승이라는 기후위기에 대비하여 ‘국민 안심 해안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침수 위험이 큰 지역의 토지를 국가가 사들여 주민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재산권 문제와 지역 반발이 만만치 않다. 정부는 해수면 상승 위험 지도를 완성하고도 부동산 가격 하락을 우려해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재난 안전은 위험을 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위험을 말할 수 없다면 안전은 확보되지 않는다. 앞으로 해수면 상승으로 강한 폭풍 해일을 동반한 태풍이 한반도에 들어올 수도 있다.
녹색연합 해양환경기록단 송승연 김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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