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수부와 중수청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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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찰청에 중앙수사부(중수부)가 창설된 것은 제5공화국 출범 직후인 1981년 6월의 일이다.
이후 대검 중수부는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수사 기관으로 자리매김 했다.
오죽하면 당시 송광수 검찰총장과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 이름을 딴 '송광수·안대희 팬클럽'까지 생겼겠는가.
그해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중수부를 비롯한 검찰 조직에 대대적인 역풍(逆風)이 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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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찰청에 중앙수사부(중수부)가 창설된 것은 제5공화국 출범 직후인 1981년 6월의 일이다. 그 전신은 1973년 1월 생긴 대검 특별수사부다. 부정부패 사건과 공안 사건 수사를 나란히 담당한 특수부를 둘로 쪼개며 각각 중수부, 공안부가 되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측근부터 제1야당인 한나라당의 중진 국회의원까지 줄줄이 철창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여야 할 것 없이 부정부패에 찌든 정치권에 실망한 시민들은 성역 없는 검찰 수사에 환호했다. 오죽하면 당시 송광수 검찰총장과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 이름을 딴 ‘송광수·안대희 팬클럽’까지 생겼겠는가.

이재명정부 들어 ‘검찰 개혁’이 당정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기존 검찰청의 수사와 기소 양대 기능을 분리하는 것이 개혁안의 핵심인데, 일선 검사들은 ‘사실상 검찰 해체 아닌가’ 하며 마음을 태우는 모습이다. 법무부가 아닌 행정안전부 산하에 일명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신설해 검찰의 수사 기능을 거기로 이관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중수청과 중수부라니, 묘하게 비슷한 이름이 아닐 수 없다. 법조계 일각에선 중수청을 두고 “무소불위 권력이 될 수 있다”라는 우려가 나온다. 옛 중수부의 영욕(榮辱)에서 교훈을 찾을 필요가 있겠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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