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A컷, 그 이후의 이야기

강화송 기자 2025. 9. 3.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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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트래비> B컷 대전.
A컷에 밀려 차마 소개하지 못했던 이야기.
어쩌면 오히려 더 여행에 가까울, <트래비> 에디터들의 조각들.

호주 멜버른 Melbourne, Australia

스티븐슨 레인의 스티븐
# 호주 멜버른 Melbourne, Australia

호주 멜버른 여행은 레인에서 시작해 레인에서 끝난다. 빽빽한 격자형으로 설계된 멜버른 도심에는 유독 좁은 골목길인 레인(Lane)이 많다. 아무튼, 그날 밤도 어김없이 호텔 근처 스티븐슨 레인(Stevenson Lane)을 걷고 있었다. 힙한 벽화와 덩그러니 놓인 농구대. 사진쟁이라면 셔터를 안 누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카메라를 드는 순간, 슬그머니 캡 모자를 쓴 그가 다가온다. 한 손엔 맥주잔, 다른 손은 브이(V) 포즈. 렌즈 앞으로 슬쩍 얼굴을 들이미는가 싶더니, 갑자기 뒤로 점프하며 골대에 덩크 시늉을 해 댄다. 자기 이름도 스티븐이라는 'TMI'도 같이 날려 주면서. 경계 없는 농담, 무해한 웃음, 왠지 모를 잔잔한 선의. 그건 레인만의, 멜버른만의, 호주만의 매력이기도 했다. 결국 모든 사진에 등장하신 스티븐 씨(33세). 사진은 B컷이지만, 기억만큼은 그날의 A컷이다. | 곽서희 기자

일본 교토 Kyoto, Japan 

지쳐선 안 돼
# 일본 교토 Kyoto, Japan

일본은 봄부터 참 무더웠다. 세상은 봄의 전령사인 벚꽃으로 가득했지만, 그것은 영락없는 여름 날씨였다. 땡볕 아래서 사진과 씨름을 하던 중 어느 벤치를 찾아 한숨을 돌렸다. 그렇게 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분홍색으로 물든 온 세상이 노랗게 보이기 시작한다. 일본의 더위는 가끔 이렇게 사람을 핑핑 돌게 만들곤 한다. 아무리 직업이 여행 기자라지만, 이 날씨에 다시 사진을 찍으러 나가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새하얗게 불태워 버린 <내일의 죠(1967년, 일본 권투만화)> 주인공과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을 때, 곁눈질한 찰나에 최고의 구도를 목격하고 말았다. 그것은 벚꽃과 도리이(鳥居, 입구)가 만들어 낸 프레임, 그 안을 걸어가는 기모노를 입은 이의 조합. 이 구도가 마치 내겐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졌고, 그 짧은 찰나에 지친 몸을 일으킨 뒤 카메라를 켜고, 설정과 구도를 맞추고, 셔터까지 잘 누른 줄 알았건만. 역시 시간은 절대적이었다…. 그래도 이 B컷을 찍으며 받은 아쉬움과 자극 덕분에, 더위에 꺾였던 마음이 다시 돌아왔다. 이 사진은 이날 찍은 A컷의 어머니인 셈이다. | 송요셉 기자

조지아 카즈베기 Kazbegi, Georgia

산 할아버지, 구름 모자 썼네
# 조지아 카즈베기 Kazbegi, Georgia

문득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해하지 마시라. 말 아니고 산이다. 조지아 카즈베기의 산들은 누군가 아무렇게나 빚은 투박한 초콜릿 덩어리에 코코아 가루를 뿌리고, 그 위에 서투른 솜씨로 대충 말차 가루를 팡팡 뿌린 다음, 맨 꼭대기에 뽀얀 연유 한 스푼을 듬뿍 부은 것처럼 보였다. 와, 이거 커다란 스푼으로 떠먹으면 엄청 맛있겠다, 하며 카메라를 들었는데 순간 산 정상 부근으로 구름이 몰렸다. 하지만 버스가 곧 출발한다, 재촉하는 통에 구름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다. 하, 구름만 없었으면 독자님들도 정말 공감했을 텐데. 산 할아버지, 구름 모자 좀 벗어 주시지! | 손고은 기자

중국 쑤저우 Shuzhou, China 

비키니 좋아하세요?
# 중국 쑤저우 Shuzhou, China

중국 무비자 입국이 가능해지고 나서는, 매일 같이 중국을 여행 중이다. 참 매력적인 나라다. 유쾌하달까, 어딜 가나 사람으로 혼란스럽지만 그들의 태도는 대체로 후련하다. 하고 싶으면 한다. 물론 이러한 그들의 절대적 본능이 장소와 때에 따라 불편으로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만, 그 본능과 규칙에 대한 모호한 경계가 이따금 나를 실소케 만든다. 이를테면 베이징 비키니.

베이징 비키니는 중국 남성들이 여름철 무더위를 식히기 위해 티셔츠를 말아 올려 배를 드러내는 행위다. 배를 뜻하는 '복(腹)' 자와 행운을 뜻하는 '복(福)' 자의 발음이 같다며, 이 행동의 당위에 복스러움까지 부여했다. 열기도 낮출 겸, 겸사겸사 행운까지 알뜰살뜰 챙기는 것이다. 현재 중국에서 이런 행동을 비문명적인 행위로 간주해 일부 지역에서는 벌금을 부과하고 있지만 글쎄, 적어도 내가 본 중국에선 어림도 없는 소리다. 하고 싶으면 한다.

최근 중국 쑤저우를 다녀왔다. 평균 기온은 40도에 육박했고, 습도는 무려 120%. 습식 사우나에 갇힌 듯한 날씨에 도심에선 그 누구도 원치 않을, 비키니 풀파티가 한창이었다. 사진을 찍자니 복슬복슬 털이 동그랗게 난 배를 차마 마주할 자신이 없고, 그렇다고 그 장관을 외면하자니 볼록한 뱃살, 그 위로 빼꼼 나온 가슴의 눈이 눈에 밟혔다. 아무도 원치 않는 비키니 풀파티의 묘사를 빠르게 마무리를 짓자면, 차마 그 사진은 B컷으로도 공개할 수가 없다. 비키니를 입고 있는 아저씨라면 90%의 확률로 흡연 중일 뿐더러, 이날은 더운 만큼 유독 퇴폐적인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어떻게 윤리적으로 소개할 수 있을까, 고뇌하고 고민하며 찍은 사진 한 장이다. 자고로 내가 정의하는 A컷은 사진의 퀄리티와 상관없이 여행의 상황과 설명이 장면에 깃든 사진이다. B컷은 상황에 대한 설명이 필수적인 사진.

그래서 설명 들어간다. 놀랍게도 베이징 비키니는 상의를 냅다 올리는 게 아니다. 바지의 뒤를 살짝 잡아 허리춤까지 끌어올리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거리에서 팬티와, 그 속살의 갈림길이 무방비하게 노출되는 것을 가리기 위함이다. 나름의 매너랄까. 어쨌든 높은 확률로 비키니 환복 전에 바지를 올려 팬티를 가리는 단계를 반드시 거친다. 그 이후에 상의의 앞단을 가슴의 눈, 좀 더 정확히 묘사하면 툭 튀어나온 어느 지점까지 돌돌 말아 올리는 것이 베이징 비키니의 정석. 사진 속 남성은 베이징 비키니의 첫 번째 과정을 시도 중이다. 여기서 문제, 성공했을까? 실패했을까. | 강화송 기자

미국 시카고 Chicago, USA 

필사의 구조
# 미국 시카고 Chicago, USA

좋은 여행지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여행 기자의 출장에 국한하면 평가의 잣대는 명확해진다. 주제에 맞는 인상적인 장면을 내어 주는 곳이 A급 명소다. 올해 6월에 다녀온 미국 시카고는 으리으리한 빌딩들이 가득한 대도시로 표현하고 싶었다. 웅장한 건축물이 한가득 담긴 사진이 필요했고, 적절한 장소는 전망대뿐이었다.

랜드마크인 윌리스 타워를 비롯해 트리뷴 타워,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 타워 등이 모두 보이는 '360 시카고'로 향했다. 화려함을 부각하기 위해 야간 촬영을 택했고, 일몰 1시간 전에 도착해 최적의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100% J(계획형)의 치밀함이랄까. 순탄하게 촬영을 마쳤고, 카메라 LCD에서도 사진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 '밥값 했다'라는 내면의 시그널에 안심한 나머지, 노트북 화면을 통한 2차 검증은 생략했다. 자만의 대가는 컸다. 귀국하고 나서야 어둠 속에 숨겨져 있던 이물질들을 발견했다. 유리창 빛 반사를 완벽하게 막지 못해 발생한 참사다. 어도비의 반사 제거 도구(Reflection Removal Tool) 등 기술의 힘을 빌려도 결과물이 시원치 않았다. 남은 선택지는 오직 수작업뿐. 복제 도장(Clone Stamp) 툴을 활용해 일일이 제거하며 필사적으로 구조 작업을 펼쳤다. 티 나지 않게 한 땀 한 땀 공을 들였다. 대수술을 마친 결과물은 어떻게 됐을까? 지난 <트래비> 8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트래비> 웹사이트에서도. | 이성균 기자

태국 치앙마이 Chiang Mai, Thailand

울상도 귀여워
# 태국 치앙마이 Chiang Mai, Thailand

귀여운 것을 바라보고 있자면, 도무지 참기가 힘들다. 혹자는 깨물기를, 필자는 사진 찍기를 택한다. 태국 치앙마이 반캉왓. 이곳에서는 이 욕망을 주체하기 정말 어렵다. 반캉왓은 2014년 태국 북부 현지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 만든 공동체 마을로, 소규모 공방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조물조물 완성한 앙증맞은 작품들이 곳곳에 가득하다.

골목을 돌며 실실 웃다가 멀리서 어린아이들이 열중하는 모습 발견. 여행 기자에겐 이만한 꿀떡이 없다. 슬금슬금 다가가 찰칵찰칵. 자고로 이런 상황에서 A컷이란 보자마자 '와악! 귀여워!' 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와야 하는데, 어째 이 사진은 생각이 깊어진다. 익숙한 이 얼굴들, 어디서 봤더라? 출퇴근길의 직장인, 수능을 앞둔 고3의 피곤함. 나이가 적든 많든 역시 인생은 쉽지 않나 보다. 아이들 머리 위로 '그래도 해야지, 어떡해', 말풍선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것은 착각일까. 아이고 귀여운 것들(귀엽다고 말하면 화낼 것 같다)! | 남현솔 기자

# 태국 수랏타니 Surat Thani, Thailand 

스님 사진관
# 태국 수랏타니 Surat Thani, Thailand

끝없이 마음을 비워 내는 스님을 동경한다(무교다). 그래서 어디선가 스님을 마주하게 되면, 최대한 공손히 두 손 모아 합장 인사를 건네고 싶어하는 편이다. 현실은 마음속으로만. 소녀시대의 '수줍어서 말도 못 하고'가 바로 나다. 불교의 나라, 태국에서는 그 수줍음을 조금 내려놔 보았다. 커다란 나무 아래에 있는 스님 여러 명을 보자 두근두근. '사진 한 장 꼭 남겨 보고 싶다'라며 어색한 미소와 짧은 몇 마디를 나눴다.

다행스럽게도 스님들이 일제히 포즈를 잡아 줬다. 그 공간에 있던 유일한 번뇌는 쭈뼛쭈뼛이며 한없이 셔터를 누르는 나뿐이었다. 끝없이 마음을 비워 내는 스님을 동경하며, 끝없이 욕심을 채웠다. 어색한 모습 속 오롯한 고운 미소. 조금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더라도 액자에 담아 언젠가 전하고 싶은 사진 한 장. | 남현솔 기자

미국 일리노이주 폰티악 Pontiac, Illinois, USA

현실의 괴리
# 미국 일리노이주 폰티악 Pontiac, Illinois, USA

여행을 하다 보면, 실제 두 눈으로 봤을 때와 모니터로 봤을 때의 괴리가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이 사진처럼 말이다. 이 사진은 미국 '루트 66'을 여행하며 찍었는데, '밥 월드마이어(Bob Waldmire)'가 살았던 스쿨버스의 내부 모습이다. 버스 내부는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화장실, 침실 등 생활에 필요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고, 군데군데 작고 귀여운 소품도 가득했다. 실제로 봤을 때는 창을 통해 나지막이 햇살이 들어와 어두워도 포근한 느낌을 받았는데 말이다. 카메라에 이런 느낌들이 담길까 반신반의하며 셔터를 눌렀다. 아무리 차창으로 햇살이 들어온다고 해도, 그것을 사진에 담기에는 빛이 충분하지 않았고 공간이 너무나도 비좁아 구도도 한정적이라 썩 만족할 만한 결과물은 못 건졌다. 내겐 너무나도 따뜻한 인상을 남긴 마른 나뭇가지 더미들이라도 찍어 보려 했지만, 결과물은 그저 나뭇가지를 모아 놓은 사진밖에 되지 못했다. 여행을 찍고 기록하는 일을 하지만, 여행 대부분의 순간은 그곳에서 느낄 때 더 아름다운가 보다. | 김다미 기자

글·사진 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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