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 0’…33번 공고에도 21개월 지원자조차 없었다
강원 남부의 유일 종합병원에서
정신과 의사 1년 9개월 ‘구인난’
진료 못 받는 환자들 자기 방치


그 산.
“이 몸이 죽어가셔 무어시 될고 ᄒᆞ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되야이셔, 백설이 만건곤ᄒᆞᆯ 졔 독야청청ᄒᆞ리라.”
단종 복위 운동에 실패한 사육신 성삼문(1418~1456)은 처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그 산(신선이 산다고 여겨지던 중국 전설 속 가상의 산)에 뿌리 박은 소나무로 남길 바랐다. 왕위를 빼앗기고 죽은 어린 임금의 무덤(장릉)을 직선거리 3㎞ 너머에서 건너다보는 산(799.8m·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이 그 산과 같은 이름으로 불리게 될 줄(후대인들은 시조 속 산과 영월의 산을 동일시해왔으나 성삼문은 단종의 영월 유배 1년여 전에 한양에서 처형당했으므로 가능성 낮음)은 죽기 직전 산을 호명한 성삼문도 몰랐을 것이었다.
7월4일 ‘현실의 봉래산’에선 별마루천문대가 있는 꼭대기까지 모노레일을 연결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의 시작점이자 등산로 출발점에 광덕사가 있었다. 5대 주지 법산 스님(65)이 기거하는 1인 사찰이었다. 부처님오신날에 세운 연등 기둥 자리를 삽으로 정리하며 그가 말했다.
“내가 신경이 좀 예민한 편인데….”
그는 4년 전부터 불면증 치료제를 복용했다. “신도들이 해결을 청하는 문제들과 새벽까지 씨름하는 날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부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과의원에서 처방해준 졸피뎀을 1년쯤 먹었더니 부작용(우울·불안·기억단절 등)이 따랐다. 스님이 찾아간 영월의료원(영월군 영월읍) 정신과에선 졸피뎀 양을 줄였다. 대신 수면보조제를 주며 ‘졸피뎀 의존성’에서 벗어나도록 유도했다. 그 약들을 먹은 뒤로 스님은 “머리 무거운 증상이 사라졌고 자고 나면 개운”했다.
2023년 말 그는 머리보다 마음이 무거웠다. 스님을 진료하던 의사가 영월의료원을 그만뒀다. 그 순간 영월·평창·정선(중진료권 ‘영월권’)을 통틀어 정신과 의사가 0명이 됐다. 이 지역에서 60분 안에 정신과에 닿지 못하는 인구 비율(국립중앙의료원 ‘2024년 의료취약지 모니터링 연구’ 2023년 12월 기준)은 96.67%(연간 정신과 입원 실적 50건 이상 의료기관 대상의 조사로 중진료권 평균은 22.9%)였다.
“나는 어떻게든 다니겠지만 우리 신도들은 그게 안 되니까.”
광덕사 불자들 중엔 “고령층이 많았”다. “홀몸의 시골 노인들은 우울증이 심했”다. “어딘가 한두번씩은 수술을 했”고 혼자 감당해야 하는 “외로움도 사람을 아프게 했”다. “식당 장사가 안 되고 가족 간 갈등으로 우울증을 앓는 70대 여성 신도는 병원을 못 가는 대신 매일 새벽 부처님을 찾아왔”다. “100살 넘는 할머니 신도는 아들이 70대”였다. “아들도 잘 걷지 못해 어머니를 모시고 영월 밖으로 나갈 엄두를 못 냈”다. “영월의료원까지는 어떻게라도 가겠지만 제천이나 원주는 자식들이 차를 안 태워주면 갈 방법이 없었”다. “영월에서 정신과 진료가 안 돼 너무 힘들다”고 신도들은 스님 앞에서 하소연했다. 삽으로 땅을 고르던 스님은 절 마당 높은 곳에 앉아 중생을 내려다보는 아미타불·석가모니·약사여래의 권위를 빌려 영월의료원에 호소했다.
“하루빨리 진료를 재개해주셔야 합니다.”
그 환자들은 모두 어디로
영월의료원이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의료원은 정신과 전문의 채용 공고를 낸 지 1년 9개월이 되도록 의사를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2023년 11월 첫 공고 이래 지난 8월 말까지 33차례 공고에도 지원자가 없었다. 17회차 공고 때부턴 ‘주 2회 파트 타임 근무’에 ‘요일 협의도 가능’하다는 조건을 추가했으나 진료 공백은 계속됐다.
초고령화 사회(영월권 인구 33.39%가 65살 이상)이자 독거 고령층이 많은 영월·평창·정선에서 정신건강의학과는 필수 의료였다. 의료원에서 정신과가 가동될 땐 “한달에 400~500명이 진료를 봤”(진선주 간호과장)다. “주로 우울증, 중증치매, 공황장애와 수면장애 등의 증상”을 보였다.
영월의료원 진료가 멈춘 뒤 이 환자들이 어디로 흩어졌는지는 안개 속에 있었다.
취약계층 환자들의 경우 공공의료과에서 그들을 지원하는 최은미 간호사가 상태를 주기적으로 파악했다. 취약계층일수록 정신건강도 취약했다. “약물을 중단하면 안 되는 환자들은 제천의 병원들로 나갔지만 생활하는 데도 빠듯한 수급비로는 오가는 차비도 부담”이었다. “혼자 사는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은 술을 끊지 못하고 쓰러진 채 발견돼 의료원 내과로 입원하는 일도 발생”했다. “고령층 중엔 병원에 가는 것 자체가 힘들어지면서 우울증 약을 먹지 못하고 스스로를 방치하는 환자들이 확인”됐다.

진선주 간호과장에게 ‘지난해 사건’은 지금까지도 “충격”으로 남아 있었다.
영월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지역사회에 잘 알려진 노부부가 함께 삶을 포기했다. 배우자 한쪽에게 지병이 있었고 그를 간병하던 배우자가 동반해서 죽음을 선택했다. “의료원에서 정신과 진료가 중단된 시기에 발생한 일”이었다. “지역 안에 정신과 기능이 살아있었다면 달라졌을까.” 그는 “쓸모없고 부질없는 줄 알면서도” 그 생각과 불쑥불쑥 맞닥뜨렸다. 2020년 전국 70개 중진료권에서 인구 10만명당 평균 23.49명(국립중앙의료원 헬스맵)이 자살했을 때 영월권에선 2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리에게 의존하는 환자를 우리가 다 커버하지 못하는 현실.”
2023년 9월 부임한 서영준 원장은 그 ‘현실’의 폭을 좁히기 위한 고심이 컸다. “강원 남부의 하나뿐인 종합병원이 지역 환자의 25%밖에 진료하지 못했”다. “대학병원으로 가는 중증 환자 외엔 모두 감당할 수 있어야 지역거점병원이지만 75%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다른 시·도로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영월권 입원환자 ‘자체충족률’(지역 주민의 관내 의료기관 이용 비율로 높을수록 환자의 타 지역 유출이 적음)은 강원도 6개 중진료권 중 최하(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2020년 강릉권 78.9%, 원주권 77.8%, 춘천권 70.3%, 동해권 38.6%, 속초권 30.3%, 영월권 11.5%)였다.
그 ‘현실’은 “진료과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부터 노출됐다. 정신과에만 의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순환기내과, 흉부외과, 안과, 이비인후과, 재활의학과, 성형외과 등도 의료진이 비어 있었다. 응급의학과(총 5명) 2명과 비뇨기과는 공중보건의가 채웠다. 2023년 3월 담당 공보의가 전역한 신경과도 1년6개월 만인 지난해 9월에야 진료를 재개했다.
‘의료 대란’을 겪으면서는 있는 의사도 빼앗겼다. “그 전엔 시골로 올수록 의사 몸값이 높아졌지만 의정 사태가 본격화되자 수도권이나 대도시 대학병원에서도 의사 채용이 힘들어지면서 연봉을 높였”다. 여파는 영월까지 미쳤다. 영월의료원에서도 소화기내과 의사 등이 빠져나가면서 “종합병원인데도 한동안 내시경을 하지 못했”다. “한국 의료는 용병들이 지탱한다”며 서영준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했다.
“솔직히 의사를 못 구하는 게 아니다. 연봉 5억에 안 오면 6억, 그래도 안 오면 7억을 주면 된다. 의사가 100% 시장원리로 움직이니 용병제 아닌가. 병원만 지어놨다고 공공의료가 되는 게 아니다. 의사가 없는데 어쩌나. 어떤 비상사태에도 뛰어나가는 정규군 없이 국방이나 안보를 논할 수 있나. 민간 병원에선 수익이 안 나는 과는 없애면 된다. 공공병원은 그래선 안 된다.”
“영월도립병원(당시 명칭)은 그동안 3개년 계획으로 총 13억원의 예산을 투입, 영월읍 영흥리에 연건평 1248평 규모의 4층 콘크리트 건물을 신축, 오는 12월1일 이전할 계획이나 의사가 정원 10명 중 2명밖에 확보되지 않고 있다.”(동아일보 1981년 10월20일 기사)
영월의 ‘의사 구인난’은 유구했다. 44년 전 현 위치로 이전을 앞두고 맞닥뜨렸던 장벽이 반세기가 차가는 지금까지 굳건했다.

‘하루 두 번 버스’ 막차 타고
“건강을 생각하면 여기 살아야 하는데, 병원을 생각하면 여기 살면 안 돼.”
7월3일 아침 혜정(가명·54)이 아버지를 부축해 집을 나서며 말했다.
아버지 함경조(가명·86)는 23년 전 건강을 생각해 ‘여기’ 평창군 미탄면 계곡 앞에 정착했다. 강원도에서 산 재래콩을 메주 공장에 납품하며 4남매를 키운 그가 2001년 큰 사고를 당했다. 운전하던 소형 트럭이 눈길에 미끄러지며 맞은편 차선에서 오던 차량과 충돌했다. 옆자리에 있던 아내와 죽음의 문턱에서 투병하다 지금의 위치로 이사 왔다.
“버스 타고 다녔다는 이야기 듣고 너무 놀라서…. 상상도 못했잖아.”
혜정이 아버지를 타박했다.
사고 뒤 함경조는 자주 넘어졌다. 정신이 흐려지고 섬망에도 시달렸다. 나빠진 신장도 한몫했다는 걸 알았을 땐 “남은 기능이 7%뿐”이었다. 올해 4월 영월의료원에서 투석을 시작한 뒤부터 혜정은 “맑은 정신으로 몸의 중심을 잡는 아버지를 다시 보게 돼 기뻤”다. 원주까지 가지 않고도 투석을 받을 수 있어 다행이었지만 평창(인공신장실 취약지역)에서 영월까지 오갈 때마다 ‘여기’ 사는 게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온 가족이 절감했다. 남매가 요일을 정해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시고 갔다. 차례가 돌아오면 혜정은 경기도 성남에서 새벽길을 달려 내려왔다. 고생하는 아들딸에게 미안해질 때 아버지는 혼자 버스를 타기도 했다.
“의료원 앞에서 오후 4시20분에 출발하는 차가 있으니까.”
아버지는 “4~5시간 투석받고 비틀거리면 간호사가 병원 밖까지 부축해 준다”고 했다. “1시간쯤 기다리면 막차가 온다”는 말에 딸이 기겁했다. 하루 두번 다니는 버스에 ‘막차’는 단어 낭비 같기도 했다. “장애인 콜택시라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면 덜 불안(매일 아침 연락해 배정 받아야 하므로 불확실성 큼)하겠다”며 동갑의 아내가 보행기를 짚고 일어섰다.

부모를 태운 딸의 자동차가 계곡 옆으로 난 좁은 2차선 도로를 달렸다. 첩첩의 산이었다. 청옥산(평창군 미탄면·1256m)과 재치산(미탄면·751m) 사이를 빠져나온 차는 성안산(영월군 북면·843m)을 돌아 다시 골요봉(북면)과 접산(영월읍·835m)을 지났다. 시루산(북면·685m)과 단종 무덤(장릉)을 품은 발산(영월읍·667m)을 거쳐 봉래산에 이르기 전 의료원에 닿았다. 주 3차례 투석을 위해 굽이굽이 산을 넘는 신장 장애 환자의 일상은 그의 집 앞 깎아지른 벼랑만큼이나 위태로웠다.
영월의료원은 영월·평창·정선에서 신장 투석(2021년 6월 시작)이 가능한 유일한 병원이었다. 관내 등록된 신장 장애인(96명) 중 투석이 필요한 72명 가운데 48명(최대 수용 인원)이 의료원 인공신장센터로 왔다.
“걱정이 되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충은 엇갈렸다. 투석을 위해 31㎞를 달려 영월로 와야 하는 평창군민 함경조와 달리 집과 직장이 영월의료원에서 도보 5분 거리인 장백현(가명·46)은 영월에서 투석받지 못해 군 밖으로 나가야 했다. 그가 작년 11월 의료원 누리집에 절박한 글을 올렸다.
“이제 어느 병원으로 가서 투석을 받을지 고민이 되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사회복지사인 그는 투석 치료 10년의 만성신부전증 환자였다. “이렇게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비관도 했지만 아픈 사람 티내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썼”(7월7일 인터뷰)다. 투석 병원을 찾아 헤맨 지난 시간은 “무서움과 막막함”의 연속이었다.
직장인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그에겐 야간 투석밖엔 길이 없었다. 2015년부터 퇴근 뒤 제천으로 나가 내과의원에서 투석을 받았다. 3년이 지나자 인력 감축을 이유로 병원이 투석을 중단했다. 내과 소개로 제천시내 종합병원을 찾아갔다. 4년 뒤 그 병원도 야간 투석을 멈췄다. 왕복 90㎞를 운전하며 다녔던 3번째 병원도 지난해 12월 환자들에게 투석 종료를 통보했다. 마지막 투석을 앞두고 “절망”에 빠져 있던 그가 영월의료원에 글을 썼다. “공공성을 지향하는 거점 의료기관의 역할”을 해달라며 야간 투석 개시를 호소했다.
영월의료원의 신장투석기(보건복지부 ‘의료취약지 인공신장실 지원 사업’으로 설치)는 주간에만 돌아갔다. 야간 투석을 하려면 의사와 간호사를 추가 채용해야 했지만 예산이 없었다. 글을 확인한 진선주 간호과장이 군의회와 보건소 등에 전달했다. “당장의 이윤이나 수익성을 따지기보다 지역 주민의 고통을 살펴달라”며 인건비 지원을 요청했으나 해법은 나오지 않고 있다.
3번째 병원의 투석 종료 뒤 장백현은 과거 4년간 다녔던 종합병원(기존 환자를 이관받되 신규 환자는 받지 않음)에서 다시 투석을 하고 있다. “이 병원이 언제 또 투석기를 멈출지 몰라” 두려웠다. “제천에서까지 야간 투석이 올스톱되면 고향과 부양해야 할 부모님을 두고 원주 등지로 떠나야 할 수도 있다”는 불안을 떨치지 못했다.
거주지에 따라 죽음과의 거리가 달라지는 세계에서 인간의 목숨값은 동일하지 않았다.
※5회에선 중증 응급환자들을 관외 병원으로 보내야 하는 지역 책임의료기관의 처지와 사는 위치에 따라 사람의 목숨값이 달라지는 현실의 관계를 이야기합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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