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256] 벌교 여자만 돔배젓

9월이다. 가을로 가는 문턱에 섰다. 지난여름은 마른장마와 폭염이 반복된 긴 시간이었다. 아직 늦더위가 문턱을 넘어 안으로 들어오려는 가을을 밀어내고 있지만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다. 이즈음에 먼저 온몸을 반짝이는 은빛으로 치장한 몸짱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전어다. 벌교 5일장에 나갔다가 지나치지 못하고 기어코 전어를 주문했다. 주인이 날렵하게 전어를 손질하는 모습을 보다 불현듯 작년 이맘때 갈무리해 둔 돔배젓이 떠올랐다. 전어 내장 중 밤톨처럼 생긴 위를 모아 담근 젓갈이다. 그래서 밤젓이라 부르기도 한다.

벌교는 여자만과 가까운 포구이자 상업 도시였다. 본래 낙안군에 속했지만 1908년 군이 폐지되고 보성군에 편입되었다. 그 흔적은 낙안읍성이라는 지명에 남아 있다. 보성군은 보성읍이 행정 중심이지만 인구, 가구, 경제 등 여러 측면에서 벌교읍이 더 크다. 세인들에게는 벌교가 꼬막 주산지로 알려졌지만, 초가을 여자만에서 들어오는 전어 맛이 좋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여자만은 순천만갯벌, 벌교갯벌, 고흥갯벌, 여수갯벌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내만이다. 8월이면 남해 연안에 머물던 전어들이 내만으로 들어오는 시기이다. 전어의 고소한 맛도 함께 드는 시간이다.

“요것은 산지에서만 먹어야 써라. 하루살이여.” 펄쩍펄쩍 뛰던 전어를 단칼에 잠재우던 주인장이 하는 말이다. 익숙한 칼질로 반짝이는 비늘을 치고, 잔가시가 많은 배지느러미를 자르고 내장을 꺼냈다. 그리고 내장 중 위만 그릇에 담았다. 여기에 천일염을 뿌려서 3개월 이상 상온에 발효시키면 돔배젓이 탄생한다. 벌교 전어가 맛이 좋은 이유를 묻자, 주인은 여자만에서 잡은 전어가 가장 먼저 육지에 상륙하는 곳이란다. 전어는 하루만 지나도 가라앉는다. 아무리 운송 수단이 좋아졌더라도 수족관에서 하루를 보낸 전어는 활전어에서 사전어로 바뀐다. 횟감에서 구이용으로 운명이 바뀐다. 그래서 ‘하루살이’라고 했다. 가격도 3분의 1로 떨어진다. 잊고 있던 돔배젓을 꺼내 땡초, 마늘, 고춧가루를 넣고 무쳤다. 마무리로 참기름 한 방울에 참깨를 뿌렸다. 쌉싸름한 맛과 녹진한 뒷맛이 입안을 채운다. 가을 맛이 밥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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