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에 있다. 전국에 잇다] 남해 죽방렴

김윤관 2025. 9. 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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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어업이자 세계가 주목한 유산
500년 바다의 지혜, 남해 지족해협의 죽방렴
남해 어민들은 바다에서 500년 넘게 '죽방렴(竹防簾)'이라는 전통 방식으로 멸치를 잡아왔다. 도구 없이 물살을 이용하는 이 어업은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생계를 이어온 전통어업의 산물이다. 이제 그 유산이 세계의 눈에 들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된 죽방렴은 인류의 미래를 잇는 유산이 됐다.
 
남해 지족해협 죽방렴.

◇자연과 공존한 지혜, 세계가 인정하다

남해군 삼동면에 위치한 지족해협, 빠른 조류가 만들어낸 좁고 긴 해협 위에 죽방렴이 길게 줄지어 있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대나무 구조물이지만 이 어살 하나 하나에는 500년 세월을 버텨온 남해 어민들의 삶과 지혜, 자연과의 약속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죽방렴은 남해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어업 방식이다. 대나무를 엮어 바닷물 흐름을 유도해 멸치를 포획하는 구조인데 외부 장비나 동력 없이 오직 자연의 흐름만을 활용한다. 해양 생태계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고품질 어획을 가능케 해 '가장 슬기로운 어업 방식'으로도 불린다.
 
FAO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 현장 실사단이 죽방렴 어업현장을 직접 체험하고 있다.

이 방식으로 잡힌 멸치는 상처가 거의 없어 품질이 뛰어나며 남해 특산물인 멸치젓과 건멸치로 가공돼 전국 각지로 팔려나간다. 해류의 속도가 시속 10㎞ 안팎에 달하는 지족해협은 어업 난이도가 높지만 어민들은 세대에 걸쳐 터득한 경험과 지식으로 이를 다뤄낸다.

죽방렴은 지금도 남해 어민들의 생계와 직결된 '살아 있는 어업'이다. 보존을 위한 전시용 유산이 아니라 여전히 어민들이 매일같이 출어하고 조업하며 어장을 관리하는 현재진행형 문화유산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죽방렴 어업이 △생물다양성 보전 △전통 지식의 유지 △지역 공동체의 결속력 측면에서 매우 우수한 사례라고 평가하며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했다. 이는 죽방렴이 단지 남해군만의 자산에 머무르지 않고 인류 전체가 공유하고 계승할 가치로 확장되었음을 뜻한다.
 
남해 지족해협 죽방렴.
◇10년의 노력, 그리고 남해의 힘

죽방렴이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기까지는 지역민들의 꾸준한 노력이 있었다. 2015년 국가중요어업유산, 2019년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올해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죽방렴 보존회를 중심으로 어민들은 신청서 작성, 자료 수집, 현장 실사 준비, 역량 강화 교육까지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여기에 행정기관과 학계, 언론의 협력이 더해졌다.

이러한 노력은 단지 등재를 위한 행정절차에 머무르지 않았다. 어민들은 죽방렴을 지켜야 할 삶의 방식으로 인식하며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어장 회복을 위한 노력에도 자발적으로 동참해왔다. 바다와의 공존을 삶의 원칙으로 삼아온 남해 어민들의 실천이 결국 세계의 기준도 움직인 셈이다.

죽방렴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미래를 여는 열쇠다. 생태와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어업, 지역이 주도하는 문화자산 보전, 그리고 농어촌 관광과 지역경제의 새로운 활로. 그 모든 것이 이 죽방렴에 담겨 있다.
 
남해 죽방렴에서 잡은 은멸치.
남해 죽방렴에서 잡은 건멸치.

◇죽방렴에서 시작하는 남해의 미래

남해군은 이번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죽방렴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미래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먼저 죽방렴 운영 전 과정을 기록하고 보관하며 청년 어업인을 육성하는 전승 기반을 조성할 계획이다. 체험형 교육 콘텐츠, 학교 연계 프로그램 등을 통해 다음 세대와의 연결 고리를 마련한다.

관광자원화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죽방렴 조업 체험, 조류 관찰, 멸치 고기잡이 체험 등 다양한 생태관광 상품을 개발하고 지족구거리·독일마을과 연계한 '세계유산 탐방 코스'를 조성해 체류형 관광 자원으로 확장한다. 죽방렴 홍보관은 전시·체험·판매가 결합된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편될 예정이다.

프리미엄 수산물로서의 브랜드 전략도 추진된다. 죽방렴 멸치를 '지리적 표시제'에 등록하고 고급 가공품과 기념품을 개발해 '전통'에서 '고부가가치'로 도약하는 지역 브랜드로 육성한다.

국제교류 확대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일본, 이탈리아 등 유사한 어업유산을 보유한 나라와의 공동 전시, 국제 박람회 참가 등을 통해 남해 죽방렴의 위상을 세계에 지속적으로 알릴 방침이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바다의 보전이다. 남해군은 해양쓰레기 수거, 생물다양성 모니터링, 탄소흡수 기능 연구 등을 통해 지족해협을 청정 해역의 모델로 육성하고, 지속가능한 어업 환경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계획이다.

죽방렴은 경남에 있다. 그러나 그 가치는 전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남해의 바다와 어민이 지켜온 삶의 방식이 세계적 유산이 된 지금, 전통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남해에서 시작된 문화 유산이 전국으로, 세계로 이어지고 있다. 죽방렴이 그 증거다.

김윤관기자 kyk@gnnews.co.kr
 
남해 죽방렴.
남해 죽방렴 홍보관 전경.
남해 죽방렴 홍보관 전경.
FAO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 현장 실사단이 죽방렴 어업현장을 직접 체험하고 있다.
남해 죽방렴 체험현장 참가자들이 죽방렴을 관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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