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코미디의 권위

역사극을 보다 보면 익숙한 장면을 종종 마주한다.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한 광대들이 마을 한 가운데서 마당극을 펼치고, 이를 둘러싼 백성들 사이로 양반이나 고위 관리가 숨어 들어 굳은 얼굴로 극을 지켜보는 장면이다.
광대들이 임금이나 양반을 풍자하며 던지는 농담 속에는 당대의 날카로운 문제의식이 담겨 있었고 이같은 사실을 민심이 아는 것은 권력자들에게 두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권위를 가볍게 무너뜨리는 농담 속에서 풍자의 힘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풍자의 대상이 아래를 향하고 있다. 정치인보다는 사회초년생, 노인 등 약자가 코미디의 주인공이 됐다.
최근에는 유흥업소 종사 여성을 풍자하는 스케치코미디까지 등장했다. 20분가량의 짧은 영상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돈을 쉽게 벌고자 유흥업소에서 일하면서 돈 많은 중년 남성을 이용하는 대동소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를 두고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무분별하게 생산되는 콘텐츠가 누군가에게 낙인을 찍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윤 교수는 “성매매 산업의 이면에는 구조적 빈곤, 성적 학대 등 복합적인 문제가 응축돼 있다”며 “불법행위이자 복잡한 사회 문제를 질이 나쁜 여성 개인의 선택으로 일반화해선 안 된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 같은 코미디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 심각하다. 고정관념은 배제의 원리로 작동해서다.
물론 창작자에게 표현의 자유는 꼭 필요한 권리다. 그러나 모든 표현을 무조건 존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유는 타인의 자유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허용되기 때문이다.
웃음을 핑계로 사회적 약자를 비웃음 거리로 만드는 코미디는 공허하다. 약자가 아닌 강자를 향한 날카로운 비판을 웃음에 녹일 때 코미디의 권위는 선다. 권위를 잃은 코미디는 보는 이의 눈살만 찌푸리게 만든다.
/마주영 사회부 기자 mango@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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