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지 못한 19살 청년의 꿈 [전국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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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 | 호남제주데스크
그동안 숱한 산업재해 기사를 썼지만 유난히 기억에 남는 희생자가 있다. 지난해 6월16일 전북 전주 전주페이퍼 공장에서 홀로 일하다 숨진 19살 청년 박아무개군이다. 전주페이퍼는 국내 최대 신문용지 생산업체로, 지난달 21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이곳을 불시점검하며 박군이 다시 떠올랐다.
전남 순천 출신인 박군은 특성화고를 다니던 2023년 11월 이 공장으로 현장실습을 나갔고 한달 뒤 생산직으로 입사했다. 그는 사고 당일 아침 8시30분 홀로 배관 점검 업무에 나섰다가 아침 9시15분께 쓰러진 채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고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새 작업을 위해 공장가동을 중단한 지 6일째 되는 날이었다.
사고 초기 사망 원인은 배관에 남아 있던 원료가 부패하면서 발생한 유독물질(황화수소) 중독이 유력한 것으로 보였다. 사고 당일 황화수소가 검출되지 않았지만 20일 뒤 진행한 재조사에서는 4ppm(기준치 10ppm)이 나왔다. 회사는 보도자료를 내어 강화한 안전보건 관리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유해가스 누출이 우려되는 곳에는 방독면을 배치하고 가스감지 센서도 갖추기로 했다. 심폐소생술 교육 대상을 전 직원으로 확대하고 심장박동제세동기도 곳곳에 배치하기로 했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심장비대증으로 인한 심근경색’이 사망 원인으로 꼽혔다. 체내에서 황화수소는 검출되지 않았다. 이에 회사는 책임 소재에서 벗어나며 박군 사망 사건은 서서히 관심에서 멀어졌다.

박군이 잊히지 않는 건 그가 남긴 메모 때문이다. 유족이 지난해 6월 민주노총 전북본부를 통해 공개한 박군의 수첩에는 미래 목표가 빼곡하게 쓰여 있었다. ‘남에 대한 이야기 함부로 하지 않기’ ‘하기 전에 겁먹지 말기’ ‘구체적인 미래 목표 세우기’ ‘예체능 계열 손대보기(미술·사진, 브이로그, 다이어리 꾸미기, 유튜브, 영상편집)’ 등 사회초년생으로서의 다짐이었다. 인생계획으로는 ‘다른 언어 공부하기’ ‘살빼기’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 등이라고 썼다. 박군은 사진과 영상에 관심이 많았을까. ‘카메라 찍는 구도 배우기’ ‘사진에 대해 알아보기’ ‘사진 많이 찍어두기’ ‘직접 영상 찍고 편집해 보기’라는 목표도 보였다.
이렇게 꿈 많던 청년이 일하던 도중 숨졌지만 산업재해는 여전히 인정받지 못했다. 유족 지원 노무사는 “2인1조 작업 원칙이 지켜졌더라면 쓰러진 박군을 신속하게 조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6월 열린 1주기 추모제 때 박군 유족은 산업재해 승인을 받아야 추모공원을 가는 발걸음이 조금이라도 가벼울 것 같다고 전했다.
산업재해는 꾸준히 줄어왔다. 1964년 산재보험법이 제정된 뒤 1965년 산업재해율(사고·질병 모두 포함)은 5.91%였다. 1만명당 591명 수준이었다. 1995년에는 0.99%를 기록하며 1% 이하로 떨어졌고 2017년 0.48%로 최하점을 찍은 뒤 2021년부터 0.6%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전체 노동자 대비 사고로 숨진 노동자 만인율(1만명당 사고자 수)은 2014년 0.58에서 지난해 0.39로 떨어졌다.

노동 전문가들은 숫자의 이면을 보라고 당부한다. 박군처럼 업무 중 숨졌지만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한 경우나 일하다 다쳤어도 산업재해 신청을 포기하는 사례가 다수 있다는 것이다. 또 지난해 기준 사망사고 만인율은 매우 적은 숫자처럼 보이지만 실제 세상을 떠난 노동자 수는 827명에 달한다. 매일 두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 상황이다. 2021년 사업주나 공무원의 책임을 강화한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지만 의미 있는 결과는 보이지 않는다.
김영훈 장관은 전주페이퍼를 방문해 “안전은 귀찮아야 한다”고 말했다. 회사 관계자는 “실수해도 다치지 않는 방법까지 고민하겠다”고 했다. 모두 맞는 말이다.
산업재해는 근절되지 않겠지만 더는 ‘안전대책 미흡’을 기사에 쓰지 않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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