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70> 보말고둥과 대수리고둥
- 속살 쫀득하고 고소한 참고둥
- 알싸한 매운맛 호불호 맵쌀고둥
- 각각의 학명이 보말·대수리고둥
- 통영 다찌·부산 통술집 기본안주
- 고사리·들깨 넣고 ‘매집찜’ 요리
- 제주에서는 반찬·미역국·죽으로
어린 시절 바닷가 아이들에게는 바다가 놀이터였다. 하루 종일 바닷가에서 물놀이하며 놀다 보면 쉬 배가 고파졌다. 그럴 때면 버려둔 빈 깡통 하나 주워다가 고둥 담치 성게 삿갓조개 등속을 넣고 바닷물로 삶아 먹었다. 가끔 쌀을 가져와 깡통 밥을 해 먹기도 했다.

별다른 군것질거리가 없던 시절, 바다 것들은 아이들에게 소중한 주전부리였고 시장기를 속이는 끼니였다. 특히 그 시절 갯바위에는 다양한 종류의 고둥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바닷속 바위틈에 손을 넣고 더듬으면 도톨도톨 바위에 붙어있는 고둥들이 어김없이 손에 잡히는 것이다. 여러 고둥 중 가장 맛이 좋고 개체 수도 많았던 것이 참고둥과 맵쌀고둥이었다.
참고둥은 학명으로 ‘밤고둥 목 보말 속’의 고둥이고 맵쌀고둥은 ‘대수리 속’과 ‘맵사리 속’의 고둥이다. 참고둥은 속살이 쫀득쫀득하면서 고소한 맛이 돌아 모든 이가 좋아하는 고둥이고, 맵쌀고둥은 알싸한 매운맛이 돌아 아이들끼리도 호불호가 갈렸던 기억이다. 이들은 우리나라 전역의 해안가 바위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둥들이었다.
▮맛도 크기도 좋은 ‘보말고둥’

참고둥은 조간대의 고둥 중에서 크기도 비교적 크고 맛도 좋아 오래전부터 여러 지역 사람이 널리 먹었다. 제주 지역을 비롯해 해안가 사람들에게는 끼니를 대신하던 유용한 고둥이기도 했다. 그래서 몇몇 지역에서는 이를 ‘참고둥’이라 불렀던 것이다.
참고둥은 일반적으로 ‘보말고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제주에서는 해안가에 분포하고 있는 모든 고둥을 총칭하는 말로도 쓰인다. 주로 밤고둥 목의 밤고둥, 구멍밤고둥, 보말고둥, 팽이고둥 등이 그 대상이다. 그 모양이 밤알이나 팽이처럼 생겼는데 맛이 좋아 해안 지역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식재료이기도 했다.
맵쌀고둥은 학명으로 대수리고둥, 두드럭고둥, 맵사리고둥 등이 있는데, 대수리 속 고둥과 맵사리 속 고둥이 있다. 껍데기 표면 오톨도톨한 돌기가 전체적으로 나 있어 두드럭고둥, 매운맛이 있어 맵사리고둥으로 불린다. 이들 모두가 쫄깃하고 고소하기도 하지만, 내장에서 매운맛과 쌉쌀한 맛이 도는 공통점이 있다.
이 ‘보말’과 ‘대수리’는 주로 삶아서 속살을 핀이나 이쑤시개 등을 이용해 꺼내먹는다. 그래서 남해안 해산물 음식 관련 식당에서는 애피타이저 개념으로 자주 활용한다. 경남 통영의 ‘다찌집’에는 주요리가 나오기 전 입가심용으로 이들 고둥을 삶아서 낸다. 고둥만 내는 곳도 있고, 멍게 해삼 개불 등 간단한 해물과 함께 내놓기도 한다.
부산에도 ‘한 상 차림’ 개념의 ‘통술집’이나 ‘푸짐한 집’, ‘이모카세 전문 술집’ 등에서 이 두 고둥과 입으로 빨아먹는 ‘쪽 고둥(갯고둥)’ 등을 기본 안주로 제공한다. 본격적인 술과 안주가 나오기 전 심심풀이나 간단한 술안주로 제격이다.
보말 대부분이 우리 해역 전 연안에 걸쳐 분포하는데, 특히 제주 사람들에게는 아주 흔하게 먹어온 식재료이기도 하다. 제주에는 해안에서 잡히는 모든 고둥류를 총칭해서 보말, 고메기라 부른다. 그중 주로 음식으로 해 먹는 고둥은 먹보말(밤고둥)과 수두리보말(구멍밤고둥)로 한정하는 이들도 있다.
제주에서는 보말로 ‘보말촐레’ ‘보말죽’ ‘보말미역국’ 등을 만들어 먹는다. 보말촐레는 ‘보말로 만든 반찬’이란 뜻으로, 삶은 보말 속살을 꺼내 간장 등에 담그거나 양념해서 무쳐 내놓는 음식이다, 한두 끼 간단하게 차려 먹는 밑반찬쯤으로 보면 되겠다.
보말죽은 삶은 수두리보말의 속살을 한 줌 물에 넣고 내장을 주물러 으깬 후, 살만 건져내 참기름에 달달 볶아내고, 불린 쌀이나 보리쌀을 보말 내장 국물과 함께 부어 뭉근하게 끓여내면 된다. 제주에서는 체력 소모로 지쳤을 때 보양식으로 널리 먹어온 향토음식이다.
보말미역국이나 바릇(바다)국에도 보말이 들어간다. 미역과 함께 보말을 넣고 끓여내면 ‘보말미역국’, 미역과 보말 외 문어 성게알 소라 등 해산물들이 함께 들어가면 ‘바릇국’이 된다. 요즘은 관광객에게 제공하던 ‘보말칼국수’가 제주 관광 음식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기도 하다.
▮맵고 쌉쌀한 ‘대수리고둥’

대수리 고둥 또한 우리나라 전역에서 서식하는데, 맵고 쌉쌀한 맛 때문에 지역에 따라 매운 고둥, 맵사리, 맵고동, 매옹이, 맵딸 등으로 불린다. 얕은 수심의 바위에 서식하는데 물이 빠진 바위 아래나 틈새에서 한 무더기씩 따닥따닥 붙어있는 모습을 쉬 볼 수가 있다.
대수리고둥 중 ‘두드럭고둥’은 껍데기에 많은 돌기가 나 있다고, ‘맵사리 고둥’은 매운맛이 난다고 붙여진 이름들이다. 주로 매운맛과 쌉쌀한 맛이 나기에 지역마다 매운 고둥, 맵쌀고둥, 맵고둥, 매옹이 등으로도 불린다. 내장을 많이 먹으면 배가 아플 수도 있기에 장이 예민한 사람들은 내장을 제거하고 먹는 것이 좋다.
이 대수리를 인천 도서 지역에서는 ‘갱’이라 부르며 갱을 갈아 된장국에 넣고 끓이면 ‘갱국’이 된다. 갱국은 매운맛이 있어 숙취 해소에도 좋아 속 쓰린 아침, 술꾼들의 해장국으로도 널리 소용됐단다. 이뿐만 아니라 대수리는 보리가 익어갈 즈음해서 슬슬 살이 올라 맛있기에 보릿고개를 넘기는 구황음식 식재료로도 큰 역할을 했다고.
부산 기장, 울산 해안에서는 보말과 대수리로 ‘매집찜’을 해 먹기도 했다. 매집찜은 집안 대소사나 잔치 등에 빠지지 않고 상에 오르던 음식 중 하나다. 기장의 여러 해산물과 나물이 총동원되어 들어가고, 바다 향이 물씬 나는 ‘애지’(떡청각) 등 여러 해초까지 한 대접 푸짐하고 넉넉하게 조리해 내는 음식이다.
보기에는 고사리 머윗대 방아 등 제철 나물에 곡물가루와 들깻가루를 넣고 걸쭉하게 쪄낸 ‘나물찜’과 흡사한데, 바다를 끼고 있는 마을의 특성상 바다에 지천인 고둥류와 갖은 해조류 등 싱싱한 해산물이 다양하게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이때 들어가는 고둥이 보말, 대수리, 삿갓조개 등이었다. 적은 곡식에 주변의 모든 식재료를 한데 넣고 양을 늘려 먹던 보릿고개 음식이 매집찜이었던 것.
보말고둥과 대수리고둥. 이들과는 인상적인 조우가 참 많았다. 부산 영도 앞바다에서 바다천렵을 하던 어린 시절부터 부산 가덕도 대항마을 해안에 큰 바위를 뒤덮듯이 붙어있던 굵직굵직한 대수리. 경남 통영 연대도 해변 바위에 다닥다닥 새카맣게 붙어있어 사람을 놀라게 하던 보말….

이처럼 보말과 대수리는 그 크기는 작아도 해안가 마을에서는 어렵지 않게 채취할 수 있었기에, 춘궁기에는 이들로 끼니를 늘려 먹거나 소소하게 반찬으로 활용하던 소중한 식재료였다. 그만큼 해안가 사람들에게는 친숙하면서도 그들 주변에서 그들의 조촐한 음식이 되어 주었던, 그 역할과 가치 또한 새삼 빛나던 바다 식재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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