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군정담] 순암 안정복, 광주가 품은 실학의 정신과 우리의 길

방세환 2025. 9. 2.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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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사상적 거목이자 우리 역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순암 안정복 선생은 광주시가 자랑해야 할 위대한 인물이다. 올해는 순암 선생 탄신 313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광주시 중대동에 위치한 이택재는 광주시 유형문화유산 제5호로, 순암 선생이 직접 지어 학문에 몰두하고 후학을 양성한 공간이다. 단순한 서재가 아니라 시대적 사명을 고민하고 저술을 통해 세상에 길을 제시한 학문의 산실이었다. 순암은 이곳 텃골 마을에서 평생을 보내며 학문을 갈고닦았고, 그의 문하에서는 수많은 실학자가 배출됐다. 또한 후손들 역시 대대로 선비의 길을 걸으며 학문과 정신을 이어왔다. 광주가 품은 이 역사적 공간과 전통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순암 안정복의 학문은 단순한 지식 축적을 넘어 시대적 문제의식을 반영한 실천적 지성이었다. 그는 유교 경전과 역사에 정통했을 뿐 아니라, 병서·천문·의약·불교·도교 등 다양한 분야를 탐구하며 지적 시야를 넓혔다. 독서와 자기 성찰을 통해 쌓아 올린 학문은 '동사강목'이라는 거대한 결실로 이어졌다. '동사강목'은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조선의 역사와 정통성을 새롭게 정립하고자 한 치열한 문제의식이 담긴 저작이다. 역사적 사실을 실증적으로 서술하고, 유교적 가치를 기준으로 삼아 질서를 확립하려 했던 그의 노력은 조선 후기 역사학의 정점으로 평가된다.

순암의 사상은 오늘날 지방자치의 가치와도 맞닿아 있다. 그는 목민관의 자세를 다룬 '임관정요'에서 관리가 반드시 지녀야 할 덕목을 강조했다. 이는 후학인 정약용에게 영향을 주어 '목민심서'라는 걸출한 저술로 이어졌다. 백성을 중심에 두고, 공정하고 청렴하게 행정을 수행해야 한다는 원칙은 오늘날 공직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시민의 삶을 돌보고 민의를 살피는 것이 행정의 본질임을 순암은 이미 18세기에 설파했던 것이다.

또한 그는 정치적 권력과는 거리를 두고 학문에 전념했지만, 현실 개혁을 포기하지 않았다. 향촌 사회에서 향약을 실시하며 농촌 공동체에 유교적 자치를 정착시키려 했던 그의 시도는 오늘날의 주민자치와 맞닿아 있다. 중앙 권력 중심이 아닌 지역의 자율성과 공동체 정신을 중시한 그의 시각은, 광주가 추진하는 시민 중심 행정과 맥을 같이한다.

안정복의 호 '순암'은 '도리에 순응하며 학문에 힘쓰는 은거의 자리'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는 곧 그의 삶 그 자체였다. 외형적 성공보다 내면의 진실성과 학문적 성취를 중시했던 그는, 격동의 시대에도 자신의 신념을 굳건히 지키며 조용히 그러나 깊이 있게 사회를 비췄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사회적 변화와 도전 앞에서도, 순암의 태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새로운 변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우리 사회에 맞는 합리적 길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광주는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다. 인구 42만의 중견 도시로 성장하며, 균형 발전과 시민 중심 행정을 핵심 가치로 삼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순암 선생의 사상을 거울삼아야 한다. 백성을 중심에 둔 행정, 합리적이고 실천적인 학문, 그리고 공동체적 자치 정신은 곧 광주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광주시는 순암 선생의 정신과 사상을 이어 받기 위해 지난 2024년 6월 시청사 중회의실 명칭을 '순암홀'로 변경했다. 이는 단지 명칭만 변경하는 것이 아닌 공동체를 인정하고 협력, 공감이라는 시정 비전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지역의 자긍심을 대내외적으로 보여주고 광주시의 가치를 상징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순암 안정복은 정치적으로 불우한 시대를 살았지만, 학문적, 사상적 업적은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는 광주가 낳은 위대한 사상가이자 실학자이다. 광주시는 앞으로도 그의 정신을 계승하여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도시, 실학의 가치가 시민 삶 속에 살아 있는 도시로 발전해 나가겠다.

광주시민 모두가 순암의 정신을 함께 기리고, 우리 후손들에게 길이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순암 안정복 선생은 단지 한 시대의 학자가 아니라, 오늘날 광주와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가치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방세환 광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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