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한약 세계화' 최적 기회 … 대만서 배워라
한의학 적극 키우는 대만정부
국가중의약硏에서 표준 마련
총통, 학회 참석해 힘 실어줘
코로나치료제 60개국 수출
韓도 수출용 총괄체계 필요
한의약임상연구센터 만들자

지난달 29일 대만 타오위안시 승창제약 공장. 1만2500㎡(약 3800평) 용지에 들어선 이곳은 현지 3위 한약제제 생산 기지다. 현재 60개국에서 처방 중인 코로나19 치료제 '청관1호'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건물 입구부터 한의약 향이 감돌았고, 원재료 창고에는 농약·중금속 검사를 통과했다는 생약 원료가 잔뜩 쌓여 있었다. 지하 1층~지상 4층 건물 안에는 1322㎡(약 400평) 규모 냉장창고가 있었고, 6~12도의 온도와 60%의 습도로 품질을 관리하고 있었다.
청관1호를 포함한 제품 200여 종은 추출·농축·포제 과정을 거쳐 내수용과 수출용으로 나뉘어 포장된다. 주요 수출국은 미국·일본·싱가포르 등으로 전체 매출의 20%가 해외에서 발생한다. 리웨이주 승창제약 최고기술책임자(CTO)는 "모든 제품은 네 차례 품질 검사와 원료 유전자(DNA) 진위 확인을 거친다"며 "청관1호를 생산하면서 구축한 검증·추적 시스템과 국제 인증 실험실 운영이 현재는 전 라인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고, 세계시장에서도 신뢰를 얻었다"고 말했다.
코로나 유행 당시 대만은 방역 모범국으로 꼽혔다. 백신보다 치료제 개발에 방점을 찍은 전략이 주효했는데 그 중심에 청관1호가 있었다. 발열과 호흡기 증상 개선 효과가 확인됐고 부작용은 거의 보고되지 않았다.
당시 대만 정부는 자국 환자에게 무료로 공급했고, 회사는 해외 판매로만 2020년 46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코로나 치료제로 권고했으며 현재는 60개국에서 사용 중이다. 후속작인 폐렴 치료제 '청관2호'도 막바지 단계에 있다.

이 같은 성과는 대만 정부 차원의 든든한 지지 덕분이다. 대만 국가중의약연구소(NRICM)가 임상과 가이드라인을 맡으면서 승창제약은 연구와 생산을 담당하는 체계가 구축됐다. 이를 총지휘한 라이칭더 대만 총통은 지난달 31일 열린 '제21회 국제동양의학학술대회(ICOM 2025)'에 참석해 "청관1호가 수많은 생명을 구하며 전통의학의 가치를 입증했다"면서 "글로벌 시장 확대를 위해 연구개발(R&D)과 임상 제도를 더욱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대만과 한국의 현실은 대조적이다. 한국은 연구 성과와 검증된 약재가 충분하지만 이를 해외 시장으로 잇는 제도적 장치가 부재하다. 무엇보다 한약 전용 임상시험센터가 없어 대학병원 의약품 임상센터에 의존하다 보니 국제 규제기관이 요구하는 다국적 임상으로 확대하기 어렵다. 전용 HS코드(수출입 물품 국제분류코드)도 마련돼 있지 않아 한약제제 수출 실적은 건강기능식품·화장품 통계에 묻혀 있다. 정부 R&D 예산 역시 11개 부처에 흩어져 있어 장기 전략을 수립하는 데 한계가 있다.
김지호 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은 "공진단이나 우황청심환, 경옥고 등 국내 한약제제에 대한 해외 문의가 늘고 있지만, 지원 부족과 제도 미비로 실제 수출로는 잘 이어지지 않는다"며 "한의약 세계화는 이미 10년 전 한의약육성법에 담겼지만 세부 계획은 여전히 선언적 수준"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한의원을 찾은 외국인 환자는 3만3000여 명으로 전년보다 85% 늘었다. 이는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9년 이후 최다치다. 특히 올해는 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효과까지 더해지며 한의약에 대한 글로벌 관심이 한층 커지고 있다.

드라마·영화나 인터넷에 소개된 한의학 체험기가 호기심을 자극해 실제 방문으로 이어지고 골격계 통증이나 소화 장애, 감기 등 일상 질환을 치료하려는 수요도 늘고 있다. 전통의학에 친숙한 아시아권 환자들은 피부 미용, 재활, 만성질환 관리 진료를 선호하는 편이다. 서구권에서는 대체의학 수요가 높아 공진단·경옥고 같은 보약을 찾는 경우가 많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외국인 환자 유치 촉진을 위한 정보 제공과 지원 활동도 한몫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부회장은 "그럼에도 해외에 진출한 한의사나 한의의료기관조차 한약을 공급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세계적 관심이 커진 지금이야말로 정부의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약제제의 안전성은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올해 ICOM에서 권승원 경희대 교수는 심뇌혈관 환자 데이터를 분석해 이를 재확인했다. 그는 "항응고제 와파린과 한약을 함께 복용해도 출혈 위험은 늘지 않았고, 뇌졸중 환자 401명을 추적했을 때 간 손상은 1%였으며 신장 손상은 단 한 건도 없었다"면서 "표준화된 제조와 정기 모니터링이 이뤄지면 고위험군에서도 안전하게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연사로 나선 이상헌 단국대 교수도 수백만 명 규모의 건강보험 코호트 자료를 근거로 "양약은 약물 유발성 간손상(DILI) 위험을 크게 높였지만, 한의사가 처방한 한약은 위험 증가가 거의 없었다"고 발표했다.
한의협은 대만 NRICM과 같은 '한의약임상연구센터' 설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이 센터를 통해 원료 표준화부터 임상시험, 근거 보고서 제출로까지 이어지는 수출용 총괄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무작위대조시험(RCT), 실사용근거(RWE), 약물감시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축적하면 글로벌 규제기관이 인정할 근거도 확보할 수 있다.
김 부회장은 "한국형 임상연구센터는 국제 규제 대응의 컨트롤타워이자 수출용 임상 근거 생산 기지로 기능해야 한다"며 "정부가 이 센터를 중심으로 전 주기를 체계화한다면 K한약제제가 해외 규제 장벽을 넘어서 전략산업으로 육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타이베이 심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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