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없는 박물관, 10년의 길 위에서] 1. 기억을 품은 마을을 짓다
2016년 동네 자원 보존·활용 취지 시작
안산·시흥·화성 3개 도시 뜻깊은 실험
지역문화 개발…경기도 전역 뻗어 나가
에코 뮤지엄 道 대표 문화 브랜드 구축
15개 시군 25개소 거점·연속 공간 운영
주민들 단순 참여 아닌 기획자로성장
지속가능 발전 새로운 모델 제시 '성과'


경기도 전역을 무대로 펼쳐진 '지붕 없는 박물관'이 어느덧 10년을 맞았다. 2016년 경기만에서 시작된 작은 실험은 이제 DMZ 접경지, 한강수계, 원도심으로 확장되며 도민의 삶과 역사를 담아내는 문화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낡은 건물은 다시 살아났고, 잊힌 마을 이야기는 주민들의 손을 통해 기록과 전시로 되살아났다. 경기에코뮤지엄은 단순한 문화사업이 아니라, 지역의 기억과 생태를 지키며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자산을 만들어온 여정이었다. 이제 그 10년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경기에코뮤지엄 10년, 주민이 만든 문화 생태계
2016년, 안산·시흥·화성 3개 도시에서 뜻깊은 실험이 시작됐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 개발로 지역의 기억과 자연환경이 빠르게 사라지는 현실 속에서, 주민 스스로 마을과 자원을 보존·활용하는 새로운 방식의 문화재생 모델을 찾자는 취지였다.
이름은 '에코뮤지엄(Ecomuseum)'. '에코(Eco, 자연·생활환경)'와 '뮤지엄(Museum, 박물관)'을 결합한 단어의 기원처럼, 경기도민들의 터전인 생태와 주거 환경을 뿌리 삼아 등장한 개념은 대규모 개발과 환경 파괴, 공동체 해체 같은 기존의 문법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지역문화 및 관광자원의 개발을 꾀한 혁신적 시도였다.



▲시작, '경기만'에서 피어난 '마을 박물관'
경기에코뮤지엄의 첫 무대는 서해안 경기만이었다. 2016년 안산·시흥·화성이 업무협약을 맺고, 지역의 생태 문화 자원을 활용한 정체성 강화를 위해 갯벌과 어촌마을, 바닷길의 문화를 보존하기 위한 사업으로 '경기만 에코뮤지엄'을 본격화했다.
경기만 지역의 생태와 역사, 관광 자원을 문화적 가치를 바탕으로 조사 및 발굴하고, 도민에게는 문화 향유의 기회를, 지역 경제에는 문화 관광 자원의 융복합을 통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예술인들에게는 공공 예술 창작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 것이다. 이런 배경 아래 옛 대부면사무소는 주민들의 손을 거쳐 에코뮤지엄 거점센터인 '대부도 에코뮤지엄센터'로 탈바꿈했고, 우음도와 시흥 갯골은 생태 체험 공간으로 거듭났다. 그해 발굴된 '경기만 에코뮤지엄 컬렉션 100선'은 서해안의 문화자산을 기록으로 남기는 의미 있는 시도였다.


▲ '북부 DMZ', 기억의 땅을 문화로 잇다
2019년부터는 경기 북부 DMZ 권역으로 확대를 위한 연구와 시범 사업이 시작됐다. 김포, 평택 권역의 확장과 함께 연천, 동두천, 파주 등 냉전과 분단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접경지 마을들을 중심으로 확장성을 넓혀간 것이다. 더불어 앞선 경기만 에코뮤지엄에서 지역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나 아카이빙이 부족했다는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시도가 시작되기도 했다.
우선 동두천의 옛 기지촌 클럽은 '턱거리 마을박물관'으로 바뀌어 미군 주둔지와 여성들의 삶을 기록했다. 기지촌의 역사를 복원하고 해체돼 가는 지역 공동체를 되살리자는 취지였다. 연천 신망리역은 피난민 정착촌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채 '신망리 마을박물관'으로 재생됐다. 한국전쟁 이후 대표적인 수복마을인 신망리 지역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주민 구술 채록과 전시를 통해 'New Hope Town'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신망리의 과거를 미래 세대로 이어 나갔다.


▲'한강수계'와 '원도심', 생활 속 문화의 발견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한 2021년부터는 동부 한강수계 지역을 새롭게 아우르기 시작했다. 특히 도시와 녹지가 공존하는 다핵도시 남양주에서는 주민 복지 공동체 '이음복지공동체'를 통해 생활문화와 생태자원을 결합한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개발 제한 구역으로 시설 기반이 취약한 마을에 문화 예술 자원을 연결하며 지역 주민 생활의 질과 만족도를 높여 나간 프로젝트였다.
이듬해인 2022년에는 경기 남부 원도심 권역이 추가됐다. 과천의 첫 번째 민간 마을 극장 '별별극장'은 마을 주민이 직접 기획하고 무대에 오르는 소극장과 창작공간을 구성했으며, 시민이 직접 기획단이 돼 축제를 기획하며 지역의 역사와 삶, 생활을 문화 콘텐츠로 재구성했다. 수원의 '가치가게'는 주민들이 자급자족 생활을 실험하는 문화공간으로, 플라스틱 없는 샴푸바 만들기, 재활용 가죽공예 워크숍 등 대안적 삶을 제안하며 지역 공동체의 결속력을 다지기도 했다.
이렇듯 경기에코뮤지엄은 도입기와 확장기를 지나며 경기만은 '해양과 생태', DMZ는 '냉전 유산', 한강수계는 '생활문화', 원도심은 '근현대 도시사' 등 지역별 대표사업 추진을 통한 개성 있는 브랜딩화와 컬렉션 발굴, 권역 확장에 집중했다.
▲사업 체계화와 주민 네트워크
경기에코뮤지엄은 시간이 흐르며 단순한 공간 조성을 넘어 체계적 지원 사업으로 발전해 나갔다. 2021년 '경기만 에코뮤지엄'에서 '경기에코뮤지엄'으로 브랜드를 확장한 이후 주민들이 운영하는 공간은 '거점'으로, 문화자원 발굴과 프로그램을 꾸준히 이어가는 단체는 '인증제'로 묶어 지원하며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경기도의 대표 문화 브랜드 구축을 위해 나섰다.
인증제 사업에만 실시했던 모니터링 및 성과평가는 지원단체 전체로 확대하기도 했다. 또, '에코스테이-주민 Zoom-In' 프로그램을 통해 거점 활동가에게 활동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한 노력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 '경기에코뮤지엄', 10년의 성과와 의미
10년간 경기에코뮤지엄은 경기도 전역 4개 권역으로 확산되며 200여개가 넘는 단체를 지원했다. 2025년 현재는 15개 시군에서 25개소의 거점 및 연속 공간이 운영되고 있다.
무엇보다 성과는 '보이지 않던 역사와 삶'을 문화로 드러냈다는 점이다. 선감학원 아동피해, 기지촌 여성사, 신망리 피난민 정착촌 등은 그동안 지역개발 논리 속에서 외면받던 기억이었다. 경기에코뮤지엄은 이를 주민과 예술가의 손으로 기록하고 전시하며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렸다.
주민들이 단순한 참여자가 아닌 기획자·운영자로 성장한 것도 큰 성과다. 단순한 문화지원사업을 넘어, 주민 주도의 콘텐츠 개발과 브랜딩 개발은 문화생태계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무엇보다 각 지역의 고유한 문화유산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며, 보존과 개발의 이분법적 논리를 벗어난 공존의 비전을 제시했다는 점은 지난 10년의 성과 중에서도 가장 큰 부분으로 꼽힌다.
경기에코뮤지엄은 대규모 공사 중심의 개발 방식과 달리, 주민이 주체가 돼 자원을 재발견하고 활용하는 새로운 지역개발 모델은 낡은 건물을 허물기보다 기억을 품은 공간으로 재생하고, 대규모 축제 대신 작은 모임과 워크숍으로 공동체를 잇는 방식으로 재탄생하며 새로운 미래를 열어줬기 때문이다.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는 이름은 이제 경기도를 넘어 전국적 모델로 자리잡고 있다. 문화와 생태, 역사와 삶을 잇는 이 실험은 10년의 성과를 넘어 앞으로도 주민이 주도하는 지속 가능한 지역발전의 대안을 제시할 것이다.
/박지혜 기자 pjh@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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