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에서 부부가 된 바이올린 듀오…“말하지 않아도 같은 감정” [인터뷰]
3일 반포심산아트홀 ‘비바! 비발디’
2010년 사제로 만나 동료, 부부로
“눈빛만 봐도 모든 것을 아는 사이”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들꽃이 춤을 추는 초원 위로 부부 바이올린 듀오가 마주 섰다. 비발디 ‘트리오 소나타’를 담은 영상. 선율이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일렁인다. 바로크 시대에 쓰던 옛 악기에서 들려오는 정직한 소리의 울림과 파장이 직관적 고매함을 풍긴다. 하나의 바이올린 위로 두 개의 활이 넘나들며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을 연주할 땐 비장미 속에 사랑스러운 장난기도 비친다. 날카로운 듀오의 눈빛 사이로 이내 온기가 스민다. 스승과 제자로 만나 함께 한 지 15년. 부부 듀오는 고음악처럼 투명하고 자유롭다. 선한 눈과 온화한 미소가 거울을 마주한 것처럼 닮았다.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읽을 수 있어요. 늘 같은 감정을 느끼기에 연주하면서도 신기할 때가 많아요.” (페르낭데즈 비올론스)
최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부부 듀오 페르낭데즈 비올론스는 “스승과 제자로 만나 오랜 시간 함께 활동하고 살아가며 매 순간 발전하고 있다”고 말한다.
페르낭데즈 비올론스는 지난 2016년부터 본격적인 듀오 활동을 시작했다. 남편 프랑수와 페르낭데즈와 아내 김윤경으로 구성, 벨기에에 살며 유럽 전역에서 활동 중인 바로크 바이올린 듀오다.
남편이 한국을 처음 찾은 것은 1980년. 프랑수와 페르낭데즈는 “당시 오케스트라와 함께 서울, 광주, 부산에서 연주했는데, 군인들 앞에서 공연하는 특별한 경험이었다”며 “클래식과 한국 전통악기 연주가 함께하는 무대였다”고 돌아봤다. 그때 처음 들었던 태평소의 소리가 너무나 아름다웠다는 그는 “태평소 연주자가 자기 악기를 선물해 준 것도 잊지 못하는 기억”이라고 돌아본다.
한국에서의 연주는 2019년 이후 5년 만이다. 오는 3일 서울 반포심산아트홀에서 한국의 고음악 연주단체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과 ‘비바 비발디!’ 무대로 바로크 음악의 정수를 보여준다.

두 사람이 ‘바로크 악기’로 고음악을 ‘연주할 결심’을 한 시기는 저마다 다르다. 출발은 다수의 바이올리니스트처럼 ‘모던 바이올린’(현재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바이올린)이었다.
프랑수와 페르낭데즈는 6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해 11~12살쯤 바로크의 세계로 건너갔다. 김윤경은 더 늦었다. 그는 유학 중 고음악(중세와 르네상스, 바로크 음악을 통칭) 원전 연주(음악을 작곡 당시의 악기와 편성, 주법으로 재현)를 처음 접했고,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 김진과 함께 바흐, 헨델을 연주하며 그 시대의 악기에 반했다.
90년대 후반께 대학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그는 “당시 한국에선 고음악을 공부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며 “서른이 다 돼 악기를 바꾸려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 나이에 뭘 할 수 있겠냐며 걱정도 많았다”고 돌아본다.
김윤경이 평생 몸에 익혀온 ‘노멀 바이올린’(그는 모던 바이올린을 이렇게 부른다) 대신 바로크 바이올린에 마음이 끌린 것은 “레퍼토리의 다양성, 그리고 음악과 악기의 어우러짐” 때문이었다. 바로크 시대는 바흐(1685~1750), 헨델(1685~1759), 비발디(1678~1741)로 대표되는 17~18세기 중반을 말한다.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이 등장한 고전 시대 이전의 음악이다.
그는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라고 하면 굉장히 멀게 느껴지지만 사실 그들은 당대의 대중음악을 이끌었다”며 “비발디만 해도 굉장한 다작 작곡가였다”고 말한다. 비발디는 무려 500곡에 달하는 협주곡을 남겼다. 특히 비발디는 소프라노의 음색을 가진 ‘비올라 다모레’라는 7개의 현을 가진 고악기를 위한 곡을 많이 작곡했다. 부부 듀오의 유튜브에선 이 악기로 연주한 영상도 만날 수 있다. 무궁무진한 레퍼토리의 바다를 항해할 수 있다는 설렘은 김윤경이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인 ‘결정적 이유’다.
“고전, 낭만 시대(1800년대 초반~1910년대)까지 넘어가면 엄청난 대곡을 1년 동안 연습해 오케스트라와 연주를 해야 하는데 그 기회가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바로크 시대 음악은 레퍼토리도 다양하고, 편성도 자유로워 기회가 훨씬 많더라고요.” (김윤경)
게다가 ‘모던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마다 따라왔던, 지울 수 없는 의문 역시 그를 바로크 바이올린으로 이끌었다. 그는 “지금의 바이올린과 바로크 시대의 악기는 활 모양, 현이 모두 다르다”며 “연습할 때 늘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하는데, 지금의 바이올린으론 한계를 느꼈다. 낭만 시대 음악은 비브라토를 유지하는 데에 있어 모던 바이올린으로 연주하기에 적합하나 바흐나 바로크 시대 춤곡엔 너무 무겁고,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두 사람이 쓰는 악기는 특별하다. 여느 클래식 공연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바이올린이 아니다. 특징은 두 가지. 요즘과 같은 금속 현이 아닌 양의 창자를 꼬아 만든 현을 사용하고, 턱받침이 없다. 스크롤의 모양이 이색적으로 디자인된 것도 흥미롭다.
프랑수와 페르낭데즈는 “바로크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것은 바이올린의 역사를 시간 순서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번 한국 공연에선 제목처럼 이탈리아 바로크 음악의 거장 안토니오 비발디의 음악만으로 관객과 만난다. 비발디의 활력과 깊이를 두루 경험할 수 있는 무대로, 두 사람은 두 대의 바이올린과 두 대의 첼로를 위한 협주곡 G장조(RV 575)를 함께 연주한다. 또 페르낭데즈는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A단조(RV 522)와 ‘화성의 영감’ 중 바이올린 협주곡 제6번 A단조(RV 356)에서, 김윤경은 협주곡 ‘사계’ 중 ‘여름’(RV 315)의 협연자로 무대에 선다.
김윤경은 “비발디는 하늘이 준 재능을 타고난 천재 음악가”라며 “저희가 클리셰처럼 듣는 비발디가 있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 사랑받는 데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시대 악기를 고집하지 않고, 보편화된 바이올린으로 연주해도 아름다울 만큼 대단한 음악가였다”고 말한다.
공연에선 부부 듀오의 이심전심을 만날 수 있다.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악기는 모두 12대. 그 중 두 사람은 ‘쌍둥이 악기’를 들고 연주한다. 무대 위 부부의 연주에 “누가 어느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듣곤 하는데 그게 가장 큰 칭찬”이라고 김윤경은 귀띔했다.

페르낭데즈 비올론스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2016년. 대부분의 듀오와 실내악단이 함께 하는 연주 외에도 각자의 활동이 있지만, 두 사람은 연주 일정의 90%를 듀오로 선다. 음악과 삶을 같이 하기에 부딪히는 날도 있을 법하지만, 부부의 얼굴엔 그 흔한 짜증이나 화도 없다. 아내의 단점이 뭐냐는 질문에 남편은 한참을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없다”고 말한다. 아내는 “모든 면에서 존경하고 신뢰하나, 남편이 길치라 운전 만큼엔 믿음이 없다”며 웃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2010년. 김윤경이 브뤼셀 왕립음악원에서 페르낭데즈를 사사하면서다. 첫 만남을 떠올리던 남편은 “사실 첫 레슨 때 윤경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14명의 학생이 있었고, 다른 동양인도 있었다”며 “(김)윤경만 보지 않았다”며 웃는다.
페르낭데즈는 유럽을 대표하는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이자 현재는 지휘자이자 교육자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파리국립고등음악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 일주일에 한 번씩 기차를 타고 벨기에와 프랑스를 오간다. 지금까지 100장이 넘는 음반을 냈고, 바흐 전곡 앨범은 2003년 네덜란드 ‘프렐류드 클라시크’가 선정한 2003년 최고의 클래식 음반으로 꼽혔다. ‘르클레르 소나타’ 음반은 그라모폰에서 ‘에디터스 초이스’를 받았다. 디아파종은 이 음반에 대해 “춤을 추고 난 뒤, 페르낭데즈의 초감각적 바이올린은 모범적인 보컬의 본보기를 보여준다(Danse après danse, le violon hyper-sensible de François Fernandez manifeste une vocalité exemplaire)”라고 극찬했다. 지금도 그는 이 평가를 가장 좋아한다.
페르낭데즈는 하지만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이상적 음색은 평생 찾아가는 것”이라며 “지금도 나의 소리를 찾고 있다”고 했다. 아내는 “지금도 집에서 연습을 하며 ‘팔꿈치를 더 내리니 소리가 나아졌다, 손을 달리 해보니 더 좋은 것 같다’며 나한테도 권한다”고 했다.
11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한 김윤경은 지금에 오기까지 부단한 노력이 함께 했다. 어릴 적엔 “시작이 늦어 늘 테크닉에 대한 갈증을 안고 있었다”고 한다. “귀가 원하는 소리는 멀리 있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 답답함을 내내 가졌다는 것”이다.
뒤늦게 유학을 떠난 김윤경은 페르낭데즈를 사사한 5년 내내 모든 수업을 녹음에 파일로 저장했다. 그는 “외국어이다 보니 이해가 쉽지 않았고, 음악은 자기 해석이 들어가는지라 때론 선생님의 이야기를 반대로 해석하거나 이해할 때가 있었다”며 “무엇보다 선생님의 소리와 나의 소리를 비교하면서 들을 수 있어 공부가 많이 됐다”고 했다. 물론 비교의 괴로움은 덤이다. 당시의 수업을 녹음한 파일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 모던 바이올린과 바로크 바이올린을 비슷한 시간 동안 연주한 김윤경은 “바로크 바이올린은 턱받침이 없어 몸이 자유롭고 이완된다”며 “몸이 가진 자연스러운 에너지가 악기에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을 지금도 찾아가고 있다”고 했다.
김윤경이 가장 벅찰 때는 스승이었고, 이제는 동료이자 동반자가 된 페르낭데즈가 “당신처럼 연주하고 싶다”고 말할 때다. 최근엔 바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연주 후 남편이 들려준 진심이다. 김윤경은 “프랑수와는 굉장히 정직해서 입에 발린 말을 못 해 그가 칭찬하면 정말 칭찬이다”라며 “음악 속에서 자란 사람의 타고난 재능과 예술성을 너무나 존경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서로를 향한 시선엔 음악가로서, 부부로서의 존중과 신뢰가 묻어있다. 페르낭데즈는 “윤경은 프로그램의 균형적인 음색과 구조를 잘 잡고 퍼스트 바이올린이 연주할 때 자신의 파트가 어디인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어 늘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어 놀랍다”고 했다. 온종일 함께 하기에 언제 어디에서나 연습하고 맞춰볼 수 있다는 것은 음악가로서 큰 장점이다. 김윤경은 “프랑수와는 엄청난 완벽주의자”라며 “오래 연주하다 보면 타성에 젖는 음악가도 많은데 늘 연습을 놓지 않아 자극이 된다”고 했다.
음악과 삶의 모든 시간을 공유하는 두 사람은 음악가로도 부부로도 한 곳을 바라본다. 페르낭데즈는 “우리가 이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달돼 더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 했다. 아내가 마지막 말을 보태자, 남편은 그를 바라보며 “스위트(sweet)”라며 다정한 눈빛을 보낸다.
“요즘 아름다움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돼요. 자연이나 음악의 아름다움은 절대적이라 믿었는데, 요즘엔 그것이 모두가 동의하진 않아 슬프기도 해요. 그래도 우리가 느끼는 감동과 아름다움을 들려주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그리고 함께 감동해 주는 분들이 있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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