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 희생 강요 말라” 對 “나라 지킬 사람 없다”… 유럽, 징병제 찬반 격론

유진우 기자 2025. 9. 2.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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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재무장 가속
병력 증강 위해 징병제 재도입
청년층 반발 등 난관 직면

냉전 종식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징병제가 유럽 대륙에 다시 돌아오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4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안보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한 결과다. ‘평화의 시대’가 끝났다는 냉엄한 현실 인식 속에서 각국은 군비 증강을 넘어, 병력 확보 경쟁에 뛰어드는 모습이다. 유럽 최대 경제 대국이자 군사력 증강에 각별히 민감한 독일에서도 ‘여성도 징집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논쟁은 더 뜨거워지고 있다.

1일(현지시각) 독일 국영매체 도이치벨레(DW)에 따르면 독일 연방정부는 지난달 27일 새로운 병역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현재 18만 3000명 수준인 연방군(Bundeswehr) 병력을 2030년대 초반까지 26만 명으로 늘리고, 예비군도 20만 명으로 두 배 확대할 계획이다. 개정안 핵심은 스웨덴 모델을 본뜬 ‘선택적 징병제’ 도입이다. 독일 정부는 우선 지원 입대를 기본으로 하되, 18세가 된 모든 남성에게 병역 의향과 신체 상태에 대한 설문지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했다. 여성은 선택 사항이다. 병무 당국은 설문지를 통해 확보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복무 적합자를 선별해 입대를 권유한다. 다만 개정안에는 지원자가 목표에 미달하거나, 안보 상황이 악화하면 의회 의결을 거쳐 완전한 징병제로 전환할 수 있다는 조항을 포함했다.

폴란드 국군의 날 군사 퍼레이드에 참가한 폴란드 군인들이 폴란드, NATO, EU 국기 앞에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는 법안 통과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여성 징집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시사했다. 그는 “자원입대로 병력 충원이 불가능하다면 의무 복무로 돌아가야 한다”며 “헌법에 여성을 병역 의무에 동원할 수 없게 돼 있는데, 이 부분도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현실화하려면 독일 기본법(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독일 헌법 12a조는 병역 의무를 남성으로만 한정한다. 개헌을 하려면 연방의회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메르츠 총리 역시 “(여성 징병은)징집 문제 가운데 세 번째나 네 번째 단계가 될 것”이라며 장기 과제임을 인정했다.

개정안은 통과했지만, 실제 징병제가 부활하려면 갈 길이 멀다. 가장 큰 문제는 인프라다. 독일은 2011년 징병제를 중단한 이후 신병을 수용할 병영과 훈련 교관, 행정 시스템 대부분을 해체했다. 메르츠 총리조차 “우리는 막사도, 교관도 충분하지 않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프랑크 자우어 독일 연방군 대학 정치학 박사는 유로뉴스 인터뷰에서 “이론적으로는 징병제 부활이 가능하지만, 현재로서는 사람을 징집할 시스템이 없어 실질적인 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23년 12월 14일 독일 비스바덴에 있는 미국 유럽 및 아프리카 육군 본부를 방문하여 국가를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징집 대상에 해당하는 젊은 층 반발도 거세다. 독일 16~26세를 대상으로 한 유고브(YouGov) 설문조사에서 61%가 의무 복무에 반대했다. 반면 60세 이상에서는 67%가 찬성해 세대 간에 극명한 인식 차를 드러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직접 무기를 들겠냐’는 질문에는 오직 16%만이 “반드시 그렇다”고 답했다. 특히 여성 징병제에 대한 인식은 더 부정적이다. 독일 좌파당은 “여성에게까지 무기를 들도록 강요하는 건 진전 아닌 퇴행”이라며 “여성에 대한 병역 의무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계는 노동력 감소를 우려한다. 독일 Ifo 경제연구소는 징병제가 연간 700억 유로(약 105조원)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을 유발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슈테펜 캄페터 독일경영자총협회(BDA) 이사는 “젊은이들이 군 복무를 마치고 노동 시장에 뒤늦게 진입하면 독일 경제는 이를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독일 총리 프리드리히 메르츠가 외무장관 요한 바데풀, 총리실 장관 겸 특수임무부 장관 토르스텐 프라이, 연방군 총감 카르스텐 브로이어, 유럽 NATO군 사령관 겸 유럽연합군 최고사령관(SACEUR) 미국 육군 대장 알렉수스 그린케비치, 국방장관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등과 지난달 27일 베를린 연방국방부에서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징병제 부활이 유럽 전역으로 번지는 ‘군사화 열풍’의 단면이라고 평가했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군사 전문가들 평가에 따르면, 러시아는 2029년부터 나토 회원국을 공격할 수 있는 위치에 설 것”이라고 했다. 이런 위기감이 막대한 국방비 증액을 넘어 안정적인 병력 수급을 위한 징병제 재도입 논의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북유럽 국가들이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덴마크는 올해 7월부터 여성을 징집 대상에 포함하고 복무 기간도 4개월에서 11개월로 늘렸다. 노르웨이는 2015년부터, 스웨덴은 2018년부터 남녀 모두에게 병역 의무를 부과했다. 핀란드, 그리스, 키프로스, 오스트리아 등 약 10개국은 우리나라처럼 남성 징병제를 유지하는 중이다. 최근에는 상대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이탈리아에서도 극우 정당 레가(Lega)가 6개월 의무 복무 법안을 발의했다. 폴란드 역시 징병제 재도입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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